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漢詩函

論語(現代に生きる中国の知恵)其の4

bsk5865 2012. 4. 3. 13:09

보낸사람: 소담엔카 운영자 12.04.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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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現代に生きる中国の知恵)其の4

 

 

        

 

    

 

 

 論語(現代に生きる中国の知恵)其の4

 

千数百年にわたって日本の道徳書

 

しかし、'論語"という本は、

昔日本に応神天皇の十六年、

百済(くだら)の国から来聴した王仁(わに)というものが

献上したといわれます。 


日本の上古の紀年をそのまま信じ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

西紀二八五年に実際この事件が起ったわけではなく、

一つの伝説と見られています。


歴史的年代のはっきりし始めた六世紀始めごろの継体天皇の

御代に、 日本の朝廷は、

百済(くだら)を通じて、

中国の南朝の五経博士という資格をつ中国の儒教学者を招きました。


いくらおそく見ても、

六世紀の始めごろまでに、

"論語"の本も日本に輸入され、

ある程度まで読まれていたことは確かです。


江戸時代になると、

幕府が儒教を尊んだので、

"論語"は武士たちにとって、

必読の本となりました。


職業軍人であったかれらは、

"論語"のなかに、

単に武人としてだけではなく、

一個の全人間としての生活の信条を見けだし、

儒教の道徳によって、

武士道という独特の身分道徳をつくりあげました。

儒教は、西洋の騎士道の形成において、

キリスト教が果たしたと同じ役割を

日本の武士道の成立において勤めたのです。


武士道は、

江戸時代の武士という職業軍人の特殊な身分だけに

限られた道徳ではありません。


儒教は大都市に栄えた町人のあいだにも普及し、

"論語"という書物は、

かれらの間にもよく知られ、

"役者論語"などという本がつくられました。


"論語"は、

人間の行為の準則を

与えるものと考えられたので、

役者たるものの心得をさとした本に、

"役者論語"という名がつけられたのです。

つづく 


 

 

천수백년에 걸쳐 일본의 도덕서

 

그러나, “논어”라는 책은,

옛날 일본의 응신천황(應神天皇)16년,

백제의 나라에서 온 왕인(王仁)이라고 하는

사람이 바쳤다고 합니다.

 

일본 상고(上古)의 기년(紀年)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기 때문에,

너기285년에 실제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고,

하나의 전설로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 연대가 확실하게 시작한 6세기초경의

계체천황(繼体天皇)의

때에, 일본의 조정은, 백제를 통해서,

중국 남조(南朝)의 오경박사(五經博士)라는 자격을 갖은 중국의

유교학자를 초청하였습니다.

 

아무리 늦추어 보더라도, 6네기 초경까지에는,

“논어”의 책도 일본에 수입되어,

어느 정도 읽혀져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에도시대(江戶時代)가 되면,

막부(幕府)가 유교를 귀히 여겼기 때문에,

“논어”는 무사들에 있어, 필독의 책으로 되었습니다.

 

직업군이었던 그들은, “논어”속에,

단순히 무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전 인간으로서의 생활의 신조를 찾아내어,

유교의 도덕에 의해서, 무사도라고 하는 독특한

신분도덕을 만들어 냈습니다.


유교는, 서양의 기사도 형성에 있어,

기독교가 달성한 거와 같은 역할을 일본의 무사도의

성립에 힘썼습니다.


무사도는, 에도시대의 무사(武士)라고 하는

직업군인의 특수한 신분에게만 한정된 도덕은 아닙니다.


유교는 대도시에 일었던  마을사람들 사이에도 보급되어,

“논어”라는 서적은, 그들 사이에도 잘 알려져서,

야구샤논어(役者論語)등등의 책이 만들어 졌습니다.


논어는, 인간행위의 준칙을 주는 것으로 생각 되어서,

야구샤(役者: 배우, 한 단계 뛰어난 사람)다운 본분을

깨우쳐준 책에,

야구샤논어“役者論語)라는 이름이 부쳐졌습니다.

 

이어짐

 

演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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