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東京さすらい歌-石原裕次郎・浅丘ルリ子///一世紀 小Asia 最大都市의 遺跡 에페수스

bsk5865 2013. 1. 14. 08:59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01.14 06:34

 

東京さすらい歌-石原裕次郎・浅丘ルリ子///一世紀 小Asia 最大都市의 遺跡 에페수스(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2557 




東京さすらい歌-石原裕次郎・浅丘ルリ子

作詩 萩原四朗 作曲 上原賢六

一(男)
ビルの谷間の 人波が
寄せて渦巻く 日の昏れ時は
さすらいの 胸に憂いのドラが鳴る
銀座は あ-銀座は 海のない港

二(女)
劇場のネオンに 飾られた
クレオパトラの 悲しい笑顔
呼びかけて 言葉通わぬ人の子も
目頭 あ-めがしら 濡らす数寄屋橋

三(男.女)
遠いふるさと 遠い人
花の都の 春待ち侘びて
うすれゆく 水の夕陽に 目をやれば
皇居の あ-皇居の 杜も霞の中


一世紀 小Asia 最大都市의 遺跡 에페수스

터키의 古代 遺跡은 大部分 로마나 비잔틴 帝國과 聯關돼 있습니다. 現在 터키 國土의 大部分을 차지하는 小Asia(아나툴리아) 地域은 11世紀 셀주크 투르크가 進出하기 前까지는 유럽 基督敎 文明의 勢力圈이었습니다.

그로 因해 遺跡地 相當數가 基督敎遺跡과 軌를 같이합니다. 聖書에 나오는 初期 基督敎 主要敎會 7곳도 모두 터키에 있었습니다. 에페수스는 小Asia 西쪽 에게해 沿岸에 자리합니다.

韓國가톨릭, 改新敎 信者들의 터키巡禮 코스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基督敎의 土臺를 세운 사도 바울이 2-3次 傳導 旅行 때 活動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西紀 53年부터 約 2年間 에페수스에서 天幕을 만들어 生活하며 講論과 傳導 活動을 벌였다고 합니다.

以後 로마로 옮겨 活動하다 投獄되는데, 獄中에서 에페수스 敎會에 보낸 便紙가 現在 新約聖經의 ‘에베소서’로 남아 있습니다. 에페수스는 歷代 敎皇들의 단골 訪問 地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했던 弟子로 알려진 사도 요한이 聖母 마리아를 돌보며 지냈던 곳이 가톨릭 聖地로 指定돼 있습니다. 요한은 로마에서 殉敎한 바울을 代身해 에페수스의 敎會 指導者가 되어 페르가뭄, 이즈미르 等地에서 宣敎活動을 폈다고 합니다.

‘聖母마리아의 집’은 에페수스가 내려다보이는 불불山 숲속에 있습니다. 지난2006年敎皇베네닥토 16世가 이곳을 訪問해 미사(微辭)를 執典했습니다.

에페수스의 歷史는 3千 年 前 히타이트 時代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現在 남아 있는 遺跡은 BC 4世紀 알렉산드로스 大王의 部下였던 리시마쿠스 將軍이 피온山 기슭에 建設한 新都市에 該當됩니다.

新都市 建設 以後 發展을 거듭해 로마時代에 人口 20万 名이 넘는 國際貿易港으로 繁榮을 누렸습니다. 小Asia와 에게 海를 잇는 交易 中心地로 그리스, 페니키아 商人들의 往來가 頻繁했다고 합니다,117年 完工된 圓形劇場을 보면 當時 都市 規模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收容 人員이 藥 2万5千 名으로 서울 蠶室野球場 規模에 肉縛합니다.

華麗했던 에페수스의 榮華는 3世紀 中半부터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고트族이 侵入해 都市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古代 7大 不可思議로 꼽히던 아르테미스 神殿과 市街地가 掠奪되고 破壞됬습니다. 雪上加霜으로 隣近 河川의 土沙가 繼續 流入돼 汎濫하면서 海岸線이 都市로부터 멀어져 港口로서의 機能마저 앓게 됩니다. 잇따른 地震發生에 傳染病까지 猖獗하면서 都市는 結局 沒落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現在 에페수스 遺跡地는 約 l. 5km 區間에 걸쳐 發掘돼 野外 博物館으로 運營되고 있습니다. 大理石 便器가 設置된 公衆化粧室, 回廊과 庭園이 있는 貴族들의 住宅街, 로마 皇帝 하드리아누스에게 바친 神殿, 音樂堂(오데온), 작은 房들로 構成된 遊廓, 上水道 施設인 土管 等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백미는 遺跡地 아래에 자리한 셀수스 圖書館입니다. 에페수스를 代表하는 遺跡으로 2層 構造의 巨大한 大理石 기둥 玄關, 精巧하고 아름다운 彫刻像 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2009年 9月 10日間의 터키旅行을 通해 過去 로마의 歷史와 文化를 接하는 機會기 있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