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향-남인수 작사 김다인 작곡 박시춘
一 실버들 늘어지는 새봄이 돌아오면 내 고향 두메산골 풀피리 그리워라 사시나무 고개아래 누렁 소 풀을 뜯는 언제나 가고픈 건 흙 냄새 고향이지
二 진달래꽃을 따서 머리에 꽂아주면 수줍어 돌아서든 순이야 그리워라 은행나무 기대앉아 십오야 달을보며 달 노래 별 노래를 부르던 고향이지
장사와 娛樂이 어우러진 5일장 100년 전 대부분의 조선인이 이용한 시장은 장시(場市)라 불린 정기시였다. 대도시 주민은 주로 상설점포를 이용하였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의하면, 1911년 장시는 전국에 1084개 있었고 거의가 5일마다 한번씩 열렸다. 비숍 여사는 1895년 황해도 봉산의 장터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마을에는 가게라곤 없었고 있다 해도 아주 적었다. 누구나 상품을 저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장날을 제외하고 무엇을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평상시 잠잠하고 답답했던 마을들은 장날에 일변한다. 떠들썩해지고 울긋불긋해지고 사람들의 물결로 뒤덮인다. 이른 아침부터 장터로 가는 길은 농부들이 팔거나 물물교환할 물건들로 가득 찬다. 주요 도로에는 대개 힘세고 단정하고 잘 입은 상인, 곧 보부상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거나 황소에 짐을 싣고 길을 메운다. 보부상들은 정기적으로 마을 중심부를 순회하였으며, 그들은 부지런하고 믿을 만하다."
100년 전 대부분의 조선인이 이용한 시장은 장시(場市)라 불린 정기시였다. 대도시 주민은 주로 상설점포를 이용하였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의하면, 1911년 장시는 전국에 1084개 있었고 거의가 5일마다 한번씩 열렸다. 비숍 여사는 1895년 황해도 봉산의 장터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마을에는 가게라곤 없었고 있다 해도 아주 적었다. 누구나 상품을 저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장날을 제외하고 무엇을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평상시 잠잠하고 답답했던 마을들은 장날에 일변한다. 떠들썩해지고 울긋불긋해지고 사람들의 물결로 뒤덮인다. 이른 아침부터 장터로 가는 길은 농부들이 팔거나 물물교환할 물건들로 가득 찬다. 주요 도로에는 대개 힘세고 단정하고 잘 입은 상인, 곧 보부상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거나 황소에 짐을 싣고 길을 메운다. 보부상들은 정기적으로 마을 중심부를 순회하였으며, 그들은 부지런하고 믿을 만하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