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赤とんぼ-タンポポ児童合唱団///歌の背景

bsk5865 2013. 10. 16. 08:26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10.16 06:08

 

赤とんぼ-タンポポ児童合唱団///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4198 


赤とんぼ-宮崎京子(soprano)


タンポポ児童合唱団-赤蜻蛉

赤とんぼ-タンポポ児童合唱団

作詞 三木露風 作曲 山田耕筰


夕焼小焼の赤とんぼ
負われて見たのは いつの日か


山の畑の桑の実を
小かごに摘んだは まぼろしか


十五でねえやは嫁にゆき
お里のたよりも 絶えはてた


夕焼小焼の赤とんぼ
とまっているよ 竿の先


歌の背景

三木露風(みきろふう=1883~1950年)는 兵庫県에서 태어나 戦前을 代表하는 抒情派 詩人의 한 사람으로 相馬御風(そうまぎょふう)野口雨情(のぐちうじょう) 等과도 早稲田詩社를 結成하였습니다

詩集『廃園』은 北原白秋(きたはらはくしゅう)의『邪宗門』과 對等하게 文学史上「白露時代」라고 불리는 한 時代를 쌓아 올렸습니다

『赤とんぼ』는 1921 年 露風32歳 때 北海道의 Trappist修道院에서 만들었습니다

数많은 歌曲 童謡 唱歌를 作曲한 山田耕筰(やまだこうさく)는 말의 엑센트나 뉴앙스를 重要하게 한 曲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노래에서도 「あかとんぼ」와 「あ」를 높게 「かとんぼ」를 낮게 하고 있습니다 当時에는 그와 같이 発音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짓궂은 일로, 지금은 「あかとんぼ」라고 엑센트가 「かと」로 옮겨 버렸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現代의 젊은 뮤지션들과 같이, 말의 액센트 等은 無視한 作曲法 쪽이, 혹은 좋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이 詩는, 意味上 4番으로부터 始作됩니다.

中年이 된 露風가 툇마루나 어딘가로부터 뜰을 내려다 보면, 대나무 울타리나 빨래 너는 장대의 끝에 고추잠자리가 앉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瞬間, 어릴 때의 記憶이 차례차례로 되살아났습니다

누군가(たぶんねえや)에게 업혀 고추잠자리를 본 적이 있었지만, 저것은 언제의 일이었을 것인가. 산의 밭에서 뽕의 열매(오디)를 땄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저것은 꿈이었던 것일까? 저기 나는 아주 젊을 때에 新婦에게 말을 해 버려, 지금은 親家와의 連結도 途中에서 끊어져 버린다는 式입니다.

赤とんぼは는, 『失われたときを求めて』(Proust)의 紅茶와 마드레이누에 該當되는 것이군요. 視覺과 味覺의 差異는 있습니다만. 이 노래에서 자주 問題가 되는 것은 3番입니다. おさと(実家)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 解釋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 意見이 주고 받아 왔습니다.

例를 들어, おさと는 ねえや의 実家(親家)라고 하는 解釋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意見을 支持하고 있습니다. ねえや는 大家(たいけ)으로 雇用되어 그 집의 어린 아이들을 돌보거나 炊事돕기 等을 한 젊은여인 家政婦입니다. 分明히, 아이가 ねえや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경우, ねえや의 実家(親家)와 交流가 있었다는 것은, 그렇게 드물지 않은 케이스였습니다.

그러나, 中年이 되어 어릴 때를 回想하는 境遇, 自身을 아이 보는 ねえや뿐만이 아니고, 그 親家의 消息까지 神經 쓸까, 라고 疑問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露風이 어렸을 때, 母親은 放蕩 三昧의 父親을 싫어하고 집을 나와 버립니다. 露風을 보살피지 않게 된 父親 때문에, 祖父의 손에서 자랍니다 여기에 雇用되어온 「ねえや」라는 追憶이 이 詩의 重要한 모티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생각하면, おさと와 ねえや의 実家(親家) 外에, 祖父의 집, 혹은 自身의 生家(아버지의 집)라고 解釋하는 것도 可能합니다. 卽, ねえや는 빨리 시집을 가 버린, 나의 親家도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른다, 라는 생각입니다.

おさと의 接頭辞「お」를 尊敬語라고 하면, 自身의 親家에 붙이는 것은 異常합니다만, 美化語라고 하면, 그렇게 不自然스러운 解釋이 아닙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