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あ馬上杯-春日八郎 作詩 村山二永 作曲 一瀬公弘 編曲 桜田誠一
一 栗毛の駒に またがりて 左手にかざす 杯は 武田の軍師 勘助が 戦の前に 敵をのむ ああ出陣の 出陣の 馬上杯
二 つがれし酒の 面に浮く 黒髪ゆれる 姫の影 武田の軍師 勘助の 慕情の心 朱に染めし ああ惜別の 惜別の 馬上杯
三 桃型野牛 脇立の かぶとの露は 只無常 武田の軍師 勘助の 無念の一期 霧の中 ああ天に哭く 天に哭く 馬上杯
"富貴얻어서 道를 行하라" 日本 일으킨 儒商 精神 ‘日本 金融의 王' '日本 資本主義의 아버지' '日本 現代文明의 創始者’……이 책의 著者인 渋沢栄一(しぶさわえいいち1840~1931)를 紹介할 때 따라다니는 修飾語들입니다. 요즘에는 '東洋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기도 합니다.
福沢諭吉(ふくざわゆきち•1835~1901)가 日本의 近代化를 政治 및 敎育 面에서 方向 잡았다면, 渋沢栄一는 '商業이 復興해야 나라가 선다'는 信念으로 33歲 때 官職을 버리고 實業界에 뛰어들어 帝國호텔•東京證券去來所•キリン麥酒 等 500余個의 企業 設立에 關與하면서 '富國 日本'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渋沢는 《論語講義》《論語處世談》 等을 지어 東洋의 代表的 古典인 論語를 商人의 立場에서 徹底하게 再解析해 日本式 資本主義 倫理를 定立한 思想家이기도 합니다. 그 中에서도 《論語와 珠板》은 어릴 때부터 '왼손에는 論語, 오른손에는 珠板'이라는 信條로 살아온 自身의 體驗을 바탕으로 論語를 再解析해낸 力作이자 日本의 現代版 古典입니다. 韓國은 如前히 論語가 東洋哲學者들의 이야깃거리에 머물러 있는 反面, 日本에서는 1927年 이 책이 나온 以後 論語는 經營의 智慧를 담은 책으로 큰 人氣를 끌게 됐습니다.
책은 '靑年諸君들'을 對象으로 한 講演 形式이어서 아주 平易합니다. 그러면서도 平生 論語를 곁에 두었던 사람답게 適材適所의 引用이 壓卷입니다. "나라에 올바른 道가 行해지는데도 가난하고 卑賤하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나라에 올바른 道가 없는데도 富裕하고 高貴하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論語 太白編 13章) 通常 學者들은 道에만 焦點을 맞춰왔습니다. 그러나 常識的으로 보면 이 句節은 道와 富貴의 共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渋沢는 常識을 澤합니다. "論語는 決코 어려운 學術書가 아닙니다. 單刀直入的으로 '庶民의 책'이라고 斷言할 수 있습니다.
孔子의 生生한 목소리를 들으려면 于先 朱子學부터 잠재워야 한다. "江戶時代의 儒學者들이나 宋나라의 儒學者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仁義 道德과 榮利追求는 絶對 矛盾關係가 아닙니다." 그는 이를 題目이 暗示하듯이 義利合一, 道德과 經濟의 合一, 論語와 珠板의 統一이라고 反復해서 强調합니다. 宋나라가 歷代 中國王朝 中에서 가장 幼弱했던 決定的 理由도 그는 朱子學適인 儒學 解析에서 찾습니다. "朱熹는 孔孟의 가르침을 偏狹하게 하고 世上 사람들이 儒敎의 큰 精神을 誤解하게 만들었습니다.
渋沢의 論語 解析이 갖는 힘은 論語와 珠板의 單純한 竝立이 아니라 둘을 完全히 統合시킨 데 있습니다. 論語에 商才의 精神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精神으로 武裝한 商人(비즈니스맨)을 그는 '儒商'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큰돈을 벌고서 商人들에게 高等敎育을 시키기 爲해 一橋, 東京経済, 早稲田, 同志社大学 等의 設立에 깊이 關與했던 것도 그런 脈絡에서 입니다.
하지만 渋沢는 産業化 成功에 따른 20世紀 初 日本의 拜金主義 風潮도 警戒했습니다. 그 解答 또한 論語에 있다는 것이 그의 主張이다. 먼저 孔子는 論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萬若 富가 追求해서 얻을 수 있고 떳떳한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고 賃金의 길을 트는 賤한 일이라도 나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求해서 不當한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하겠습니다." 이에 對한 渋沢의 解析은 이렇습니다. "道理가 뒷받침되지 않는 富貴를 얻는 것보다는 오히려 貧賤한 便이 낫지만 萬若 올바른 道理를 다하고 얻은 富라면 도리어 부끄러워할 必要가 없다." 卽 孔子는 富貴하여 放蕩해지는 것을 警戒한 것뿐인데 後世의 學者들은 孔子가 富貴를 싫어했다는 式으로 誤讀해왔다는 것입니다.
渋沢의 解析이 더 큰 빛을 發暉하는 대목은 그 다음입니다. 올바르게 번 돈을 올바르게 쓰는 것, 卽 社會와 國家의 仁義道德을 높이는 데 使用하는 것이야말로 眞情한 儒商의 社會貢獻 方式이라는 것입니다. 實際로 그는 經濟界에서 隱退한 後 東京養育院, 日本赤十字社, 等 600余 個의 公益團體에 깊이 關與했습니다.
主로 政治的 脈絡에서 孔子를 다뤄왔던 中國도 最近 渋沢의 孔子 接近法에 깊은 關心을 쏟고 있습니다. 2006年 中國 CCTV가 만든 話題의 프로그램 '大國崛起'는 日本을 일으켜 세운 秘訣로 이 책을 注目한 바 있습니다. 反面 韓國은 孔子나 論語가 學界를 넘어선 論議의 對象조차 된 바 없습니다. 그것은 物質的 富의 增加에 따른 精神的 貧困의 問題를 넘어서려는 眞摯한 努力을 하지 않았다는 證據에 다름이 아닙니다. Karl Marx, Weber의 《Protestantism의 倫理와 資本主義의 精神》에 比肩될 수 있는 韓國式 資本主義 精神의 古典 하나 쓰지 못하는 우리의 實力도 問題지만 日本에서 80余年 前 出刊된 이 重要한 책이 이제서야 겨우 飜譯됐다는 事實도 부끄럽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