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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좋아요-황금심///純宗의 마지막 親耕

bsk5865 2014. 5. 31. 09:08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5.31 05:50

 

님이 좋아요-황금심///純宗의 마지막 親耕(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5113 


님이 좋아요-황금심


님이 좋아요-황금심

작사 월견초 작곡 백영호


간다더니 왜 왔소 간다더니 왜 돌아왔소
한번 가면 다시 못 올 길이라더니
그래도 님이라고 우는 나를 쓰다듬네
무정하고 야속해도 님이 좋아요

대사
왜 왔소~ 밉다더니 왜 왔소 울면서
매달려도 뿌리치고 떠나더니
비 오듯 좋은 님을 귀밑머리
매만지며 원망하고 찿아해도 아~ 님은 정말~


싫다더니 왜 왔소 싫다더니 왜 찿아 왔소
이번 길이 너와 나와 끝이라더니
못 믿을 님이련만 댕기 끝을 매여주네
밉다 하고 싫다 해도 님이 좋아요


純宗의 마지막 親耕

"금일은 동적전(東籍田)에서 친경하시는 경사스런 날이라 백성이 농사에 힘쓰도록 하옵시는 성의(聖意)로 쟁기를 직접 잡고 이끄시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눕기 마련이라 그 누가 성의를 널리 알리지 않으리오 놀며 입고 먹는 자도 차제에 돌이켜 전답과 인연하여 강구연월(康衢烟月)에 격양가를 부를 터이지오."(황성신문 1910년5월5일)

융희 4년(1910) 5월 5일 오전 9시 순종 황제는 영선군 이준용 등 황족과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돈화문을 나서 용두동 선농단(先農壇)으로 행차했다. 순종은 선농단에서 천신지기(天神地祇)에게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제사한 후 선농단 옆 6백평쯤 되는 적전에서 두 마리 흑우가 끄는 쟁기를 잡고 약 백 미터를 친경(親耕)〈사진〉하였다. 예로부터 조선의 왕은 권농의 뜻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해 매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종친과 대신을 거느리고 적전에 나가 밭을 갈았으며, 이때 주위에 늘어선 자들은 태평성대의 우순풍조(雨順風調)를 노래하였다.

순종의 친경에 이어 30여명의 황족과 대신들도 쟁기를 잡고 밭을 나눠 갈고 조를 파종하였다. 순종은 배관(陪觀)차 입장한 70•80대의 노인 10명과 부근 농민 40여 명을 어전으로 불러 경로기민(敬勞耆民)이라는 4자로 훈유(訓諭)하고 술과 안주를 하사하니 노인 일동은 감읍하였다.

내부는 황제의 행차를 위해 도로와 교량을 수축하였으며 각 공사립학교는 학부의 지시로 임원 및 학생 각 10명씩을 친경식에 배관시키고 기타 학생들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 돈화문 앞과 동대문 밖에서 어가를 전송토록 하였다. 한성부민회는 한성 각 방민에게 통첩하여 선농단 어귀에서 어가를 환영토록 하였다. 동적전에는 각 학교 대표자가 입장하여 배관하였고 바깥에는 남녀노소 수만여 명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한가스전기회사도 이들을 태우기 위해 전차 수량을 증편하였으나 차마다 승객이 넘쳐 운행이 힘들 정도였다.

이날 통감을 대리하여 참석하기로 한 이시즈카(石塚) 총무장관은 자신의 자리가 황족과 대신의 자리 다음에 배치된 것을 알고, 종주국의 대표에 대한 대의명분에 어긋난다고 대로하면서 배관을 거부하였다. 궁내부가 급하게 그의 자리를 황제의 좌측에 배치하고 영친왕 자리를 우측에, 황족과 대신의 자리를 그 하단에 배치하고서야 무마되었다.

"융희 삼년 춘 사월 오일이라/ 선농단하 동적전 친림(親臨)하시와/ 천하대본 농사로 세우오사/ 만민의 표준으로 미시는 쟁기/ 삼천리강산 이로 개간일세 /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융희 만만세/ 농부노동 천하다 아니하심이야/ 만승(萬乘)의 지존이온 하물며/ 우리 이천만 신민 더욱 근면일세/ 창름실(倉�S實) 의식족(衣食足) 융희 만만세/ 가색(稼穡)간난 이렇듯 살피오사/ 백성의 즐거움을 더불어 함께/ 사천년 국가 날로 부강일세/ 만만세 만만세 융희 만만세"(황성신문 1909년4월6일)

한 해 전의 친경식에서는 배관한 남녀노소가 이렇듯 황실의 만만세를 노래하였지만, 황제의 친경은 이번으로써 마지막이었고 나라를 지키지 못한 대한제국 황제는 합방 후에 이왕(李王)으로 전락하였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