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史.軍歌(日)

몽고메리와 노르망디 상륙작전

bsk5865 2019. 5. 26. 19:31

[전례] 몽고메리와 노르망디 상륙작전

지난 2008년 4월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스탈린이 생전에 자신의 대역인 이른바 가게무샤() 4명에게 대중연설은 물론 방문자 면담까지 대행시킨 사실을 보도했다. 러시아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스탈린의 가게무샤 역할을 한 전직 배우 펠릭스 다다예프와의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같이 회상했다.

“스탈린 대신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단상에 서서 퍼레이드를 사열한 적도 있다. 연설을 하거나 직접 손님을 맞은 적도 있다.”

스탈린의 대역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모두 당사자가 숨진 뒤 주변 사람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을 뿐이다. 가게무샤가 직접 대역 사실을 증언한 것은 처음이다. 당시 젊은 다다예프는 스탈린과 무려 47세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화장술로 이를 극복했다. 다다예프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가짜 스탈린 행세를 시작했던 것은 17세 때인 1943년부터다. 당시 소련 비밀경찰 국가보안위원회의 전신인 내무인민위원회는 전선위문극단의 일원으로 종군하고 있던 다다예프를 가게무샤로 지목했다. 오직 하나, 스탈린과 얼굴이나 신체가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그의 증언이다.

“스탈린과 딱 한번 직접 대면한 적이 있지만 채 5분도 안 된다. 스탈린은 아무 말 없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따지고 보면 영국군 최고사령관인 가짜 몽고메리를 동원한 가게무샤의 개가였다. 전개과정이 매우 극적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불과 2주 앞둔 1944년 5월 하순, 영국군 최고사령관 몽고메리 원수(Sir Bernard Law Montgomery)가 갑자기 지브롤터와 알제리에 나타났다. 연합군의 상륙지점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독일 정보국은 몽고메리의 동선을 두고 프랑스의 대서양 해안이 아닌 이탈리아 남부해안이 연합군의 상륙지점인 것으로 판단했다. 독일은 영불해안에 배치된 방어 부대를 대거 이탈리아 남부해안으로 이동시켰다. 이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

지브롤터에서 목격된 몽고메리는 연극배우 출신인 또 다른 가게무샤 메이릭이었다. 독일은 영국의 속임수에 넘어가 방어병력을 분산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메이릭의 연기는 절묘했다. 표정은 물론 음성, 웃음소리, 행동, 습관까지 모두 똑같았다. 영국군과 미군은 물론 과거 몽고메리를 만난 적이 있는 정치인과 언론인까지 모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지브롤터 해협에 있는 영국군 기지와 알제리아의 영국군 부대를 방문해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등 진짜 몽고메리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이릭은 지브롤터와 알제리에서 몽고메리 원수를 과거에 만난 적이 있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가게무샤를 진짜로 착각한 현지 독일 스파이들이 이 사실을 급히 본국으로 타전했다. 이해 6월 초, 독일군 최고사령부는 이탈리아 남부해안이 연합군의 표적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불과 2주 앞두고 벌어졌던 일이다. 메이릭의 가게무샤 역할이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보여준다.

가게무샤를 동원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기발한 발상은 세계전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당시 독일군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작전 당시 폭풍우가 몰아친데다 이탈리아 남부해안에 대한 신념이 지나친 나머지 ‘설마’ 하다가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전세를 일거에 뒤집는 대규모 작전에서는 아군의 움직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아군의 장교조차 모르게 해야 한다. 〈요적〉에서 오기가 “적을 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적의 허와 실을 면밀히 분석해 약점을 노려야 한다”고 역설한 이유다. 영국군은 이를 철저히 준수해 승리를 거두었던 셈이다. 당시 영국 정보국은 가게무샤 작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47명이 넘는 첩보원을 총동원했다. 이들은 상륙장소가 노르망디 해안이 아닌 다른 해안이라는 거짓 정보를 지속적으로 흘려보냈다. 독일의 정보국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배경이다. 전쟁의 승패는 결국 궤도에 달려 있다는 무경십서의 가르침을 거듭 상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