暗い日曜日-大西ユカリ 日本語詞 岩谷時子 作曲Seress Rezs
一 腕に赤い花を抱いて 吹きすさぶ木枯らしのなか 疲れはてて帰る私 もういないあなただもの 恋の嘆きつぶやいては ただ一人むせび泣く 暗い日曜日
二 ローソクの揺らめく炎 愛も今は燃え尽くして 夢うつつあなたを思う この世では逢えないけど あたしの瞳がいうだろう 命より愛したことを 暗い日曜日
Sombre Dimanche-Damia
作詞J・マレーズ & F・E・ゴンダ 作曲Seress Rezs
一 Sombre dimanche... Les bras tout chargés de fleurs Je suis entré Dans notre chambre le cœur las Car je savais déjà Que tu ne viendrais pas Et j'ai chanté des mots d'amour Et de douleur Je suis resté tout seul Et j'ai pleuré tout bas En écoutant hurler la plainte des frimas ... Sombre dimanche...
二 Je mourrai un dimanche Où j'aurai trop souffert Alors tu reviendras, Mais je serai parti Des cierges brûleront Comme un ardent espoir Et pour toi, sans effort, Mes yeux seront ouverts N'aie pas peur, mon amour, S'ils ne peuvent te voir Ils te diront que je t'aimais plus que ma vie Sombre dimanche.
歌の背景 1933年에 헝가리에서 태어난 伝説의「自殺 송」입니다. 헝가리에서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或은 들은 後에 自殺하는 사람이 続出하여, 販売와 放送이 禁止되었습니다.
作詞는 야보르•라스로, 作曲 세레슈•렛소. 헝가리의 姓名 表記는 우리나라와 같이 姓氏→이름의 順으로, 作曲者의 姓氏는 세레슈입니다. 야보르는, 헝가리의 首都 부다페스트의 레스토랑「키슈•피파(작은 파이프)」의 経営者로, 세레슈는 거기의 피아노 演奏者였습니다. 이 가게는, 지금도 営業하고 있다고 합니다.
発表로부터 3年 後인 1936年, 「暗い日曜日」는, 프랑스에서 샹송으로서 히트 했습니다. 作詞는 쟌•마레이즈와 프랑소와•E•곤다로, 実力派 샹송 歌手의 다미아가 Russian•코러스로 노래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亦是 自殺이 続発했습니다만, 프랑스 政府는 發賣 禁止는 하지 않았습니다. 日本에서는, 같은 나이에 淡谷のり子가 日本語歌詞(上記와는 다른 歌詞)로 불어왔습니다. 日本에서도, 몇 사람의 自殺者가 나왔습니다.
曲은, 前打音을 붙인 四分音標와 二分音標의 反覆으로 始作되어, 이것이 우선 不安感을 일으킵니다. 主旋律은 모두 三連符로 成立되고 있어 게다가 같은 멜로디의 反復입니다. 이것이 單調롭고 鬱寂한 效果를 자아냅니다. 確實히 어두운 曲입니다.
그러나, 自殺者의 続出은, 노래 自体의 魔力에 依하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도, 時代의 閉塞 状況이 主된 要因이라고 봐야겠지요.
1929年 10月 24日의 뉴욕 市場 株価 大暴落이 始作한 世界大恐慌은 深刻化할 뿐이었습니다. 이 일로 資本主義的 基盤이 脆弱했던 헝가리 等 東欧 諸国에서는, 社会가 疲弊해, 混乱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発表된 1933年 1月에는, 히틀러가 獨逸의 首相이 되고, 다음 해에는 総統 兼 首相이 되었습니다. 헝가리의 이웃나라 오스트리아에서도, 나치즘의 猖獗이 極에 達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 노래가 発表된 1936年에는, 나치스•獨逸이, 第一次世界大戦의 敗戦에서 連合国 側의 統治下에 있던 라인 랜트(Rheinland)에 進駐, 새로운 大戦의 발소리가 時時刻刻으로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에 關聯되는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1968年, 作曲者의 세레슈가 投身 自殺했습니다. 언제까지나「自殺」로부터 避할 수 없는 悲運의 名曲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지금의 日本語 歌詞와는 다른 歌詞가 이는데 아마도 淡谷のり子가 노래한 歌詞가 아닌가 합니다만 發見되지 않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