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の風になって-秋川雅史 日本語詞 作曲 新井満
一 私のお墓の前で 泣かないでください そこに私はいません 眠ってなんかいません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二 秋には光になって 畑にふりそそぐ 冬はダイヤのように きらめく雪になる 朝は鳥になって あなたを目覚めさせる 夜は星になって あなたを見守る
三 私のお墓の前で 泣かないでください そこに私はいません 死んでなんかいません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歌の背景 芥川龍之介(あくたがわりゅうのすけ) 賞을 받은 作家 新井満(あらい まん)이 노래한 作品입니다 曲을 만든 契機는 그의 親舊 아내가 急逝하여 그 女 死後 同僚들에 依해 編輯된 追悼文集 안에 作者不詳의 “A Thousand Winds”란 詩가 있어 그것에 깊은 感動을 느끼고 原詩(下記)를 찾아내 独自的으로 日本語 歌詞를 부쳐 스스로 노래 불렀습니다 그것을 個人으로 CD 30余枚를 만들어 親한 親舊에게 膳物하였는데 그때가 2001年의 일이 였습니다.
A Thousand Winds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s rain.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 b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 that shines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2003年8月 이것이 朝日 新聞 天声人語에 紹介되었는데 問議가 殺到 하여 같은 해 11月에는 “千の風になって”라는 타이틀로 詩集과 single이 同時 市販되었습니다 single은 23週 連続 long hit를 記録하였습니다.
2004年7月에는 이 曲을 主題歌로 한 映画“千の風になって”가 公開되어 더욱 人気를 끌었는데 現在는 新垣勉 スーザン・オズボーン 秋川雅史 等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A Thousand Winds”는 日本의 一部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습니다만 英語圏에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데 親한 사람이 죽으면 자주 朗読된답니다.
最近에는 뉴욕 世界貿易센터가 2001年9月11日의 테러로 崩壊한 뒤 그 撤去地 Zero ground에서 열린 追悼集会에서 아버지를 잃은 11歳 少女가 朗読하여 많은 사람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이 노래가 有名해진 데는 原作者 찾기였는데 以下의 記述은 主로 英國의 제프・스티본스(Geoff Stephens)의 CD“To All My Loved ones”에 붙여진 文章을 参考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詩에 魅了되어 1989年 以後 經路를 찾는 旅行을 繼續해 왔으며 1996年 英國国営放送 BBC는 “国民に愛される詩”에 對하여 앙케이트를 實施하였습니다 NHK도“21世紀に残したい心の歌”라고 하는 앙케이트를 하였는데“書籍に載ったことがある詩”가 그 対象이 었습니다.
놀랍게도 主催者가 予想도 못했던 詩가 斷然 一等의 一位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作者不詳이란 것에 타이틀마저 없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로 始作되는 詩였습니다.
企画이 発表되자 이 詩를 希望하는 要請이 殺到 하여 結局 3万 数千 通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当初의 条件에서 벗어나 랭킹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 앙케이트 結果 이 詩가 英國 国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契機는 한 사람의 젊은 英國 兵士의 주검이 었습니다.
그 兵士 스티본•제프리•카민즈(Stephen Jeffrey Cummins)는 1989年3月9日 英國領 北아일랜드(Northern Ireland)의 런던데리(Londonderry) 市内를 랜드 로바로 走行 中 地雷에 依해 죽었습니다.
北아일랜드는 오랜 歲月 英國에서 分離된 아일랜드共和国과의 統合을 追求하는 가톨릭 系 住民과 英國으로의 残留를 希望하는 프로테스탄트 系의 住民과 싸움이 反復되어 왔습니다 이때에 前者의 非合法軍事組織인 IRA(아일랜드共和国軍)이 激化시킨 無差別테러로 카민즈 가 그 犠牲物이 된 것이죠.
그런데 그의 遺品 안에서 発見된 것이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로 始作되는 詩었습니다 카민즈 는 自身의 運命을 予感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事件이 그 詩와 함께 3月10日 字 데일리•메일紙에 報道되어 英國을 始作으로 英語圏에 큰 感動 일으켰습니다 当初에는 카민즈의 作品으로 생각 했습니다만 그 後의 調査로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고 原作者로의 関心은 더 높아져 原作者를 찾기에 힘이 실렸습니다 前述한 제프・스테판스도 그 中에 한 사람입니다.
原作者를 찾는 過程에서 여러 가지 人物이나 伝承이 떠올라 検証 結果가 有力했던 것은 美國의 原住民 인디안 由来 説과 메리・플라이 説 두 個였는데 우선 前者에 對하여 이 詩가 가지는 汎神論的・애니미즘的 이미지를 생각하면 確實히 美國 原住民由来 説이 有力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例를 들면 美國 人生相談의 回答 者로서 알려진 앤•난 다스(Ann Landers)는 1986年10月19日字 “워싱턴•포스트”紙 칼럼에서 “この詩はマカ族(Makah Indian)の祈りだった”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美國 原住民由来 説은 바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原詩를 보면 “weep-sleep, blow-snow, grain-rain, bush-rush, flight-night, cry-die”라고 훌륭하게 脚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相当히 教養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울 수 없지요 美國 原住民에게도 教養이 있는 人物은 있겠습니다만 이 説의 可能性은 相當히 낮아지고 또 이 詩가 有名해 졌을 때 “わが部族の文化遺産だ”라고 主張하는 사람만이라도 있었다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사람이 한 名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난 다스의 마카族 説은 美國 議会図書館의 文献検索의 専門家 다비드•쿠레슈(David Kresh) 가 否定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카族의 親舊에게서 들은 바에 依하면 마카族의 居住地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穀物 밭도 없고 상냥한 가을비도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보다 무엇보다도 美國 原住民은 죽은 者의 魂을 산 者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멀리 하고 싶다는 것이 通例인데 이 詩와 같이 죽은 者가 언제까지나 산 者의 곁에 있다고 하는 이미지는 생각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에 対하여 메리•플라이 説은 相当히 信憑性이 높다고 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 “A Thousand Winds”가 有名해지고 나서 그 經路를 찾던 몇 사람의 저널리스트나 詩의 研究者가 미국•메릴랜드주 발치모아에 사는 한 사람의 女性을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메리•플라이(Mary Frye)었습니다.
英國“타임즈”에 依하면 그 女의 経歴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905年11月13日 오하이오州 덴톤에서 클락夫妻의 아이로 태어나 메리•엘리자베스 라고 이름이 지어집니다 3歳 때 孤児가 되고 12歳 때 발치모아 로 移徙 갑니다.
1927年 그곳에서 洋服店을 經營하는 쿠라우도•플라이 와 結婚하여 딸 하나를 낳지만 1964年에 男便과 死別합니다 그리고 2004年9月15日 99歳에 死亡합니다.
메리는 높은 教育을 받지는 못했지만 記憶力이 좋은 読書家였습니다 “A Thousand Winds”말고도 몇 個의 詩를 썼지만 出版된 일은 없었습니다
캐나다의 CBC 放送局이“A Thousand Winds”에 對하여 그 女와의 인터뷰 한 放送테이프가 남아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은 “A Poetic Jorney”로 放送된 것은 2000年5月로 인터뷰는 그 前年인 1999年에 이루어 진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行하여 졌을 때 메리는 94歲로 自身의 生日祝賀의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以下의 記述은 그 때의 그女와의 對談에 根據하고 있습니다
1932年 메리는 獨逸에서의 亡命者인 마가렛•슈왈쯔콧푸(Margaret Schwarzkopf)이라고 하는 女性과 親舊 사이었습니다 當時 獨逸에서는 第1次大戰의 敗戰 前 나치스의 主導에 유대인排斥이 激化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續續 國外로 脫出하였는데 마가렛도 도 그 中에 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女의 어머니도 脫出하고 싶었습니다만 高齡으로 手足이 不便하여 脫出은 無理이었습니다 부득이 마가렛은 홀로 脫出했지만 어머니를 두고 온 것을 언제나 自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어머니의 消息은 끊어지고 八方으로 모든 手段을 動員하여 수소문하였으나 그녀에게 傳해진 것은 어머니의 死亡消息이 었습니다 그女는 神經衰弱에 빠지고 每日 울며 나날을 지네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쇼핑하러 갔습니다 歸家 後 茶褐色의 종이 封套로부터 꺼낸 쇼핑 物 안에 메리가 산 것을 보고, 마가렛은“それ、母が大好きだったの”라고 하며 쓰러져 흐느껴 울었습니다.
메리가 慰勞해도 울음은 그치지 않고“何より辛いのは、母のお墓に行ってお別れを言えないことよ(…… I never had the chance to stand at my mother's grave and say goodbye)”이라고 말하고 울면서 2層의 自己 房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 때 메리의 손에는 쇼핑 체크를 爲해 鉛筆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突然 그女의 머리에 詩想이 떠올라 茶褐色의 종이 봉지를 찢어 그것에 써 두었습니다 그것이 메리가 처음으로 쓴 詩이었습니다.
暫時 後 마가렛이 多少 沈着性을 되찾고 내려 와 메리가 막 쓴 詩를 내보이면서 그것을 읽은 마가렛은 메리를 끌어안고“この詩は一生大事にするわ” 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그女는 우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마가렛이 그 詩를 職場에서 同僚에게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본 同僚는 聯邦政府印刷所에 勤務하고 있는 親舊를 紹介해 주어 거기에서 몇 部를 複寫하여 周邊 知人들에게 나누어 준 것 같습니다.
이 때부터 이 詩는 獨自的인 生命을 지니고 홀로 걷기 始作했습니다 아래는 CBC의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메리의 오리지널로 紹介된 詩입니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in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softly falling snow. I am the gentle showers of rain, I am the fields of ripening grain. I am in the morning hush, I am in the graceful rush Of beautiful birds in circling flight, I am the starshine of the night. I am in the flowers that bloom, I am in a quiet room. I am in the birds that sing, I am in the each lovely thing.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o not die.
오늘 날에 傳해 지고 있는“A Thousand Winds”와 比較해 보면 最初의 두 줄과 最後의 두줄 밖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正確하게는 最後의 行의 do가 did로 變하고 있어 改變되지 않은 것은 세줄 뿐입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메리가 最初에 提示한 이미지는 조금도 損傷되어 않았습니다 이것은 詩의 中核으로 되어 있는 스피릿(Spirit)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高尙했는지를 如実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단지 CBC의 主張인데도 不拘하고 위의 詩는 메리의 完全한 오리지널이 아니고 몇 사람인가의 손을 거친 뒤의 完成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實際로 이것보다 앞의 詩를 봐준 사람이 몇 名인가 더 있다고 主張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메리의 오리지널이 詩形이 가지런히 整理되어 있어 素朴한 詩이었다고 하여 사람들이 받는 感動은 變함이 없지요.
오히려 素朴했기 때문에, 마가렛의 마음에 스트레이트가 오고 몇 사람 들에게 새로운 詩句를 添加하고 싶다라고 하는 氣分을 일으키게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그렇고 이 詩의 汎神教的•애니미즘的 感覺은 그리스도敎라고 하는 一神敎의 敎義와는 相反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詩가 많은 크리스트(Christ) 敎徒를 感動 시킨 것은 왜일까요?
크리스트(Christ)가 鮮明한 敎理를 가지는 宗敎를 始作한 것은 2000年 밖에 지나지 않고 그 前의 몇 萬年間 人類는 汎神教的•애니미즘的인 精神風土의 안에서 살아 왔습니다 그것은 勿論 그리스도敎의(유대敎나 이슬람敎 等도 같습니다만) 基層에도 남아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마음의 DNA에 새겨진 記憶이 이 詩에 사람들을 感應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문득 생각하게 하는군요.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