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の土俵-村田英雄 作詞 村田英雄 作曲 村田英雄
一 やぐら太鼓が 隅田の川に どんと響けば 土俵に上で 男同志の 血汐はたぎる 負けてなるかと どんとふつかれば まけも乱れる まけも乱れる 大銀杏
二 今日はこの手か 明日またあの手 胸に思案の 土俵入り仕度 諦めたまわしを 両手でたたき 今日はやるぞと どんと四股ふんで 笑い浮かべて 笑い浮かべて 花道へ
三 無事に迎える 千秋楽の 汗もにじんだ この十五日 今場所済んだか 来場所目指し けいこ重ねて どんと体当たり 男勝負の 男勝負の 道を行く
史上最強の橫網双葉山 誕生 100周年을 맞이한 史上 最强의 大橫網(日本 相撲 選手 中 가장 높은 地位인 橫網 中에서도 偉大한 選手) ‘双葉山 (ふたばやま 1912~1968年)’를 紹介합니다.
不滅の 69連勝 双葉山에 對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 는 것은 바로 ‘69 連勝’입니다.
2010年 11月에 福岡市에서 열린 11月 場所(ばしょ)의 關心은 62連勝 中이던 橫網 白鵬(はくほう)가 双葉山의 記錄인 69連勝을 캘 수 있을지에 集中돼 있었습니다. 69連勝은 日本相撲協會가 主管하는 大會인 大相撲의 最多 連勝 記錄입니다.
双葉山의 69連勝은 1936年 1月 ばしょ의 7일 째 競技부터 1939年 1月 ばしょ의 3日째 競技까지 이어졌고 그 以後 아무도 깨지 못했습니다. 이 偉大한 記錄에 가장 近接한 것이 몽골 出身의 第69代 橫網 白鵬였는데요. 以前에 있었던 記錄은 1988年, 第58代 橫網 千代の富土(ちよのふじ)의 53 連勝과 1968~1969年에 第48代 橫網 大鵬(たいほう)가 거둔 45連勝입니다.
2010年으로 다시 돌아가 當時 白鵬는 62連勝뿐만 아니라 12回나 優勝을 차지했고 게다가 나이도 스물넷으로 어렸기 때문에 오랜만에 白鵬의 大記錄을 깨는 것이 아닐까 많은 期待를 모았는데. 그러나 結果는 11月 ばしょ 2日째 競技에 敗해 63連勝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双葉 前에도 双葉 같은 選手가 없었고, 双葉 已後에도 双葉 같은 選手가 없다.(双葉の前に双葉無く、双葉の後に双葉無し)"라는 말이 있지만 不滅의 記錄은 앞으로도 글자 대로‘不滅’일까요?
はじめから強い選手ではなかった 双葉山(本名: 穐吉定次(あきよしさだじ)는 九州의 大分県 宇佐郡(うさぐん)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오른쪽 눈을 다쳐 半 失明 狀態가 되었지만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아 選手 時節에도 이 事實을 알고 있었던 것은 父母와 相撲部屋(すもうべや: 相撲 選手를 養成하는 機關)의 監督뿐이었다고 합니다.
學窓 時節에는 成績이 좋았고 平凡한 生活을 할 생각이어서 相撲에 熱中하지 않았지만 學校를 卒業하고 海運業을 하던 家業을 도와 배를 타면서 體力이 좋아졌습니다. 14歲에 身長 173cm, 體重 71kg의 健壯한 體格이 된 双葉山는 地域 相撲 大會에서 어른들과 對等한 競技를 펼친 것이 新聞에 報道되면서 프로選手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强한 選手는 아니었습니다. 等級이 낮았을 때는 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기도 하는 平凡한 選手였습니다. 實力이 좀처럼 늘지 않아 選手 生活을 그만두려고 한 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넓은 어깨와 强靭한 팔다리, 柔軟性 等 相撲에 有利한 體格 條件을 갖추고 있었고 그것이 엄청난 演習量을 通해 實力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双葉山に対する歴史的評価 相撲의 記錄 中 가장 어려운 것이 連勝이라고 하는데 双葉山는 그 外에도 많은 記錄을 가지고 있습니다. 5 ばしょ 連續 全勝 優勝을 비롯한 全勝 優勝 8回는 前無後無한 記錄이며 1909年에 優勝 制度가 始作된 後 最多 優勝 記錄도 가지고 있습니다.
實力뿐만 아니라 相撲에 對한 그의 마음가짐 亦是 選手의 標本으로 여겨져 큰 尊敬을 받았습니다. 最近 여러 가지 不祥事로 因해 ‘橫網의 品格’이 問題視되고 있지만 双葉山는 品格을 갖춘 眞情한 橫網로서 높은 評價를 받고 있습니다. 現在 橫網인 白鵬가 가장 尊敬하는 人物도 双葉山마라고 합니다.
그는 隱退 後 日本相撲協會의 理事長으로 就任해 相撲界의 近代化에 크게 貢獻했으며 ‘不世出の横綱’‘相撲の神様’ 等으로 불리고 있는데. 双葉山는 이름은 이제 아무도 使用할 수 없도록 指定되어 있습니다.
人間 双葉山 双葉山는 많은 名言을 남겼지만 그 中에서도 가장 有名한 것이 “나는 아직 목계가 아니다(われ未だもっけい木鶏(もっけい)たりえず)"입니다. 이 말은 1939年 1月,70勝을 앞두고 맞붙은 安芸ノ海(あきのうみ)에게 敗해 連勝記錄이 끝난 날 밤 知人에게 보낸 電報에 쓴 말 인데요.
中國의 思想家 莊子가 ‘鬪鷄를 할 때 싸우기도 前에 騷亂을 떠는 닭은 强하지 않지만 나무 조각처럼 가만히 있는 닭은 오히려 相對가 무서워하며 逃亡간다’라고 말한 것에 自身의 未熟한 마음 狀態를 빗대 表現한 말입니다. 그는‘무엇에도 動搖하지 않는 마음’을 나타내는‘木鷄’를 勝負師의 理想的인 境地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外에 ‘勝負師는 寡默해야 한다(勝負師は寡黙であれ)’‘하루에 10분간만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一日に10分間だけ精神を集中させることは誰にでもできるはずだ)’ 等의 말에서도 그의 剛直한 性品과 끊임없는 努力을 엿볼 수 있습니다.
※ 注 ばしょ(場所): 相撲 競技를 여는 곳 또는 期間. 現在는 1年에 6ばしょ가 開催되며 1 ばしょ는 15日間 이어진다.
* 1月 ばしょ: 初場所. 東京
* 3月 ばしょ: 春場所 또는 大坂場所. 大坂市
* 5月 ばしょ: 夏場所. 東京
* 7月 ばしょ: 名古屋場所. 名古屋市
* 9月 ばしょ: 秋場所. 東京
* 11月 ばしょ: 九州場所. 福岡市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