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冬譜-夏木綾子 作詞 石本美由起 作曲 岸本健介
一 船をおりたら さい果て行きの 汽車が待ってる 港駅 風が哭く 恋が哭く はぐれ鴎の私には 帰る時も 帰る時も 胸もない・・・
二 春はどこやら 未練がつのる こころ凍れる 雪景色 雪が舞う 闇に舞う 遠くなるほど 面影は 夢で泣くなと 夢で泣くなと 逢いにくる…
三 うしろ髪引く 思い出荷物 どこに捨てよか 港宿 夢が散る 乱れ散る 生きて逢う日の ない恋は 北の吹雪に 北の吹雪に 埋めたい…
松坡區 芳荑洞 이름의 由來 1636年 丙子胡亂 때 仁祖가 南漢山城으로 避身하자 淸나라 軍人들이 뒤쫓아왔습니다. 淸軍은 南漢山城으로 가는 途中 이 마을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南•西•北쪽이 險한 山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勇猛스러운 防夷軍들이 있었습니다. 山 위에 駐屯한 防夷軍들은 數的 劣勢에도 不拘하고 山을 기어올라오는 淸軍을 向해 활을 쏘고 돌을 던져 退却시켰습니다.
結局 淸軍은 다른 코스로 迂廻해야 했습니다. 以後 마을은 오랑캐를 막았다고 해서,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字를 써서 '防夷골'이라고 불렸습니다. 1914年 '防夷里'로 바뀌었다가 1963年 서울市에 編入되면서 '芳荑洞'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松坡區 芳荑洞의 漢字는 '꽃다울 芳'字에 '흰 비름 荑'字를 쓰고 있습니다. 100余 年 前 漢學을 工夫하던 學者들이 마을 이름의 뜻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고친 것이라고 합니다. 마을이 아늑하고 平和로우며 개나리꽃이 많이 피어 '芳荑洞'으로 지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時計錘를 더 뒤로 돌리면 이곳은 百濟 初期 漢城時代 都邑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慰禮城으로 推定되는 夢村土城과 百濟 古墳群 等이 있습니다. ' 夢村'은 三韓時代부터 불리던 '곰말(큰 마을'이란 뜻)'을 漢字音으로 바꾼 것이라고 하네요.
芳荑洞은 88서울올림픽을 契機로 올림픽公園과 올림픽選手村 아파트 等이 들어서면서 아늑하고 살기 좋은 마을의 命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