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漢詩函

花石亭 / 율곡 이이|

bsk5865 2010. 11. 7. 08:36

  2010년 11월 07일 일요일, 08시 20분 03초 +0900
花石亭 / 율곡 이이
素潭 | http://cafe.daum.net/enkamom/95QK/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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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石亭-율곡 이이


林亭秋已晩 하니                  숲 속 정자에 가을 이미 깊은데

騷客意無窮 이라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 이요                  멀리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이라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에 붉도다.


山吐孤輪月 이요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 이라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는데


塞鴻何處去 요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지

聲斷暮雲中 이라                 저녁 구름 속에 소리마저 끊어지네

 

(花石亭)

 

율곡 이이(1536∼1584)가 자주 들러 시를 짓고 명상을 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임진강이 굽어보이는 강가의 벼랑 위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세종 25년(1443)에 율곡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처음 지었으며,

 성종 9년(1478)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율곡의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다시 짓고 1973년 정부의 유적정화사업 때 건물에

 색을 다시 칠하고 주위를 정리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건물이다.

정자 안에는 ‘화석정중건상량문’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난간에 기대어 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이 정자는 율곡(栗谷) 선생이 국사의 여가와 퇴관(退官)후에 매양 들러

작시(作詩), 연구(硏究)와 묵상(默想)을 하던 곳이다. 율곡 선생의 5대 조부(祖父)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에 의하여 세종(世宗) 25년(1443) 창건된 것을

성종(成宗) 9년(1478) 선생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BR>

 중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李淑감)이 이 정자를 화석정이라 이름하였다.

 

 

 그후 율곡 선생이 다시 중수하여 사용하던 이 정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되어 80년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顯宗) 14년(1673)에 선생의 종증손들이

복원(復元)하였으나 6.25동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

 

1966년 파주(坡州) 유림(儒林)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申師任堂)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화석정이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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