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からたちの花-森麻季///歌の背景

bsk5865 2014. 1. 1. 08:40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1.01 06:03

 

からたちの花-森麻季///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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からたちの花-森麻季

作詞 北原白秋 作曲 山田耕筰

からたちの花が咲いたよ
白い白い花が咲いたよ

からたちのとげはいたいよ
青い青い針のとげだよ

からたちは畑(はた)の垣根よ
いつもいつもとおる道だよ

からたちも秋はみのるよ
まろいまろい金のたまだよ

からたちのそばで泣いたよ
みんなみんなやさしかったよ

からたちの花が咲いたよ
白い白い花が咲いたよ


歌の背景

北原白秋와 山田耕筰의 からたち에 얽힌 追憶은 서로에게 影響을 주었는데 그로 因해, 이 名作이 태어났습니다.

北原白秋는 1918年(大正7年), 34歲인 때, 東京에서 神奈川県 小田原로 移徙했는데, 天神山의 浄土宗 伝肇寺(でんじょうじ)에 臨時로 居處합니다. 그에게는 이 伝肇寺에서 水之尾에 이르는 산길이 마음에 드는 散策路였습니다.

그 途中에 からたち(탱자)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았을 때, 故郷・福岡県 柳川의 初等學校의 通學路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던 것이 떠올라, 그것이「からたちの花」의 모티프(motif)가 되었다고 합니다.

移徙한 해에, 白秋는 鈴木三重吉의 勸誘를 받아 新童謡 運動에 参加하여 児童芸術雑誌「赤い鳥」의 童謡面을 擔當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機會로, 白秋는 童謡를 쓰기 始作합니다.

「からたちの花」는 1924年(大正13年)에 쓰여져 다음해 1925年에, 雑誌「女性」에 発表되었습니다. 「赤い鳥」는 아니고, 어른의 雑誌에 発表하고 싶은 經緯에 對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小田原의 生活을 끝내고 上京한 1926年(大正13年), 童謠集「からたちの花」가 発行 되었습니다. 덧붙여 伝肇寺에서 水之尾에 이르는 길은, 小田原市에서가「からたちの花の小径」로 整備해, 觀光의 關心을 끄는 施設의 하나로 하고 있습니다.

한便 山田耕筰입니다만, 이 時代에 大衆音樂이 아니고, 클래식의 作曲家를 目標로 한 것, 獨逸로 遊學한 것 等에서, 裕福한 집의 도련님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안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 합니다.

事実은 꺼꾸로, 10年에 이르는 父親의 病 때문에, 어렸을 때에는 生活이 매우 窮乏하였습니다. 9歲 때, 夜間 學校를 倂設하고 있는 東京・巣鴨의 印刷所에 들어가 낮에는 印刷의 허드렛일, 밤에는 工夫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寄宿舎의 食事는 허술하고, 成長이 가장 活潑한 時期의 몸에는 營養이 不足하여 印刷所의 周圍의 밭에서 野菜를 도움 받아 生으로 갉아 먹었습니다.

印刷所의 뜰에 からたち의 울타리가 있어, 가을이 되면, 열매가 익어갔습니다. 너무 시큼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野菜와 함께 갉아 먹으면, 어떻게든 먹을 수 있었습니다. 職工들에게 야단을 칠 때면 탱자나무 울타리까지 逃亡쳐, 그 곳에서 슬피 울기도 했습니다.

印刷所의 뜰에 からたち의 울타리가 있어, 가을이 되면, 열매가 익어갔습니다. 너무 시큼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野菜와 함께 갉아 먹으면, 어떻게든 먹을 수 있었습니다. 職工들에게 야단을 칠 때면 탱자나무 울타리까지 逃亡쳐, 그 곳에서 슬피 울기도 했습니다.

탱자나무의 記憶은 따듯한 南쪽地方의 울타리에서 떠오릅니다 京畿地方에서는 탱자나무가 寒波로 自生이 어려워 盆栽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防犯用으로 심어졌던 탱자나무도 住宅事情이 變化하여, 거의 볼 수가 없게 되고 近來에는 茶 栽培用으로 柚子(ユズの実)가 많이 生産되고 있지요.

탱자라는 이름은 알고 있어도, 実物을 본 사람은, 意外로 적을지도 모릅니다.  曲은 4分의 3 拍子와 4分의 2 拍子가 어지럽게 바뀌는 것이 特徵입니다. 그 交替되는 것을 意識하면서 노래하면, 作曲者의 意圖한 效果를 表現할 수 있겠지만, 声楽을 배운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