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眞自作글

엣 생각에...[낡은 옛날 어릴때 사진]

bsk5865 2017. 8. 5. 15:09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용케도 남아있는 학교다닐때의 사진 몇장을 만났다.  사진에 담긴 사연들도

미수(米壽)를 맞은 지금도  아직 지니고 있는게 다행이다. 

그때는 국민소득 60弗도 안된 빈한한 나라였었고 하늘만 바라다보는 천수답이 유일한 농토!

이런 환경의 농촌출신 학생의 학창생활이 어떠했을까......

그 위에 정치적 으로 해방! 사상적 (思想的)대립. 독립!... 이 엄청난 혼란의 격동기를 껶였으니...


이 사진은 수험사진 때문에 사진관에 갔다가 찍은듯하다. 모자랑 두루마기는 빌러 입은것...그 때 형편으론

모자, 두루마기 따위는 언감생심(焉敢生心)...겨울에 솜이 든 바지저고리도 과분했다. 비록 사진이지만 부

유층의 그 또래의 모습을 흉내내 봤다.   아마도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1943년 12월 말쯤이 아닐까....

상급학교로 진학하여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행복한 때였다.


이 모습이 일제시대 중학생의 모습이다.  모자는 전투모(戰鬪帽)라 했으며 허리띠 보다 넓은 천으로된 띠를 윗옷위에서  아랫배를 죄다매고 ラントセル(란도세루)라 불렀던 배낭을 메고 종아리엔 게도루라고 불렀던 천(脚絆)으로 감아올려 묶었다 이렇게 병사 (兵士)같은 모습으로 등하교를 했고 교련시간엔 이복장에 나무총을 메고 훈련을 받았다.                 1944년 전쟁말기였으니까  공부보다 근로봉사 교련 농업실습이 더 많았다.그래도 장난도 치며 즐거웠다.

멋을 부린 옆친구는 동향선배로 부유했고 보통이상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사회에 나와선 6.25때  남하 경찰에...그 후 교육계에  헌신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일정때 이 친구와는 잠시 하숙도 같이 했으며 추억이 많았는데.........................


1945.8.15.조국 해방,  여름방학중....비상소집 연락받고 모였다.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제까지 썼던 전투모 벗어던지고

학생모자로 바꾸어 쓴 모습이다.  시국은 모두 치안걱정...자중하길  외쳤다. 이때 학생단체가 큰 역할을 했다. 군중대회에 참석  애국가를 단체로 불렀다.(곡은 螢の 光) 목총 메고 주요기관 야간 경비도 섰다.합숙하면서 그 때 신바람 났던것은 귀했던 소고기국을 마음껏 먹을수 있었던것 기억하고 있다.  상당기간 치안유지에 협력했다.

제법 학생티가 났던 3학년 때인것 같다. 마음이 맞아서인지 자주 어울렸던 친구들이다.별별 장난을 다 치면서 돌아다녔었다. 조금 지나쳐도 학생이라고 너그럽게 봐주고 보호해주던 시대였기에 마음껏 기를 펴고 살았던 황금기... 좌 우 사상문제가 교내에도 대두됐으나 그런곳엔 휩쓸리지 않았다.  미군정(軍政)시대였고  행정질서나 사회상도 많이 바뀌었다..세월이 흘러 오른쪽의 양쪽 귀가 보이는 친구는 일찍 출세 1974년 (45세) 에 석탄공사 부사장까지 올랐다  그후 안타깝게도 1981.9.24.향년 52세로 타계 (당시 매일경제 11면) 했다는 소식을 다른 동기들 통해서 들었다.  천진했던 동안(童顔).장난끼가 많았던 그 친구 다시 봤다. 冥福을 빌면서....


학생으로서 젊은이로서  제법 성숙된 모습, 지금 봐도 의젓하다....세상 겁날게 없다는듯이........지금과 같이

마른 얼굴도 아니고, 날카로운  인상도 아니다.  왜 이 때의 모습대로 못 살고 변해 버렸을까?    꿈 많던 그

시절이 그리운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흘러간 세월의 흔적일 뿐이다.

같이 하숙했던 선배인데 지금은 어디서 뭘하는지 알수 없고  나이들어 무미한 인생살이는 길게도 이어지고

있다.   ..............     2017,8,9,    들길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