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寿と厨子王-三田明 作詞 宮川哲夫 作曲 吉田 正
一 やさしい母は佐渡ヶ島 父は筑紫に住むという 幸福うすき姉弟 安寿あわれと波が泣く 厨子王かなしと風が泣く
二 人買い舟とつゆ知らず 今は恨みの由良の海 山椒太夫鬼よりも 酷い男とくちびるを かめども涙を呼ぶばかり
三 柴刈る我は男の子 いかな責苦に耐るも かよわき腕に杓子をとり 汐汲む姉のいたましさ 想えばこぼるる萩の露
安寿と厨子王あらすじ
森鴎外(もりおうがい.1862~1922年)
本名은 森林太郎(もりりんたろう)이며. 夏目漱石(なつめそうせき)와 함께 日本 近代 文學의 一人者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喜劇家,評論家,飜譯家,軍醫官으로도 活躍했습니다.
1862年 島根県에서 태어난 森鴎外는 19살의 나이에 東京大学医学部를 卒業한 뒤 陸軍 軍医官이 됩니다. 그 後 陸軍省의 命을 받아 1884年부터 4年 間 独逸에서 衛生學 工夫에 邁進하는 한편 文學과 哲學,美學 等에도 깊은 造詣를 갖게 됩니다. 1890年 小說 「舞姬」를 發表하면서 文人의 길에 들어섰으며,末年에는 史伝과 考證의 世界에 入門하기도 하지만 1922年,享年 61歲의 나이에 萎縮腎과 肺結核으로 안타깝게 삶을 磨勘합니다.
代表作으로는 「舞姬」「이타 섹스아리스-성적인 삶(vita sexualis)」「기러기 (雁)」「阿部一族」「 渋江抽斎(しぶえちゅうさい)」等이 있습니다.
지금에 紹介하는「山椒大夫(さんしょうだゆう)」는 1929年에 發表된 短篇 作品입니다.
あらすじ
平安時代 末(12世紀 末) 東北地方의 官吏였던 平正氏(たいらのまさうじ)는 政府 方針에 反対하다 筑紫国(つくしのくに)(지금의 福島県)으로 左遷되고 맙니다. 男便 平正氏 를 만나기 爲해 길을 떠난 그의 아내와 어린 男妹(14살의 安寿(あんじゅ)와 12살의 厨子王(ずしおう)는 途中에 人身賣買 團의 속임수에 빠져 어머니는 佐渡(新潟県 앞바다에 떠있는 섬)의 農家로 팔려가고 男妹는 丹後国(たんごのくに. 京都府 北部의 山椒大夫라는 貪慾스럽고 非情한 富者에게 팔려가게 됩니다.
두 男妹는 山椒大夫의 집에서 종 노릇을 하면서 逃亡치기로 決心을 하지만 同生이 無事히 逃亡칠 수 있도록 누나는 自殺을 하고 맙니다. 脫出에 成功한 同生은 朝廷에 出師하여 平正道(たいらのまさみち)로 이름을 바꾸고 마침내 높은 官職에 오르지만 아버지는 이미 世上을 뜬 뒤였습니다.
安寿と厨子王丸(あんじゅとずしおうまる)는, 童話로. 安寿と厨子王라고도 합니다. 中世에 成立된 説経節「さんせう大夫」를 原作으로 한 浄瑠璃(じょうるり)等의 演題로 演技하여 온 것을 어린이에 適合하게 改変한 것입니다. 緣故가 있는 各地에서 民話化되고 있으며. 近世에 이르러 그림책 等의 書籍에서 児童文学으로 자라잡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磐城(いわき)의 官人의 아들, 安寿와 厨子王의 오누이가 山椒大夫의 奸計로 어머니와 뿔뿔이 흩어지고, 安寿가 犠牲된 뒤 厨子王이 어머니와 再会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槪要는, 앞의 奥羽五十六郡의 太守인, 岩城判官 正氏의 一族은, 讒言(참언)에 依해 筑紫(つくし)로 流配됩니다. 本國에 남겨져 身世가 찌부러진 正氏의 아내와 두 아들, 安寿와 厨子王은, 正氏를 찾아가 自進해 越後 直江津에 겨우 到着했을 때, 人身 賣買의 山岡太夫의 손에 묶여, 아내는 佐渡二郎의 손으로 佐渡에게, 오누이는 宮崎라고 하는 人身 賣買의 손으로 丹後由良湊의 甲富인 山椒太夫에게 各各 売渡되었습니다.
山椒大夫의 밑에서 오누이는 酷使되면서. 男同生은 하루에 석 짐의 장작을 베어야 하고, 누나는 하루에 석 짐의 潮水 퍼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짬이 생기면 水草나 藻를 말리는 일을 도와야 하고, 실(糸)을 뽑는 일도 해야 했습니다,
또 마구 부려져, 男同生은 섶나무를 벨 때 쓰는 낫을 怨望하고, 누나는 潮水 푸는 桶에 대고 울었습니다. 어느 날, 누나 安寿는, 男同生 厨子王에게 秘密히 달아나기를 勸합니다만 들키어 그女는 얼굴에 인두질을 當했지만 皮膚를 保護해주는 地蔵의 德澤으로 痕跡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男同生은 머지않아 逃亡쳐 멀리 갔지만, 그女는 火刑으로 들볶아 죽음을 當했습니다. 때는 永保2年正月16日, 安寿16歳, 厨子王13歳었습니다. 安寿의 魂魄이 이 땅에 머물러 어머니와 男同生에게 恒常 따라다니고, 一念 자주 岩城의 집을 再興시켰다라고 합니다.
厨子王은 丹後의 国分寺로 逃亡쳐 寺僧의 도움으로 京都 七条朱雀의 権現堂으로 보내져, 거기에 또 摂津의 天王寺에서 寄食하는 동안에, 梅津의 어느 養子가 되고, 結局 一家没落의 経緯를 朝廷에 奏上하여, 判官 正氏의 罪는 容恕되어, 엣 나라를 받고, 讒言者(참언자)의 領地는 沒收되어, 厨子王에게 下賜되었습니다.
岩木家 再興의 機運에 惠澤을 받은 厨子王은, 丹後, 越後, 佐渡의 안에서 若干의 土地를 얻고 싶다고 請願하고, 容恕되어, 領主가 되어 丹後로 가, 親切하게 国分寺의 僧侶에게 報答하고, 山椒大夫와 아들 三郎를 톱 연줄로 죽이고, 越後에서 山岡太夫를 죽였습니다.
佐渡에 어머니를 訪問하고, 片辺 鹿野浦로, 어머니가 後世에 새가 되여 새를 모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도 서로 둘러쌌습니다. 「あんじゅ恋しやホーラホイ ずしおう恋しやホーラホイ」 厨子王은 이것이야말로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달려 들어 매달렸습니다. 기쁨의 눈물에 英靈이 미치나 어머니의 눈은 벌어지고, 母子는 다시 서로 껴안았다고 합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