坊がつる讃歌-芹洋子
作詞 神尾明正 補作 松本征夫 作曲 竹山仙史
一
人みな花に酔うときも
残雪恋し山に入り
涙を流す山男
雪解(ゆきげ)の水に春を知る
二
ミヤマキリシマ咲き誇り
山くれないに大船(たいせん)の
峰を仰ぎて山男
花の情を知る者ぞ
三
四面山なる坊がつる
夏はキャンプの火を囲み
夜空を仰ぐ山男
無我を悟るはこの時ぞ
四
出湯(いでゆ)の窓に夜霧来て
せせらぎに寝る山宿に
一夜を憩う山男
星を仰ぎて明日を待つ
五
石楠花(しゃくなげ)谷の三俣(みまた)山
花を散らしつ篠分けて
湯沢に下る山男
メランコリーを知るや君
六
深山(みやま)紅葉に初時雨
暮雨滝(くらさめたき)の水音を
佇(たたず)み聞くは山男
もののあわれを知る頃ぞ
七
町の乙女等思いつつ
尾根の処女雪蹴立てつつ
久住(くじゅう)に立つや山男
浩然の気は言いがたし
八
白銀(しろがね)の峰思いつつ
今宵湯宿に身を寄せつ
斗志に燃ゆる山男
夢に九重(くじゅう)の雪を蹴る
九
三俣の尾根に霧飛びて
平治(ひじ)に厚き雲は来ぬ
峰を仰ぎて山男
今草原の草に伏す
歌の背景
「坊がつる」는, 大分県의 九重町에 있는,大船山•中岳•平治岳•三俣山•白口岳等의 九重 連山에 둘러싸인, 標高 1300 m 前後의 小 盆地입니다. 以前에는 天台宗의 靈地에서, 本坊弘蔵坊이 있었던 때로부터, 「坊がつる」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つる」는, 물이 흐르는 平坦한 땅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以下의 解題는, 川原弘 氏와 法華院温泉 山荘의主人 弘蔵岳久 氏로부터 얻은 情報에 根據해 構成한 것입니다.
1952年 8月, 九州大学의 学生이었던 松本征夫, 梅木秀徳, 草野一人의 세 사람은, 坊がつる의 한 구석에 있는「しんつくし山岳会」所有의 오두막「あせび小屋」에 집을 부탁 받고 暫時 滯在하고 있었습니다.
悪天候가 繼續되어 宿泊者도 끈 키고, 지루했던 세 사람은, 山의 이름을 짜마 추어 歌詞만 바꾼 노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中의 몇 個인가는, 當時 流行하고 있던 ヤットン節의 歌詞만을 바꾼 노래로, 그 外에는 9 連이 되는「坊がつる讃歌」을 만들었습니다.
「坊がつる讃歌」는, 梅木秀徳가 葱花(ぎぼう)勲으로부터 배운 広島高等師範学校(現在 広島大学)山岳部의 部歌가 土臺가 되고 있었습니다.
葱花는, 1939年에 広島高師入学했는데, 山岳部의 部歌는 다음 해의 8月에「山岳部第一歌•山男(登山家)」로 發表되었습니다. 葱花와 梅木와의 関係는 不明합니다.
세 사람이 만든 歌詞만 바꾼 노래는, 同年 12月 發行의 山岳会 会報에 発表되어 다음 해에는「山と渓谷」紙上에도 紹介되었습니다.
ヤットン節의 歌詞만 바꾼 노래는, 「山行ヤットン節」로서 會員의 사이에 불려졌습니다만, 「坊がつる讃歌」는, 멜로디를 몰랐기 때문에, 불려진 것은 없었습니다.
1954年이 되어, しんつくし山岳会会員인 野田広一郎「坊がつる讃歌」의 本歌를 찾아내 譜面과 함께 發表했습니다. 이 노래는, 九州의 登山家나 女子登山家들 사이에 瞬息間에 퍼졌습니다만, 그러나 全國에 알려질 것은 없었습니다.
1977年 여름, 阿蘇山 기슭에서 野外 콘서트가 열려 歌手의 芹洋子도 參加했습니다. 밤에, 芹의 텐트에 기타를 가진 젊은이들이 놀러 오고, 「坊がつる讃歌」를 노래해, 콘서트에서 노래해 보면 좋겠다고 勸했습니다.
그 때의 譜面에는, 作詞 松本征夫 ,梅木秀徳 ,草野一人의 이름만이 記錄되어 作曲者는 不明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芹은 이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들어 同年, NHK「みんなの歌」에서 불러, 크게 히트 했습니다. 「みんなの歌」에서는, 歌詞의 一部를 一般用으로 바꾸어 4番까지의 노래로 放送되었습니다.
이것이 契機가 되어, 이 本歌의 作詞•作曲者를 찾기로 했습니다. 広島大学에 남아 있던 資料에서는「作詞 神尾明生, 作曲 竹山仙史, 編曲 芦立寛」으로 이름이 記載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原爆으로 낡은 資料가 消失되었기 때문에, 그 以上은 알 수가 없습니다.
1978年, 本歌에 對해 照査하고 있던 栃木県의 杉山浩라고 하는 사람이, 1940年頃, 広島高師의 地質鉱物学 研究室의 助手補에「神尾(かんお)」라고 하는 人物이 있던 것을 偶然히 알았습니다.
照査했는데, 그것은 千葉大学 名誉教授(調査当時)神尾明正로, 그가 作詞者의「神尾明生」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神尾는, 大山(だいせん) 近處의 四季를 이미지 해, 「もしもしカメよ」나「荒城の月」도 노래할 수 있도록 作詞한 記憶이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가 作曲者인가는 몰랐습니다. 그 2個月 後, 宇都宮大学 名誉教授(調査当時)武山信治가 作曲者임을 알았습니다. 「竹山仙史」는 武山信治의 書道의 雅号로, 이 때 1回만의 펜 네임이었다고 합니다.
1940年의 6月頃, 武山는 妻男인 芦立寛으로부터, 좋은 詞가 있으니 멜로디를 붙이면 좋겠다고 하는 便紙를 보내,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芦立이 그것을 編曲하고, 山岳部의 部歌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日本 音樂 著作權 協會의 데이타베이스로, 補作者로 松本征夫만이 登錄되어 있는 經緯에 對해서는 모릅니다.
作成者 黃圭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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