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ムール河の波-合唱団白樺 作詞 不詳 作曲 M.A.キュス、 、補詞 K.B.ワシレフ・S.A.ポポフ
見よアムールに波白く シベリアの風立てば 木々そよぐ川の辺に 波さかまきて あふれくる水 豊かにながる
舟人の歌ひびき くれないの日はのぼる 喜びのうたごえは 川面をわたり はるかな野辺に 幸(さち)を伝える
うるわしの流れ 広きアムールの面(おも) しろがねなし しろがねなし さわぐ川波 広き海めざし 高なりゆく波
白銀なし さわぐ川波 自由の河よアムール うるわしの河よ 故郷の 平和を守れ
岸辺に陽は落ち 森わたる風に さざなみ 黄金をちらす 平和の守り 広きアムール河
我が船は行く しぶきをあげて 舳先(へさき)に立てば 波音高く 開け行く世の 倖をたたえて
見よアムールに波白く シベリアの風立てば 木々そよぐ川の辺に 波さかまきて あふれくる水 豊かに流る
歌の背景 「萬物의 根源인 보르가」「아버지가 되는 아무르」라고 불려지고 러시아 사람들에 있어서도 마음의 根據가 되고 있는 西쪽의 보르가江과 東쪽의 아무르江. 그리고 노래도, 러시아를 代表하는 合唱曲으로 評價되어 이 노래를 듣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르江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南東部와 中國 東北部와의 國境및 그 附近을 흐르는 北東 아시아 第一의 大河. 滿洲語로 사할린•안,蒙古語로 하람렌, 中國語로 黑龍江 或은 쿠로카와(黒河)로 불립니다.
「아무르江의 물결」은, 露日戰爭中의 1903年부터 1905年間에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르江을 기리는 現地 民謠를 와시레후와 포포프가 러시아語로 飜譯하는 것과 同時에, 歌詞를 덧붙여 거기에 큐스가 曲을 붙여 이 傑作이 完成되었습니다. 原題는“Amurskie Volny”.流麗하면서도 迫力도 있는 왈츠로, 우리나라에서도 合唱曲으로서 잘 불려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代表하는 왈츠의 하나인 이「아무르江의 물결」을 作曲한 것이 마크스•아베리에비치•쿵스 МаксАвельевичКюсс입니다. 그는 1877年(1874年이라고 하는 說도 있다) 3月5日 리투아니아, 샤우랴이의 거리의 窮乏한 猶太人 家庭에서 태어났습니다.(오뎃사 胎生이라고 하는 說도 있다)
初等學校 4年을 卒業한. 그의 音樂의 才能을 본 周圍로부터 工夫를 繼續해야 한다고 합니다만, 家庭의 窮乏하여 거의 그의 꿈은 挫折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때 一縷의 所望이 이루어 졌습니다. 帝政 러시아軍의 吹奏樂團의 學生이 되는 것으로 音樂의 工夫를 繼續되게 되었습니다. 그 後, 周圍의 도움으로 오뎃사 音樂學校로 進學합니다. 여기서 그는 作曲家가 된다고 하는 꿈의 實現의 걸음이 始作됩니다. 1896年, 最初의 作品, 왈츠「사랑의 夢想」이 世上에 나옵니다. 그 後 每年, 그의 作品이 繼續 나옵니다. 映畵 女俳優 베라•하로드나에 바칠 수 있었던 왈츠「銀幕의 女王」,「나의 秘密」,「靈魂의 슬픔」,「困難한 人生」, 「찢어진 人生」 等 等
그 後, 運命은 그를 極東으로 이끕니다. 브라지보스토크의 第2( 第11이라고 하는 說도 있다) 東 시베리아 聯隊 軍樂隊隊長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作曲家로서의 才能이 開花됩니다. 많은 行進曲, 왈츠가 이 時期에 쓰여졌습니다. 1903年, 러시아 안에서 마크스•쿵스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해에 잊을 수 없는 왈츠「아무르江의 물결」이 쓰여졌습니다. 到處에서 이 曲이 演奏되어 많은 樂譜가 몇 番이나 出版되었습니다. 또 이 時期,以後에 그의 2번째의 아내가 되는 社會 活動家 베라•야코브레이브나•키리렌코를 알게 됩니다.
第一次世界大戦이 勃發하면서, 쿵스는 第5 코사크軍師団으로 轉屬됩니다. 10月 革命 後는 敵軍의 隊列에 合流하여, 모스크바, 오뎃사, 신페로포리, 彈力을 뽐어내는 自負心으로 樂團을 指揮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犧牲이 된, 그 惡名 높은 白海-발트海 運河 建設現場의 樂團 指揮도 하였습니다.
오뎃사에 돌아온 쿵스는, OGPU-NKVD 蘇聯 秘密警察 聯隊 所屬 軍樂隊의 樂隊長을 맡습니다. 1937年에 設立된 音樂學校에서 學生을 가르치며 여기서 300이 넘는 音樂 作品을 썼습니다. 그리고 곧 第二次 世界大戰이 始作되었습니다. 나치에 支配된 오뎃사에 그는 남습니다. 그를 찾아낸 루마니아 秘密警察 長官 니쿠레스쿠는 쿵스에 生命과 交換 條件으로 讚歌를 쓸 것을 要求합니다만, 쿵스는 이것을 斷乎히 拒否하고, 自身 同僚들과 함께 게토, 絶滅収容所로 사라져 갔습니다. 1942年의 일이었습니다.
「아무르江의 물결」은 잊을 수 없는 音樂作品입니다만, 時間과 함께 사람들의 記憶으로부터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音樂學者 N.피리페트키氏에 依하면, 이것이 다시 빛을 보게 된것은 極東軍 附属 노래와 춤의 앙상블 指揮者 V.A.르미얀트후에 依해서였습니다. 르미얀트후는 S.포포프에 詞를 쓰게 하여 이것을 合唱用으로 훌륭하게 編曲했습니다. 後에 K.바시리에후가 歌詞에 붓을 더해 더욱 퍼져 가게 되었습니다. 現在에도 多樣한 合唱團이 多樣한 編曲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特히 많이 普及되어 있는 것은 V.사카로후 編曲의 것입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