緑の地平線-楠木繁夫 作詞 佐藤惣之助 作曲 古賀政男 (1935年)
一 なぜか忘れぬ 人ゆえに 涙かくして 踊る夜は 濡れし瞳に すすり泣く リラの花さえ なつかしや
二 わざと気強く ふりすてて 無理に注がして 飲む酒も 霧の都の 夜は更けて 夢もはかなく 散りて行く
三 山のけむりを 慕いつつ いとし小鳩の 声きけば 遠き前途(ゆくて)に ほのぼのと 緑うれしや 地平線
歌の背景 緑の地平線는 1935年 公開된 阿部豊 監督의 日活映画입니다. 또 楠木繁夫가 노래한 같은 이름의 主題歌로 古賀メロディー 傑作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原節子(はらせつこ) 岡譲二(おかじょうじ)等이 出演하고 日活多摩川撮影所에서 映画化하였습니다.
楠木繁夫(くすのきしげお)는 高知出身으로 東京音楽学校에서 学生争議로 退學処分을 받은 뒤 1930年에 歌手에 데뷔합니다만 노래가 히트되지 않아 芸名을 바꿔가며 마이너 레벨(minor label)을 転々했습니다.
어쨌든 그 동안 잘 알려진 藝名으로 秋田登 黒田進 島津一郎 藤村一郎 浜口淳 等 51 番이나 藝名을 바꾸어 変名大王으로 도 알려져 있습니다. 덧붙이면 “幌馬車の歌”를 和田春子 이름으로 노래한 渡辺美津子가 11번 松島詩子가 9번 近江敏郎가 7번 東海林太郎가 6번 藤山一郎가 5번이나 藝名을 바꿨다는군요
그러나 テイチク専属이 되면서 古賀政男의 背景으로 “誰か夢なき””女の階級””人生劇場”等이 히트합니다만 戦後에는 히트曲이 나오지 않음을 悲観하고 病든 몸으로 아내와 世上을 悲観하며 1956年에 新宿의 自宅 헛간 작은 방에서 自殺하고 맙니다.
이 노래를 作詞한 佐藤惣之助에게는 以外에도 “赤城の子守り歌””青い背広で””湖畔の宿””人生劇場”등 히트曲이 있습니다.
作詞者인 佐藤惣之助는 戦前 歌謡 曲에서는 제일 많은 히트曲을 낸 사람입니다 阪神タイガース의 応援歌”六甲おろし”도 이 사람의 作詞입니다. 여기에 古賀政男와 콤비가 되어 히트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노래로 楠木繁夫는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楠木繁夫도 “人生劇場””女の階段”等의 히트曲이 있습니다만 “緑の地平線”의 지나친 成功으로 그를 미치게 했다고들 말합니다.
原作은 東西朝日新聞이 一万圓의 賞을 걸고 募集한 小説입니다 水久保澄子가 病으로 中途 下車하고 星玲子가 代役으로 奈津子의 役을 맡았습니다.
岡見良樹는 磯田鉄哉의 女同生 純子와의 사이에 아이 까지 있는 사이었지만 그는 뒤돌아보려고도 않은 채 妖艶하고 아름다운 未亡人 逸子와의 불 같은 사랑에 빠지는 한便 댄서 奈津子의 歓心을 사려고도 합니다. 거기에 岡見에게는 大実業家 吉井高一郎의 귀여운 딸 早苗라는 約婚者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一郎는 岡見를 깊이 信用하고 있음이 早苗에 게는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덴서 奈津子에게는 瀬尾雄三라고 하는 約婚者가 있었는데 몇 年 뒤에 幸福한 結婚을 꿈꾸고 大学을 마치면 海外로 留学가기로 하였습니다만 하지만 雄三의 아버지는 하룻밤의 힘을 빌려 奈津子의 貞操를 蹂躪합니다. 世上이 醜한 面을 똑똑히 본 奈津子는 男性을 敵으로 싸우기 爲해 家出하여 流浪 끝에 댄서가 된 것입니다.
그런 過去를 가진 奈津子는 巧妙히 岡見의 愛欲의 불 꽃을 부추깁니다. 海外에서 奈津子의 家出한 事實을 안 雄三은 早速히 帰国하는 一方 早苗도 점점 岡見의 行動에 幻滅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婚約 取消를 要求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応하려 하지 않자 決心하고 家出을 합니다 岡見에게 버림을 받은 純子는 兄 鉄哉와 兄의 친구 仁吉 에게 괴롭힘을 當하는 아이 때문에 씩씩하게 街頭에 進出하여 일을 합니다.
한便 奈津子에게 精神이 팔린 岡見을 逸子는 執拗하게 뒤쫓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각한 데로 되지 않을 이들 사람들의 싸움에 悠悠히 神의 制裁가 다가올 날이 가까워집니다. 愛欲의 悪魔로 變한 未亡人 逸子는 岡見과 奈津子를 射殺하여 더렵펴진 自身의 半生도 清算합니다.
臨終의 자리에서 突然 옛날의 清純한 気分으로 돌아가 偶然의 機会에서 맺어진 雄三과 早苗의 純情한 사랑을 成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슴프레 “緑の地平線”에는 아름다운 太陽이 솟아 올라옵니다. 깨끗하고 높고 얌전하게 사람의 마음에도 太陽의 빛이 가득 차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