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脫腸手術을 마치고 (2014,1,24)

bsk5865 2014. 1. 26. 22:36

脫腸手術을 마치고

 

 偶然히 배꼽밑에 볼록 튀어나온 部分이 있어 皮膚泌尿器科를 찾았다. 醫師가 한눈에 보고는脫腸이란다.

 황당하게 들렸으나 說明을 듣고 그럴수 있겠구나 하고 首肯했다. 물론 老衰한 탓으로.......

 이젠 手術을 해야겠지만  그러나 내키지는 않아 혼자만 생각하다가 설이나 쇠고 해볼까 했는데 식구들이 알고 여러곳으로 알아 보고 綜合病院에 診療豫約 節次를 밟아놓고 連絡이 왔다. 豫約日 15日 (水曜日)..

 

 水曜日은 福祉館에서 하는 일이 있기에 午後時間은 쉬기로 하고 파티마病院 조해찬科長의 診察을 받았다. 結果는 脫腸!..자세한 이에 對한 說明을 듣고 手術날자를 잡았다. 19日 入院, 20日 手術, 22日 退院...手術所要時間 30分程度이고 費用도 많이 안 든다고 했다. 手術前 諸檢査(피,소변,심전도, X-rey,등)를 받고 돌아왔다. 이런저런 手術準備를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으나 30分만 참으면 끝나는 것으로만 알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19日 入院하는날.....午後에 막내내외가 왔다. 入院을 爲한 準備에 안사람은 바빴다. 3泊4日 동안 保護者로 같이 있어야하기에 짐이 많았다.

 

入院手續 끝내고 配定된 入院室이 840호 (5인실)......世上 萬事에 運이라는 것이 좋아야하는가봐...窓가에 자리잡는다고 그 쪽으로 希望한것이 바로 옆 寢臺患者가 甚하게 呻吟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직 낮시간인데도 그러 했고 保護者가 아들인듯 한데 알는소리 하지 말라고 더 큰소리로 욱박지르듯이 말하곤 했다. 아마 本人도 患者외에 4名이 入院하고 있으니 未安한 마음으로 그랬을 것으로 理解했다.

  

집사람이 繼續 3泊을 하는것은 無理기에 오늘밤은 큰사위가 같이 있기로 하고 좀 늦게 왔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큰사위는 내가 來日 手術해야 하는데 잠을 못자면 걱정이 되어 看護室에 이야기했고 看護士가 病室로 와서 注意를 준듯...이것을 그  問題의 保護者가 "기분이 나쁘다..大統領이라도 되는거냐..등등..病室의 모두가 쳐다보는 가운데 自己 未安한 마음은 말할줄 모르고 옆사람이 理解해주지 않는다는 不平들....남에게 被害는 주지말아야...아니면 被害者에게  眞心으로 未安하다고 고마운 理解를 求해야 하는데.....아직 先進國에 進入못하는 國民의 意識水準을 여기서도 보는듯했다.

 

 큰사위德澤으로 自救努力에 成功! 子正이 넘어서 獨室(834호)로 옮겨 잠도 잘 수 있었고 退院할때까지 우리 家族끼리 보내게되어 좋았다.

  

子正부터 禁食.링겔 꽂아둔 生活이 시작됐다.

20日 10時가되어 手術室로 가는 寢臺가 왔다. 內衣모두 벗고  手術服만 거친체로 手術臺에 몸을 실었다. 그 때의 두려움이란 말할수 없고  手術室에 들어가서 待機! 全身痲醉냐 局部痲醉냐로 時間을 끌었고 結局 全身痲醉....看護士들의 祈禱소리가 들리고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

 

 ....그리고... 手術은 언제 끝났는지 모르겠다. 看護士가 手術 끝났다고하기에 半信半疑했다. 回復室로 옮겨저 痲醉가 풀릴때까지 기다리고...머리가 많이 아팠다. 痲醉前까지는 手術室이 추웠다. 나 아닌 다른사람들도 많아 手術時間도 各己 다를것이나 그 恐怖와 苦痛스러움은 모두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끝나고 入院室로 돌아온 것이12時30分! 所要時間은 2時間30分이다.

 

繼續 寢臺에 누워있었으나 머리는 아프고 禁食은 繼續...그 때 큰딸이 점심을 準備해 왔기에 나 以外의 家族은 모두모여 會食!...주고받는 이야기만 들어도 흐뭇했다.

 

世上에 生을 얻은 사람으로서 家族이 없다면 얼마나 朔漠한 人生을 살아야할것인가!그래도 나는幸福한 사람이다.이렇게 같이 아파해줄 家族이 除百事하고 달려와 時間을 같이 하고 있어서....夕食時間에 患者밥이 配達됐다. 밥과 국, 반찬4...食慾도 떨어져 달게 먹지못했다.

 

그 밤은 안사람과 같이 보냈다. 왼갖 시중을 들게 하면서...이 밤이 가장 괴로왔던 것은 小便을 볼수 없었던것..夜間엔 인턴들만 몇사람 勤務하는지 SOS를 보내도 와 주질않다가 늦게 와서는  器具를 使用해서 뽑아봤지만 아프고 後遺症만 겪었을뿐 시원한 效果는 못봤다.  이렇게 괴로왔던  밤은 지나가고....

 

21日 아침에도 머리아프고 小便때문에 화장실에 링겔을 꽂은체 자주 드나들었다. 手術한곳의 痛症은  藥기운 때문인지 느끼지 못했다.食慾도 없고 힘도 없으니 앉았다 누웠다 하는것도 힘들었다.  午前에 막내내외가 다녀갔고 漆谷 동생도 다녀갔다. 故鄕에선 5兄弟가 울리고 살았지만 歲月따라 앞서거니 뒷서거니 떠나가고 이젠 끝으로 단 둘이 남았으니 서로 걱정해주는것은 健康뿐이다.

 

午後에 맞딸내외가 저녁밥을 準備해서 왔다. 病院밥에 準備해온 반찬으로 平素보다 달게 食事를 했다. 서울 아들은 마레이시야에서 今日 歸國했고 설 밑이라 바쁜듯 여러사람과 通話는 했다. 아들이 해야할 일을 누나 동생내외가 하고 있으니 젠들 마음이야 어찌 편하겠는가! 그렇게 헤아려보니 애처러운 생각도 든다. 하는일이나 잘 풀려서 떳떳해 지길 바랄뿐이다.

 

 큰外孫子도 電話, 女大生 민지도,出嫁한 外孫女는 SNS에서 慰勞의 말을 傳해왔다. 이런 일 당하고 보니 또 家族의 그늘이 두껍고 얼마나 끈끈한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平素에 表現하면서 살아야겠지만 무뚝뚝한 慶尙道 산골出身이라 오늘까지 아쉬움만 남기고 살아왔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마지막 3泊의 밤은 깊어갔지만 몸은 如前이 不便했다. 이 밤만 지나면 退院한다는  것을 認識하면서......

  

22日 退院하는 날

그 節次도 複雜했다. 外科科長 巡回하면서 "手術 잘 됐고 오늘 退院시킨다"고 했다.傷處消毒하고 入院費 淸算하고 看護室에서 退院後 먹을 藥받았고 2日後 外科科長 檢診받으라고....亦時 退院節次도 막내내외가 와서 處理해 주었다.

 

平常服으로 갈아 입고 昇降機로 내려올때 手術室로 실려들어가는 患者의 눈을 보고 "나와 같은 두려운 생각일것"이라고 한번 더 바라보면서 "당신도 잘 될거라"고 눈으로 일러주었다. 乘用車타려고 바깥찬바람 맞으니 人間社會에 서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11時가 조금넘어서 나왔으니 일단 집에 와 꿀었던 짐 날라놓고 다시 점심을 "해금강"에서 먹으며 고마운 마음을 傳했다.

 

 이렇게 脫腸手術의 場은 끝이 났다. 한 平生 살면서 이런일은 避해간다면 얼마나 幸運일까.. 世上떠난 周圍 親知들을 돌아보면 모두 크고 작게 病院신세지면서 長壽의 길을 걷다가 갔다. 80을 넘겼으니 옛날에 比하면 얼마나 長壽 했는가!

 

物心兩面으로 큰도움을 받아 別負擔없이 良質의 醫療써비스를 받게 해준 내 家族 두딸내외.안사람, 동생에게 큰절을 올려주고싶은 만큼의 配慮를 받았음을 깊이 感謝하면서 餘生을 이어

나가련다.            2014,1,24    들길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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