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語雜物函

백제(百濟)」를 日本에서「쿠다라」로 읽게 된 내력

bsk5865 2016. 6. 29. 21:09

보낸사람: 소담 엔카 운영자 16.06.29 14:00

백제(百濟)」를 日本에서「쿠다라」로 읽게 된 내력|★....일반 게시판

生也浮雲起 | 조회 697 |추천 0 |2016.06.28. 10:04 http://cafe.daum.net/enkamom/KWfw/38797         


백제(百濟)를 日本에서쿠다라로 읽게 된 내력

1982, 서울에서 버스로 新羅의 수도, 慶州를 여행할 때, 경주의 산줄기가 日本 나라(奈良)의 교외와 빼닮은 것이 놀라웠다. 완만하게 이어가는 산줄기가 大和三山やまとさんざん을 떠올리게 하고, 비옥한 평야, 천천히 흐르는 도 나라(奈良)와 비슷했다. 1986년 백제(百濟)의 수도 부여(扶余)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이불을 펴놓은 듯한 부소산(扶蘇山), 흐르고 있는 건가 흐르지 않고 있는 건가 할 정도로 유유히 흐르는 白馬江

ふとんたる姿東山이라는 服部嵐雪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고향에 돌아 온 것 같은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날씨도 좋아, 白馬江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扶蘇山 중허리에 있는 고란사(皐蘭寺)의 녹음 속에 들어 누워 자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백마강은 지난날은 白村江(はくすきのえ, 한국말로는 백촌강)으로, 663, 일본과 백제의 연합군이 나당(羅唐) 연합군과 싸워, 완패 당한 곳이다. 백제가 망하자, 많은 백제사람들이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들 백제사람들도 우리의 선조들이다. 과연 처음 왔는데도 반갑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제는 일본과 가장 관계가 깊은 나라였다. 당시의 역대 천황은 백제를 형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新羅(신라) 百濟(백제)日本에서는 시라기」 「쿠다라로 읽는다.

내가 한국에 대해 배우기전까지는, 한국어로도 新羅」 「百濟시라기」 「쿠다라로 읽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에게 쿠다라또는 시라기라고 하니 알아듣지 못하여 漢字로 써서 비로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읽는 법이 같은 한자인데도 크게 달라서 서로 머리를 갸웃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어의 音讀으로라면 당연히 新羅신라, 百濟햐쿠사이이다.

그러면 왜百濟(백제)쿠다라로 된 것일가.

5~6세기 일본으로서는 百濟위대한 大國」「큰 나라」「커다란 나라였다. 아직 한자를 잘 알지 못했던 일본인에게, 한자와 불교, 유교를 가르쳐 주는 큰 나라다그래서 百濟라 써놓고커다란 나라로 읽어 왔다.

일본어는 원래 이 없는 언어였다. 그 예로서은 태양이 떠오는 방향이다. 따라서ひむかし로 불렀다. ()()かう方向라는 뜻이다. 그것이으로 되는 撥音便(はつおんびん)의 결과, ひむかしひんがし가 되고, 이 없는 일본말이니까이 빠져서 ひがし로 된 것이다. みんなみ에서이 빠지고みなみ로 되었듯이, クンナラ이 빠져クナラ, くだら로 발음하게 되었다.

新羅는 어떤가. 때를 전후하여 新羅로부터도 많은 渡來人들이 건너왔다. ‘큰 나라는 이미 백제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신라사람은 솔직히シンラのから(신라라는 나라에서 왔다) 고 말했을 것. シンラ이 탈락하여シラ가 되었고, ()(왔다)가 붙어서しらぎ로 되었다는 설이다.

쿠다라시라기도 다 한자로 써놓고 大和(야마토)말로 읽는 것이다. 그래서 音讀소리와 다른 것이다. 大和말이라 하지만, 쿠다라는 한국어의 단축형이고, 시라기는 한국어 플러스 일본어로 된 것.

大野敏明씨의 글

<日本 某 日刊紙에 연재된 大野敏明씨의 에서 발췌축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