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死六臣)의 변(變)은 세조 2년인 1456년 6월에 벌어진 혁명도 아니고
난(亂)도 아니고 단지 다섯 사람의 집현전 선비들과 한 사람의 무인(武人)
유응부가 모의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불발로 끝난 ‘변’ - 애달픈 꿈
처참한 악몽으로 막을 내린 끔찍한 불상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스승 함석헌은 이성계의 야욕에서 비롯된 조선조 500년이
우리 역사 5천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와
이개 그리고 유성원과 유응부의 흘린 의로운 피가 한 줄기 빛이 되어
그 어두움을 밝힌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성삼문과 그의 동지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불의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성삼문이 인두로 그의 등을 지지는 형리를 향해 “이 놈아 식었다
더 달구어 오너라”고 일갈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그가 거열(車裂)당하게 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이렇게 읊었답니다
북소리 덩덩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네 황천길에는 여인숙 하나도 없다는데
이 밤을 뉘 집에 묵어 갈건가 이 시를 암송할 때엔 내 눈에 눈물이 어립니다
성삼문의 아버님도 그의 동생 셋도 그리고 그의 아들 넷도
(막내는 아직도 젖먹이였다는데!) 몽땅 죽임을 당했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피를 강처럼 흘린 태종(이방원)의 허리에서
성군(世宗大王)이 태어난 것이 기적이었다면
세종의 몸에서 세조가 태어난 사실 또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노량진 언덕의 사육신의 묘역을 찾았습니다
거기에 성삼문지묘(成三問之墓)는없고 다만 성씨지묘(成氏之墓)만 있었습니다
불세출(不世出)의 영웅호걸에게는 이름은 없고 성씨(姓氏)만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