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命くれない-森若里子///紫式部

bsk5865 2012. 10. 26. 08:59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2.10.26 06:17

 

命くれない-森若里子///紫式部(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1929 




命くれない-森若里子

作詞 吉岡 治  作曲 北原じゅん


 生まれる前から 結ばれていた
 そんな氣がする 紅の糸.
 だから死ぬまで ふたりは一緖
 あなた おまえ 夫婦みち
 命くれない 命くれない
  ふたりづれ


 人目をしのんで 隱れて泣いた
 そんな日もある 傷もある
 苦勞積荷の 木の葉の舟で
 あなた おまえ あぶな川
 命くれない 命くれない
  ふたりづれ


 なんにもいらない あなたがいれば
 笑顔ひとつで 生きられる
 泣く日笑う日 花.咲く日まで
 あなた..おまえ 手をかさね
 命くれない 命くれない
 ふたりづれ


紫式部

紫式部(むらさきしきぶ)는 平安時代 中期의 女性 文学者입니다 어려서부터 聰明하여 아버지가 兄에게 学問을 가르치는 옆에서 兄보다도 먼저 외우는 天才였으며 漢文에도 才女로서 많은 逸話를 남기고 있습니다

生没年은 不詳이나 1008年이 30歳 程度로 推測되어 逆算하면 出生이 979年頃으로 死亡이 1016年頃 (享年44歲)으로 推定되며 歌人으로 또한 源氏物語의 作家로서 너무나 有名합니다.

紫式部의 本名도 不詳이나 香子(たかこ)라는 説도 있으며 太政大臣 藤原冬嗣의 七世 孫으로 曾祖父 兼輔는 著名한 歌人이며 小説도 잘 써 世上에서는 “堤中納言物語” 라고도 합니다.

아버지는 藤原為時(ふじわらのためとき)이고 어머니는 藤原為信(ふじわらためのぶ)인데 “紫”의 名稱은 “源氏物語”의 女主人公의 “紫の上(むらさきのうえ)”에서 “式部” 는 아버지가 式部大丞(しきぶたいじょう)에서 由来하였다는군요

아버지 藤原為時는 越前国(えちぜんのくに)의 受領을 지냈는데 紫式部는 處女時節 約2年間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998年頃 22歳 때 16,7歳 年上인 37.8歳 되는 右衛門権佐 藤原宣孝와 結婚하여 999年에 딸 藤原賢子를 나았으나 2年半 만에 지아비 宣孝와 死別합니다.

紫式部는 文章生으로 惟規라는 오빠와 일찍 죽은 언니 그리고 동생 둘이 있습니다 紫式部는 少女時代부터 短篇小説을 쓰고 있었으며

지아비와 死別한 後에 宮中으로 들어가 源氏物語를 쓰게 되고 1002年 봄에 始作하여 1004年에 完成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햇수로 三年 紫式部가 25歳에서 27歳까지의 사이에 처음부터 54卷의 大作을 構想한 것이 아니고 于先 第2巻만을 쓰고 追後에 “源氏物語”를 完成합니다.

1005年傾에는 一条天皇의 中宮인 彰子(藤原道長의 長女) 家庭教師로 約8年 間을 奉仕합니다

源氏物語에 依해 紫式部의 名聲은 世人에게 널리 알려지고. 彰子가 周圍를 裝飾하기 爲하여 一代의 많은 才女들을 網羅하는 中 于先 紫式部를 첫째로 招致하게 되어 當時의 敎養 있는 婦人들에게 最上의 榮譽인 벼슬살이를 도리어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紫式部는 中宮과 道長으로부터 特別한 寵愛를 받았을 뿐 아니라 一條天皇으로부터도 아버지와 같이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 그 作品보고 “日本紀에 精通한 女子일 것이다”라고 稱讚을 하여 많은 侍女들로부터 嫉妬와 미움의 對象 되었습니다

寛弘七年에 紫式部는 日記쓰기를 暫時 中斷합니다 同八年六月이 一條天皇이 崩 하여 49祭가 끝나고 一條院을 나갈 때 紫式部는 “ありし世は夢に見なして涙さへ留まらぬ宿ぞ悲しかりける”라고 읊고 恨歎합니다.

虚弱体質인 紫式部는 病으로 私邸로 돌아가게 되고 1013年에는 몹시 弱해져 私邸에만 있게 되었는데 그때의 노래는 주검이 다가온 것을 予感한뜻 悲観的인 것 만 읊고 있습니다

現在 日本銀行券 2000円 紙幣의 뒷面에 작은 肖像画와 “源氏物語絵巻”의 一部分이 올려 있습니다.

그리고 国際連合 教育科学文化機関인 UNESCO 偉人暦에 日本人으로서는 唯一하게 人名簿 에 올라 있습니다

平安初期의 学者로 또 詩人 歌人으로서 世界의 女流文学者 紫式部의 墓가 北大路에서 堀川西側 50m 程度 내려간 곳에 있습니다

小野篁와 紫式部 두 사람의 偉大한 偉人의 墓가 寂寂한 동내 안에 있어 이 두 사람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小野篁(おののたかむら) (802~853年)는 小野妹子(おののいもこ)의 子孫이며 貴族으로 剣術 弓術 乗馬 等 武芸 가 出衆하고 漢詩와 노래도 뛰어나고 容貌도 秀麗한 188.cm의 멋진 플레이보이였다고 합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