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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島千太郎旅唄-伊藤久男.二葉あき子///退溪 李滉과 妓生 杜香과의 사랑

bsk5865 2015. 3. 10. 08:59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3.10 06:02

 

お島千太郎旅唄-伊藤久男.二葉あき子///退溪 李滉과 妓生 杜香과의 사랑(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6920 


お島千太郎旅唄-伊藤久男.二葉あき子


お島千太郎旅唄-伊藤久男.二葉あき子

作詞 西條八十 作曲 奥山貞吉


春の嵐に 散り行く花か
風にまかせた 身は旅役者
更けて流しの 三味の音聞けば
捨てた故郷に 捨てた故郷に 
また涙


雁が啼く啼く 旅空夜空
お島痛かろ わらじの紐が
今日も吹くかよ 男体嵐(オロシ)
つなぐ手と手が つなぐ手と手が 
また冷める


清い心で 旅するからは
何の辛かろ 野末の仮寝
里で夜明けの 峠で暮れて
月に夫婦の 月に夫婦の 
旅姿


退溪 李滉과 妓生 杜香과의 사랑

退溪 李滉은 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梅花를 노래한 詩가 1百首가 넘는 다네요. 이렇게 놀랄 만큼 큰 執念으로 梅花를 사랑한 데는 理由가 있었습니다. 바로 丹陽郡守 時節에 만났던 官妓 杜香 때문이었습니다.退溪가 丹陽郡守로 赴任한 것은 48歲 때였습니다. 그리고 杜香의 나이는 18歲였습니다.

杜香은 첫눈에 退溪에 반했지만 處身이 풀 먹인 安東布처럼 빳빳했던 退溪. 그러나 當時 夫人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退溪는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雪中梅와 같았던 杜香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杜香은 詩와 書와 伽倻琴에 能했고 特히 梅花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個月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退溪가 慶尙道 豊基郡守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杜香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變故였습니다. 짧은 因緣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離別은 杜香이에겐 견딜 수 없는 衝激이었습니다.

離別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습니다. 退溪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來日이면 떠난다. 期約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杜香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詩 한 首를 썼습니다.

"離別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離別은 結局 너무나 긴 離別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1570年 退溪가 69歲의 나이로, 世上을 떠날 때까지 21年 동안 한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退溪를 떠나 보낸 뒤 杜香은 懇曲한 請으로 官妓에서 빠져 나와 退溪와 자주 갔던 南漢江가에 움막을 치고 平生 先生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退溪가 丹陽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杜香이가 준 壽石 2個와 梅花 花盆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退溪는 平生을 이 梅花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습니다. 退溪는 杜香을 보듯 梅花를 愛之重之했습니다. 先生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梅花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梅花 花盆을 다른 房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退溪先生은 그 뒤 副提學, 工曹判書, 禮曹判書 等을 歷任했고, 末年엔 安東에 서 隱居했습니다. 그리고 世上을 떠날 때 退溪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梅花에 물을 주어라."

先生의 그 말속에는 先生의 가슴에도 杜香이가 가득했다는 證據였습니다.

"내 前生은 밝은 달이었지. 몇 生涯나 닦아야 梅花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退溪先生의 詩 한 篇입니다.

退溪先生의 訃音을 들은 杜香은 4日間을 걸어서 安東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丹陽으로 돌아온 杜香은 結局 南漢江에 몸을 던져 生을 마감했습니다. 杜香의 사랑은 한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한 切迫하고 峻嚴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때 杜香이가 退溪에게 주었던 梅花는 그 代를 잇고 이어, 지금 安東의 陶山書院 入口에서 그대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