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소담 엔카 운영자 16.06.29
14:00
백제(百濟)」를 日本에서「쿠다라」로 읽게 된 내력★....일반 게시판
백제(百濟)」를 日本에서「쿠다라」로 읽게 된 내력 1982년, 서울에서 버스로 新羅의 수도, 慶州를 여행할 때, 경주의 산줄기가 日本 나라(奈良)의 교외와 빼닮은 것이 놀라웠다. 완만하게 이어가는 산줄기가 大和三山(やまとさんざん)을 떠올리게 하고, 비옥한 평야, 천천히 흐르는 江도 나라(奈良)와 비슷했다. 1986년 백제(百濟)의 수도 부여(扶余)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이불을 펴놓은 듯한 부소산(扶蘇山), 흐르고 있는 건가 흐르지 않고 있는 건가 할 정도로 유유히 흐르는 白馬江。 「ふとん着て寢たる姿や東山」이라는 服部嵐雪의 句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고향에 돌아 온 것 같은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날씨도 좋아, 白馬江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扶蘇山 중허리에 있는 고란사(皐蘭寺)의 녹음 속에 들어 누워 자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백마강은 지난날은 白村江(はくすきのえ, 한국말로는 백촌강)으로, 663년, 일본과 백제의 연합군이 나당(羅唐) 연합군과 싸워, 완패 당한 곳이다. 백제가 망하자, 많은 백제사람들이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들 백제사람들도 우리의 선조들이다. 「과연 처음 왔는데도 반갑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제는 일본과 가장 관계가 깊은 나라였다. 당시의 역대 천황은 백제를 형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新羅」(신라) 「百濟」(백제)를 日本에서는 「시라기」 「쿠다라」로 읽는다. 내가 한국에 대해 배우기전까지는, 한국어로도 「新羅」 「百濟」를 「시라기」 「쿠다라」로 읽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에게 「쿠다라」 또는 「시라기」라고 하니 알아듣지 못하여 漢字로 써서 비로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읽는 법이 같은 한자인데도 크게 달라서 서로 머리를 갸웃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어의 音讀으로라면 당연히 「新羅」는 「신라」, 「百濟」는「햐쿠사이」이다. 그러면 왜「百濟」(백제)」가「쿠다라」로 된 것일가. 5~6세기 일본으로서는 百濟는「위대한 大國」「큰 나라」「커다란 나라」였다. 아직 한자를 잘 알지 못했던 일본인에게, 한자와 불교, 유교를 가르쳐 주는 큰 나라다。그래서 百濟라 써놓고「커다란 나라」로 읽어 왔다. 일본어는 원래 「ん」이 없는 언어였다. 그 예로서「東」은 태양이 떠오는 방향이다. 따라서「ひむかし」로 불렀다. 「ひ(日)に向(む)かう方向」라는 뜻이다. 그것이「む」가「ん」으로 되는 撥音便(はつおんびん)의 결과, 「ひむかし」가 「ひんがし」가 되고, 또「ん」이 없는 일본말이니까「ん」이 빠져서 「ひがし」로 된 것이다. 南도「みんなみ」에서「ん」이 빠지고「みなみ」로 되었듯이, 「クンナラ」가「ン」이 빠져「クナラ」, 「くだら」로 발음하게 되었다. 新羅는 어떤가. 때를 전후하여 新羅로부터도 많은 渡來人들이 건너왔다. ‘큰 나라’는 이미 백제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신라사람은 솔직히「シンラの國から来た」 (신라라는 나라에서 왔다) 고 말했을 것. シンラ의 「ン」이 탈락하여「シラ」가 되었고, 「来(き)た」 (왔다)의「き」가 붙어서「しらぎ」로 되었다는 설이다. 「쿠다라」도「시라기」도 다 한자로 써놓고 大和(야마토)말로 읽는 것이다. 그래서 音讀소리와 다른 것이다. 大和말이라 하지만, 「쿠다라」는 한국어의 단축형이고, 「시라기」는 한국어 플러스 일본어로 된 것. 大野敏明씨의 글 <日本 某 日刊紙에 연재된 大野敏明씨의 글에서 발췌축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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