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 노을05 운영자 16.12.27 10:32
[6,25 의 참상] 처음 공개되는귀중한 자료
♣★처음 공개되는귀중한 자료!★♣
귀중한 자료!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38선 너머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 조국에 남기를 바랍니다.
※또다시 이런현상이 온다면 안되지요!!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옮겨온 글~
|
6,25. 여원히 지울수 없는 이미지들 http://cafe.daum.net/enkamom/KWfw/47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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