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しぐれ-夏木綾子 作曲 瀨戸内かおる 作曲 浜田淸人
一 こころ細げに 雷鳥啼いて 朝を待てじに 深山へ帰る ふたり旅した おもいで宿は あゝ雨の中… ひろり寒々 目覚めれば 外は涙の 雪しぐれ
二 秋も深まり 色褪せながら 冬を迎える 山あいの宿 傘を差し掛け 寄り添いながら あゝ飛騨川に… あの日浮かべた 夢ひとつ 外はみれんの 雪しぐれ
三 恋の悲しみ 逃れる旅は 明日も続いて 行くのでしょうか 昨夜続きの 冷たい雨が あゝ音もなく… 女ごころに 降りしきる 外は涙の 雪しぐれ
密 陽 慶南 密陽을 代表하는 觀光地인 호박沼, 位良못, 密陽 댐은 모두 물을 끼고 있습니다. 華奢한 봄날,겨우내 닫혀 있던 山과 들판의 숨구멍으로 浸透한 물길은 맑고 淸雅한 風景을 만들어냈습니다.
映畵‘密陽(Secret Sunshine)’의 李滄東監督은 “小都市의 情趣 美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密陽을 撮影地로 選擇했다고 합니다. 李 監督의 말처럼 密陽은 조금은 落後돼 보이는 人口 11万 名의 작은 地方都市입니다만. 釜山과 蔚山,金海 같은 大都市가 咫尺(지척)에 있어 더욱 작아 보이는지 모릅니다.
神秘로움 숨겨진 溪谷과 寺刹 호박 沼는‘嶺南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迦智山(1千241m)에서 始作된 물길이 溪谷을 따라 흘러내리다 높이 10余 m의 絶壁을 뛰어내리며 패인 못으로 방앗간에서 使用하는 절구의 一種인 호박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瀑布의 하얀 물줄기와 軟豆色과 褐色,검정,灰色으로 얼룩진 바위가 五色빛깔 自然의 아름다움을 表現하고 있습니다. 봄나들이에 나선 觀光客들은 호박 沼에서 記念寫眞을 찍거나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머물다 떠나곤 합니다.
호박 沼 隣近에는 密陽의 3大 神秘 中 하나로 꼽히는‘얼음 골’이 있습니다. 이곳은 3月 中旬부터 얼음이 열기 始作해 三伏더위에 가장 많은 얼음이 생기고,선선한 바람이 불기 始作하는 處暑 무렵부터는 얼음이 녹는 神秘로운 異常氣溫 地帶입니다.
三浪津邑 萬魚山 자락의 萬魚寺에 가면 또 다른 神秘를 目擊할 수 있습니다. 閑寂한 山길을 굽이돌아 닿은 萬魚寺 앞으로는 數많은 褐色 바위들이 하늘에서 쏟아진 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駕洛國 首露王 時節 玉池라는 연못에서 邪惡한 毒龍 한 마리와 다섯 羅刹女(惡鬼)가 온갖 行悖를 일삼자 首露王이 부처님께 說法을 請했는데,이때 東海의 數많은 고기와 龍들이 佛法의 感化를 받아 이 山中으로 모여들어 바위가 되었다는 傳說이 傳해집니다. 바위 中에는 돌로 두드리면 輕快한 쇳소리나 玉 소리가 나는 것들도 있어 觀光客들은 돌밭을 거닐며 바위를 두드려보곤 합니다.
한便 彌勒殿에는 천장까지 닿을듯한 큰 바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바위도 두드리면 淸雅한 소리를 내는데,適當한 거리에서 바위 正面을 보면 부처의 形象을 發見할 수 있습니다.
映畵 속 風景이 된 密陽都心 閑寂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다면 密陽 댐으로 向합니다. 農村 體驗마을인‘平里 綠色體驗마을’을지나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道路를 따라가면 물을 가둔 댐이 나타나고, 댐 뒤쪽으로 草綠빛 山地에 둘러싸인 巨大한 湖水가 視野에 들어옵니다. 댐 展望臺에서 風景을 感想한 後 道路를 따라가면 시원스런 風景을 感想할 수 있습니다. 密陽 北西部 府北面 위양리에 位置한 新羅時代 貯水池인 陽良地(위양못)도 꼭 가봐야 할 곳입니다. 貯水池 周邊으로 아름드리 버드나무들이 草綠빛 줄기를 길게 늘어뜨리고,둑의 亭子 周邊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자리해 아름다움을 傳합니다.
한便 密陽 驛에서 徒步로 10분 거리에는 ‘전도연거리’가있습니다. 李滄東監督의 映畵‘密陽’에서 女 主人公으로 出演한 전도연이 第60回 칸 國際映畵祭에서 女優主演賞을 受賞한 以後 撮影地였던 곳을 觀光 名所化한 것입니다.
오래된 過去 속으로 떠나는 旅行 儒敎 文化遺跡地로 가장 有名한 곳은 慶北 安東입니다. 그러나 密陽은 安東 못지않게 儒敎文化 遺跡地와 名勝地가 많고,歷史的으로 重要한 人物도 輩出했습니다 壬辰倭亂 때의 僧兵長 四溟大師,朝鮮 前期의 性理學者 金宗直,朝鮮 初期 最初의 文衡,大提學이었던 卞季良이 바로 密陽出身입니다.
“불을 더 많이 때거라" 初等學生 時節 읽었던 韓國偉人全集에서 四溟大師(四演堂,1544~1610)의 이 한마디는 痛快하고 재미있는 臺木이었습니다 國王의 친서를 携帶하고 徳川家康와 講和를 맺기 爲해 日本을 訪問했던 그가 沐浴桶에 들어가 있을 때 倭軍이 그를 죽이려 불을 거세게 때자 했던 말입니다.
올해는 四溟大師가 入寂한지 꼭 400周年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일까? 그가 태어났다 는 密陽 西쪽 끝 武安面 古羅里의 四溟大師 遺跡地를 찾아가는 동안 새삼스럽게 그와 關聯된 이 逸話가 떠올랐습니다.
入寂 400周年,四溟大師의 발자취를 찾아 四溟大師 生家址는 기와를 얹은 돌담이 에워싸고 있는 기와집 입니다. 大門 위 에는 ‘松雲大師舊宅’ 이란 懸板이 걸려 있습니다.‘松雲’은 四溟大師의 또 다른 號입니다. 안쪽으로는 사랑채와 大師가 태어난 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山茱萸나무가 노란色 꽃을 수줍은 듯 터뜨리고 있습니다. 生家地 바깥에는 祠堂이 位置하고 있습니다.
生家址를 나와 四溟大師 記念館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忠義門을 지나 환하게 트인 中央廣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廣場 壁面에는 四溟大師의 誕生과 成長,入山과 僧軍 活動, 倭將과의 談判 等 그의 生涯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記念館으로 들어서자 四溟大師의 生涯를 仔細하게 說明해 놓았으며,各種 文獻과 金剛杵, 金剛鈴을 비롯해 當時 僧兵들이 使用했던 칼,화살,念珠,僧服,螺角 等이 展示돼 있습니다. 情報 檢索室에서는 四溟大師에 關한 各種 資料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記念館 뒤便으로는 大師의 銅像이 서 잇는 追募廣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遺跡地 隣近 武安里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表忠碑가 서 있습니다. 四溟大師의 높은 뜻을 기리기 爲해 英祖 18年에 세운 碑石으로 지금도 가끔씩 구슬땀을 흘려 密陽의 3大 神秘에 이름을 올라 있습니다.
한便 丹場面 載藥山 자락에는 西山大師,四溟大師,驥虛大師 等 3大 禪師의 影幀을 奉安한 表忠書院이 있는 表忠寺가 位置해 있습니다. 이곳 博物館에는 1177年에 製作돼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高麗香爐인 ‘表忠寺 靑銅含銀香椀’을 비롯해 四溟大師의 가사와 장삼 敎旨, 司令 깃발,捕虜送還文書,日本上陸行列圖 等이 展示돼 있습니다.
큰 선비 태어나 學文 닦던 곳 府北面 提大里에는 高麗時代 吉再의 學統을 이은 金宗直(1431~1492)의 生家가 자리합니다 꼿꼿한 선비,金宗直의 銅像 뒤에 자리한 生家로 들어서면 6칸 맞배지붕의 木造 기와집이 나타납니다. 고고한 선비의 氣風을 닮은 듯 素朴 하면서도 氣稟이 있습니다.
生家 隣近에는 金宗直을 師叔하던 後學들의 敎育機關인 禮林書院이 位置해 있습니다. 明宗 때인 1567年에 지어졌고 顯宗이 扁額을 내린 賜額書院으로 앞쪽에는 敎育을 하는 空間이,뒤쪽에는 祭禮를 지내는 場所가 있는 典型的인 書院 構造입니다.
入口에는 2層 높이로 지은 讀書樓가 자리하고,求盈堂과 育德詞가 左右로 配置돼 있습니다. 안쪽으로는 儒生들이 居處 하며 學問을 닦던 敦善齋와 直方齋가 있고,가장 안쪽의 藏板閣에는 金宗直의 著書와 文集이 책판形態로 保管돼 있습니다.
잔디 깔린 庭園에는 香나무와 소나무가 싱그러운 草綠빛을 내뿜으며,季節感을 傳하고 있습니다. 讀書樓 마루에 앉아 안뜰을 내려다보면 書冊을 읽는 儒生들의 朗朗한 목소리 가 들려 올듯합니다.
해 질 녘 三門洞과 內一洞을 잇는 密陽橋 隣近으로 向했습니다 江 건너便으로는 검은 실루엣을 드러낸 山과 나무들 가운데 照明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嶺南樓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嶺南樓는 朝鮮時代 後期의 代表的인 木造 建物로 晋州 矗石樓,平壤 浮碧樓와 함께 韓國의 3大 名樓에 屬합니다.
人跡 드문 散策길을 따라올라 嶺南樓 마루에 섰습니다. 고요히 흐르는 密陽江 너머로 都心의 불빛이 별처럼 예쁘게 다가왔습니다. 바람 소리 들릴 듯한 寂寞한 樓閣에서 바라보니 천장에 걸린‘嶺南第一樓’ 란 글귀가 가히 過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