歌の背景函

港は雨あがり-竹川美子///春の気配床しい鹿児島 一(D

bsk5865 2015. 6. 1. 08:03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6.01 06:47

 

港は雨あがり-竹川美子///春の気配床しい鹿児島 一(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7357 




港は雨あがり-竹川美子

作詞 月光寺照行 作曲 斎藤重男


夢のようです あなたの腕に
肩を抱かれる ふたり傘
みなと坂道 路地裏あかり
飲んでゆきましょ 縄のれん
ほほに紅さす おちょこの酒に
今夜は酔いたい おんなの雨やどり


船の汽笛が 小窓をゆする
みなと酒場に 咲いた花
逢えてよかった この人ならば
命あずけて 悔いはない
あなただけです こころを濡らす
涙をぬぐって 幸せくれるひと


北の桟橋 あなたの船を
待ってこがれた 恋ひとつ
どんな苦労も ふたりで耐えて
生きてゆこうと 手を握る
外はつめたい 小雨もやんで
春風やさしい 港は雨あがり


春の気配床しい鹿児島 一

飛行機로 한 時間 남짓, 溫和함이 스며드는 九州 南端의 鹿児島는 有別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便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自然 風光과 溫泉이 뛰어나고, 文化와 飮食이 興味로운 休養地로도 脚光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活火山が恐ろしくない土地

7個 県으로 나뉜 九州는‘섬 全體가 溫泉’이라고 할 만큼 名湯이 즐비합니다. 日本의 溫泉場 順位에서 네 곳이 10位 안에 들 程度로 水質이 훌륭하고 施設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鹿児島의 龍神(りゅうじん) 溫泉에서는 바다 아래로 저무는 夕陽을 바라보며 溫泉浴을 할 수 있습니다.

여름날 鹿児島에 다다른 길손을 가장 먼저 歡迎하는 것은 火山재입니다. 鹿児島 都心 너머에 있는 桜島(さくらじま)가 暴發할 때마다 噴火口에서 나온 먼지가 바람을 타고 날이옵니다. 이곳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活火山을 接할 機會가 없는 異邦人에게는 新奇한 구경거리입니다. 多幸히 겨울에는 바람의 方向이 反對여서 市內에서 火山을 體驗하기는 힘듭니다.

鹿児島를 찾았던 1月 末, 桜島는 새해 들어 22日 만에 100번째 ‘暴發을 記錄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次例式 噴出하는 셈인데 불꽃이 보이거나 轟音이 들리는 날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火山의 活動이 頻繁함에도 桜島에는 5千600余 名의 住民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Italy Pompeii를 뒤덮었던 Vesuvio(베수비오) 火山처럼 大爆發 할 可能性이 낮다는 傍證일 것입니다.

鹿児島 페리 터미널에서 24時間 運航하는 페리를 타고 桜島에 이르면, 自動車로 5分 거리에 訪問客 센터가 자리해 있습니다. 이곳에는 火山의 生成 課程과 植生, 棲息하는 動物에 對한 資料들이 展示돼 있어 섬을 一周하기 前에 들르면 좋습니다. 火山 專門家에 따르면 100年 前쯤 큰 噴火가 있었지만,桜島는 아직 幼年期에 該當돼 그다지 危險하지 않다고 합니다.

地殼運動이 活潑한 火山地帶에 溫泉이 없을 리 없습니다. 桜島 南쪽의 龍神温泉은 18世紀 中半 樹齡 200年이 넘은 菩提樹에서 溫泉水가 샘솟아 形成됐다고 傳해집니다. 神社처럼 꾸며진 露天溫泉에 몸을 담그면 몸의 疲勞가 풀리고, 시원스레 펼쳐 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저녁이면 화돗불을 밝혀 더욱 韻致 있는 雰圍氣를 자아냅니다. 溫泉浴은 北쪽의 白浜(しらはま) 温泉에서도 즐길 수 있습니다.

循環 道路 곳곳에는 높이가 l千117m인 桜島의 全體的인 모습을 眺望할 수 있는 展望臺가 設置돼 있습니다. 그 中 火山의 迫力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이 有村(ありむら) 熔岩 展望臺입니다. 마지 누군가 彫刻이라도 한 듯, 구멍이 송송 뚫린 玄武岩이 奇奇妙妙한 形態로 서 있습니다. 桜島가 火山岩을 實感케 됩니다.

薩摩藩の栄華が漂った庭園

薩摩藩(さつまはん)은 鹿児島의 옛 地名입니다. 日本 各地를 封建 領主가 다스리던 時節,薩摩藩의 統治者는 島津(しまつ) 家門이었습니다. 한때는 九州 全域을 勢力圈 아래 두었으나 豊臣秀吉(とよとみしでよし)에게 敗北해 南部로 밀려났습니다. 19世紀 中半에는 英國과 戰爭을 벌이고 日本의 近代化를 觸發시킨 明治維新의 周易이 되기도 했습니다.

鹿児島市에서 直線距離로 桜島와 가장 가까운 곳에 位置한 仙巖園(せんがんえん)은 사 薩摩藩主의 個人 庭園이었습니다. 17世紀 中半부터 조금씩 擴張을 거듭해 邸宅과 연못, 神社가 옹기종기 들어서 있습니다. 오늘날 鹿児島에는 城이 穩全히 남아 있지 않아서, 仙巖園에서 歷史的 자취를 確認할 수 있습니다.

仙巖園의 時間은 아직도 近代에 머물러 있습니다. 境內에 巨大한 鐵製 大砲와 앞바디를、 航海하던 艦船의 模型이 놓여 있고, 녹인 쇠를 부어 大砲를 製作하던 거푸집도 있습니다. 지금은 닫혀 있지만, 過去에는 正門 구실을 했던 木造 建物 앞에는 이곳이 薩摩 陶瓷器의 發祥地임을 알리는 碑石이 서 있습니다.

庭園의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磯(いそ) 邸宅은 仙巖園의 白眉입니다. 19世紀 後半에 大大的으로 改築해 傳統的인 멋은 사라졌지만 家屋에서 풍기는 薩摩 家門의 權威는 變함이 없습니다. 붓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邸宅 앞에는 領主가 가스 實驗을 했다는 燈籠과 稀貴 食物인 柏松, 沖縄의 王이 바쳤다는 樓閣인 (ぼうかくろう)가 있습니다.

한便 邸宅 뒤便은 領主가 親知,家族들에게 宴會를 베풀었던 庭園입니다. 慶州의 鮑石亭처럼 流觴曲水를 行하던 曲水(きょくすい) 庭園과 中國에서 가져온 씨앗을 심어 組成했다는 대숲이 그대로 保存돼 있습니다. 좁은 空間에 自然을 凝縮시키는 日本 庭園의 特徵이 如實히 드러나 있습니다. 봄에는 梅花와 벚꽃이 피어 景觀이 더욱 秀麗합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