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맞벌이로 새기반(基盤)

bsk5865 2021. 10. 19. 17:25

맞벌이로 새기반(基盤)

 

지금이야 손으로 글씨 쓰는 세상은 아니지만 그 때(1980년대)는 글씨 잘 쓰는 것도

삶의 도움이 됐었다.  남 보다 좀 보기 좋게 쓰는 글씨........

그것 때문에 고향 지인의 소개로 요즘 말하는 "알바"를 했었다.

3사람이 20여일 일하고 끝이 났지만, 며칠 뒤 그 곳에서 나에게만 만나자는 연락이

왔었다.

 

나가 보니 새로 시작할 일 (그 기관의 중요정책) 이 있으니 그 일을 처음 부터 맡아

달라는 것이었으니 취직이 된 셈이다. 고소원(固所願)의 처지인데 하늘이 도왔다.

약체질. 고령으로 막노동도 못하는 딱한 처지였는데.......

 

이렇게 50대(代)에 시작한 직장생활이었지만 모든 것을 겪어 보고 지켜 보더니 그

곳에 꼭 필요한 인물로 인정 받아 13년을 넘게 근무했었다.

나도 생의 마지막 월급생활자로서 최선을 다해 능력이상을 발휘했고 맡은 일이

밀리면 주야를 가리지 않았다. 남이 힘들어 하는 일도 자청하여 처리했다.

직장 분위기도 살피며 특히 고령자인 자신의 처신에 신경 썼었다.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간단한 청소정리와 업무 준비를 그만 둘때 까지 했었다.

이는 직장 동료인 젊은이들의 바쁜 아침 시간을 배려하여 이것도 자청해서 해왔었다.

나이 50이 넘어 타향객지에서 안정딘 직장을 찾았다는 고마운 생각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니까......

 

세월이 흐르는 것과 비례해서 일터의 직급도 오르고 차차 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무엇보다도 5년을 보내고 지금 까지 살고 있는 아파트를 1순위로 청약 입주했으니

고생으로 점철된 5년의 세월이 오늘의 밑거름이 됐었다.

 

안사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고생을 더 많이 했었다. 고위직 손님을 상대로

하숙치는 생활을 오래 했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듯이 그 사람이 전근되면 그 후

임이 또 우리 집에 와 있길 원했다.

음식이 좋고, 친절해서 좋고, 조용해서 좋고, 직장과 가까와서 좋단다.

 

그렇게 지내 오는 사이 아들도 대학 졸업기가 닥아 왔었고 막내는 대학에 들어 갔었다.

그 시대는 전자공학과 출신들을 대기업(大企業)에서 서로 대려가려고 경쟁하던 호항기

(好況期)였었다.

삼성의 전자계통에서 벌써 졸업전에 이미 취업 약속도 그 위에 장학금도 받았었다. 기업

이 절대 필요로 하는 우수 인력으로 모셔가는 꿈같은 시대를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

 

지금으로 부터 30여년전의 일이지만 신바람 나던 때였고 앞길은 망망대로(茫茫大路)처럼

잘 열릴 것으로 믿어 온 가족이 기뻐했었다.

이젠 고생이 끝나는 것 처럼......대구에 와서 처음으로 가슴 부푼 꿈을 안아 봤으니 대견한

일이었다.

 

대구 올때도  안사람이 먼저 결심해서 왔었다. 모든것 다  버리고 또 깨끗이 잊어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해 보자고.......

크는 아이들 뒷바라지나 잘 하여 희망을 찾자고......

인생역전(人生逆轉)의 실현을 위한 결단은 나 보다 항상 한수 위에 있었다.

뒤돌아 본 인생력정(人生歷程)에서 늘 그러한 것을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