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漢詩函

奉別蘇陽谷 /漢詩

bsk5865 2010. 11. 25. 22:04

  2010년 11월 25일 목요일, 20시 22분 36초 +0900

 


 

     黃眞伊가 읊은 奉別蘇陽谷  /漢詩

 

奉別蘇陽谷詩 /님을 떠나보내며

(봉별소양곡시)

簫寥月夜思何事 /달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소료월야사하사)

寢宵轉輾夢似樣/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침소전전몽사양)

問君有時錄妾言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군문유시록첩언)

此世緣分果信良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차세연분과신량)

悠悠憶君疑未盡 /그대 생각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유유억군의미진)

日日念我幾許量 /하루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일일념아기허량)

忙中要顧煩惑喜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밌나요

(망중요고번혹희)

喧喧如雀情如常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훤훤여작정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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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漢詩는 “몇날 며칠을 황진이의 집에 유숙하다 기한이 차면

가차없이 정을 떼고 떠나겠다”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한

當代의 文臣, 陽谷(양곡) 蘇世讓(소세양)이 과연 몇날 며칠 후

 떠나려고 하자 황진이가 이 詩 한편으로 넉 아웃시켜

눈물을 흘리며 눌러 앉게 만들었다는 유명한 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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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黃眞伊는 조선시대 詩人,名妓로 妓名은 明月. 일명 眞娘(진랑)

이라고도 했으며 중종때 개성에서 進士의 庶女(서녀)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밑에서 四書三經을 읽었고 詩,書,音律에

모두 뛰어 났으며

절세의 미모로 더욱 유명하다

.

15세경에 한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 相思病으로 죽자

妓界에 투신,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詩才와

容貌(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경덕

(황진이가 유혹하려다 유일하게 실패하여 스승으로 모신 이),

박연폭포와 함께 松都三絶(송도삼절)로 불리웠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니불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靑丘永言 珍本)는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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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蘇世讓[1486(성종17)-1562(명종17)]은 조선시대 文臣.

자는 彦謙(언겸), 호는 陽谷,退齋(퇴재),退休堂.

시호는 文靖(문정)으로 본관은 진주이다.

 

儀賓府都事(의빈부도사) 自坡(자파)의 아들로 式年文科

(1509)에 乙科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호조,병조,

이조판서와 관찰사,한성판윤,대제학,중추부사,우찬성,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명나라 사신으로 건너가 詩文으로 이름을 떨쳤고, 律詩와

松雪體의 글씨를 잘써서 文名과 筆名이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