潮來舟-大月みや子 作詩 たなかゆきを 作曲 川上英一
一 こんな悲しい 涙の恋を 知っているやら 利根の月 まこもがくれに 人目をさけて 今日もさおさすい 潮來舟
二 うわさばかりで 帰らぬ人を 待てば十九の 春がくる 呼んでみましょか 水さおを止めて あやめ祭りの あの夜を
三 潮來お前は 十二の橋を もっていながら 何を泣く わたしゃひとつの 思い出さえも 消えてはかない 捨て小舟
「腹切り様」伝説 千葉県 北東部 香取市(かとりし) 小見川(おみがわ)에 있는 한 善光寺(ぜんこうじ) ‘腹切り様(はらきりさま)’墓地와 碑石. 이 곳에서 所願을 빌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伝説이 있어 예전부터 神聖視되어 왔습니다. 지금도‘パワースポット’으로 여겨져 사랑에 苦悶하는 젊은 女性들이 符籍처럼 墓碑 一部를 떼어간다고 합니다.
18世紀後半 小見川 마을에서 海上 運送船 仲介業을 하던 平塚屋(ひらつかや)는 그 地域을 支配하는 藩과 去來를 하며 巨商으로 繁昌하고 있었습니다. 主人의 외동딸 弥生(やよい)는 마을에서 有名한 美人으로 마음씨 고운 아가씨였는데 어느 날 原因 不明의 難治病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걱정하던 아버지는 周邊 旅館에 江戸에서 온 젊은 医師가 머무르고 있다는 消息을 듣고 水野源之進(みずのげんのしん)이라는 이름의 医師에게 딸을 治療해 달라고 付託했습니다. 그리고 “萬若 病이 나으면 當身의 所願은 무엇이든 들어주겠습니다”라고 約束했습니다.
源之進이 熱心히 治療한 結果 弥生는 漸次 回復되기 始作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의 사이를 容納할 수 없는 男性이 있었습니다. 以前부터 弥生에게 好感을 품고 있던 藩 幹部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同僚 武士들과 함께 源之進을 襲擊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元來 武士였던 源之進은 莫强했고 그들은 싸움에서 지고 逃亡가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敗北해 화가 난 幹部는 平塚屋를 脅迫했습니다. “弥生를 며느리로 보낸 다면 容恕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源之進을 죽이고 平塚屋도 亡하게 만들겠다.”
先祖 代代로 이어 온 家業을 亡칠 수 없다고 생각한 平塚屋는 源之進에게 小見川에서 떠나 달라고 付託했습니다. 源之進은 平塚屋가 約束을 어긴데 憤怒했지만 ‘商人의 立場도 理解해야 한다. 弥生는 나 以外의 男性과 結婚할 마음이 없어. 나도 사랑을 버리고 逃亡친다면 武士의 羞恥다.’라며 苦悶에 빠졌습니다.
結局 두 사람의 사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源之進은 平塚屋가 祖上의 位牌를 安置하는 善光寺 境內에서 割腹했고 그의 뒤를 쫓아 온 弥生도 목을 찔러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죽은 두 사람의 幸福한 얼굴을 본 마을 사람들은 저 世上에서 누구의 干涉도 없이 夫婦가 되었다는 所聞을 퍼뜨렸고 그 들의 墓地를 ‘腹切り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平塚屋에서는 善光寺에 山門을 지어주고 두 사람의 冥福을 빌었다고 합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