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の花ざかり-笹みどり 作詞 水木れいじ 作曲 水森英夫
一 泣いて暮らして 泣いて暮らして どうするの たかが人生 たかが人生 たかが恋 散った花なら また咲かせましよう 姫百合・すずらん・沈丁花 夢みて 女の…女の花ざかり
二 明日(あす)とゅう日は 明日とゅう日は 宝くじ 当たりはずれは 当たりはずれは 時の運 緑があるよに また笑いましょう 朝顔・ひまわり・酔芙蓉(すいふよう) 信じて 女の…女の花ざかり
三 旅とタルメと 旅とうグルメと 力ラオケと そうよまだある そうよまだある お湯がある なみだ洗って また歌いましよう 秋桜・りんどう・鳳仙花(ほうせんか) 恋して女の…女の花ざかり
四 きっき初めて さっき初めて 逢ったのに 他人みたいな 他人みたいな 気かしない さしつさされつ また夢見ましよう さざんか・南天・笹みどり 咲かせて女の・・・女の花ざかり
静岡の薩埵峠をぶらつく 一 富士山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어디인가? ‘静岡県의 太平洋쪽에서 보는 것이 最高다!’라는 사람도 있고,‘反對 便인 山梨県에서 보는 것이 最高다!’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或은‘富士川의 堤防에서 보는 富士山이 最高!’라는 사람 等 等 多樣합니다. 정말 사람마다 가지各色 이니 아마 正答은 없겠지요.
富士山을 보는‘最高의 場所’가 여럿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絶景’이라고 하는 것은 静岡 南쪽의 太平洋 쪽(正確하게는 駿河湾)을 따라 있는 薩埵(さった) 고개에서 바라보는 富士山입니다. 江戸時代 後期의 浮世絵 畵家 安藤広重(あんどうひろしげ=1797~1858年)의 有名한 ‘東海道五十三次’속에도 이 고개에서 본 富士山과 駿河湾의 景致가 그려져 있습니다.
2月中旬,어느 日曜日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여서 薩埵 고개(244m)까지 하이킹을 하기로 했습니다. 静岡駅에서 JR東海道本線을 타고 東京方面으로 네 번째가 興津駅 입니다. 薩埵 고개는 興津駅과 그 다음 駅인 由比駅의 中間입니다(興津와 由比 모두 静岡県 清水市). 參考로 東京에서 가는 境遇에는 東海道本線으로 興津까지 2時間 50分 걸립니다. 新幹線으로 静岡까지 가서 東海道本線으로 갈아 타고 興津로 가는 境遇에는 1時間 25分 程度 걸립니다. 時間은 더 걸리지만 電鐵 料金은 半도 안 되는군요.
昔も今も交通の要衝 静岡에서 興津까지 가는 車 안에서 처음에는 富士山이 進行方向의 왼쪽에 보이지만, 興津에 가까워질수록 오른쪽 에 보이게 됩니다. 鐵道가 駿河湾을 따라 北東으로 進行하기 때문입니다. 駿河湾의 바깥은 太平洋입니다. 左右로 富士山을 바라보며 ‘오늘은 絶景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期待로 가슴 설레며 興津駅에서 내렸습니다.
興津는 옛 東海道의 駅站 마을 中 하나로,江戸時代 後期의 資料에서는 30余 채의 旅館이 있어 變化했다고 합니다. 時間이 있으면 천천히 거리 風景을 보며 걷고 싶지만, 오늘의 目的은 薩埵 고개에서 ‘絶景’을 보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女性에게 “薩埵 峠はずっとこの道を歩いていけばいいのですか?" 라고 묻자,“そうですね。でもまだかなり遠いですよ”라며 택시라도 타면 될 텐데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表情입니다. 所持品은 카메라뿐. 興津駅에서 東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른便은 駿河湾입니다. 强한 바람이 불어 흰 波濤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 바로 앞은 国道1号線(東海道)과 東名高速道路입니다. 쉴새 없이 車가 오갑니다. 그리고 왼便은 JR東海道本線. 예나 지금이나 交通의 要衝地임에는 變함이 없습니다. 이 周邊은 東海道新幹線도 달리고 있는데, 高速으로 直線을 달리는 新幹線은 가까이에 있는 山中터널을 通過하고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新幹線은 便利하지만 率直히 하이킹 氣分을 滿喫할 때는 그러한 超스피드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습니다.
薩埵峠のいわれ 興津駅에서 住宅街를 15分 程度 걸어가자, 왼편의 丘陵地帶에 薩埵 고개로 보이는 낮은 山봉우리가 보이기 始作했습니다. 地域住民에게 물어보니 “そうだよ。もうちょっと行けば登り口があるよ" 国道一号線 옆의 東海道本線 건널목을 건너자, 시끄럽던 国道에서 갑자기 시골 냄새가 풍기는 山村 같은 雰圍氣로 바뀌었습니다.
눈 앞의 가파른 비탈길을 힘차게 오르기 始作했지만,10分 程度 걷자 벌써 숨이 참니다. 멈춰 서려고 앞을 보았더니 ‘薩埵峠入口’라고 쓰여진 팻말이 있었습니다. ‘えっー! 今までの道は何だったの!?’하는 氣分이었지만,지금까지는 準備運動이었고 이제부터가 正式 고갯길 入口라는 뜻일 거라고 肯定的으로 解釈했습니다.
興津駅에서 薩埵 고개까지 約 4km’라는 標識를 보고 앞으로 고개까지는 2km 程度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팻말 近處 에 있는 標識의 說明에 따르면,鎌倉時代(1192~1333年)에 이 附近의 바다에서 漁夫의 그물에 菩薩像이 걸려 그 것을 끌어올려 이 山에 모신 데에서 薩埵山,薩埵 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漢字가 어려운 것이로군요. 標識에 따르면 이날 걸은 길은 1655年에 朝鮮에서 온 通信使를 江戸(今の東京)로 맞이하기 爲해 생겼다고 하며,그 前까지 사람들은 山이 바다로 튀어나온 絶壁 아래의 海岸을 波濤가 밀려갔을 때 바위를 타고 뛰어서 빠져나갔다고 하는 아주 險한 곳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海岸을 따라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1854年의 大地震으로 地盤이 솟아 올라 陸地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길가에 있는 밀면 쓰러질 듯한 작은 무인 오두막에 비닐 봉지에 넣은 귤이 陳列되어 있었습니다. 8 ~10個 程度의 新鮮한 귤이 한 封紙에 100엔. 100엔짜리 銅錢을 竹筒 구멍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오두막은 고개까지 가는 길 곳곳에 있었습니다.
静岡県은 日本에서도 손에 꼽히는 귤 産地. 興津地方도 조금 높은 山의 傾斜지는 귤나무로 뒤덮여 있을 程度입니다. 이 귤이 나중에 고개에 到着할 때까지 얼마나 저를 기운 나게 해주었는지! 곳곳에서 멈춰 서서 한 봉지를 모조리 먹어버렸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