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史.軍歌(日)

쓰시마 해전의 토고 헤이하치로(日本海海戰)

bsk5865 2019. 4. 30. 22:16

쓰시마 해전의 토고 헤이하치로


러시아의 '제2태평양함대'(발트함대)는 여순항을 구하기 위해 29,000 km 를 여행하였으나, 뤼순항이 함락 되었다는 소식은 마다가스카르에 있었던 함대의 사기를 꺾었다. 로체스트벤스키(Rozhestvensky) 제독의 유일한 희망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경로는 3가지가 있었는데, 한국과 일본 사이의 쓰시마 해협을 통과하는 길은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었으나, 일본에 매우 가까워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

토고 제독은 러시아군의 진행을 알아차렸고, 여순항이 함락되어 제2·제3태평양함대는 극동의 유일한 러시아의 항구인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할 것을 알았다. 전투 계획이 세워졌고, 군함들은 러시아 함대를 잡기 위해 수리되었다.

일본의 연합함대는 처음에는 6척의 전함으로 구성되었으나 당시에는 4척이 남아 있었으며, 순양함, 구축함, 어뢰정은 그대로였다. 제2태평양함대는 4척의 보로디노급 신형 전함을 포함하여 8척의 전함, 순양함, 구축함, 기타 함선까지 총 38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5월말, 제2태평양함대는 블라디보스톡을 향한 여행의 막바지에 있었다. 불행하게도, 러시아군의 병원선(hospital ship)이 불빛을 노출하여 일본의 무장한 무역순양함 시나노 마루호에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무선으로 토고의 사령부에 알려졌고, 연합함대는 곧 출격을 명령받았다.

여전히 정찰로부터의 정보를 받으면서 일본군은 러시아 함대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러시아 함대의 'T'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5] 일본군은 5월 27일 ~ 28일에 러시아 군대와 교전하였다. 러시아 함대는 사실상 전멸되었고, 8척의 전함과 많은 수의 작은 함정들, 5,000명 이상의 인원을 잃었고, 일본군은 3척의 어뢰정과 116명의 인원을 잃었다. 러시아군은 단 3척의 함정만 블라디보스톡으로 빠져나갔다. 쓰시마 해전 후, 일본군은 사할린 전체를 점령하였고, 러시아는 평화 회담을 청해야만 했다.

[편집] 전투 및 전적

  • 1904년 2월 8일 여순항: 결판나지 않음
  • 1904년 2월 8일 제물포 해전: 일본 승리
  • 1904년 4월 30일 ~ 5월 1일 압록강: 일본 승리
  • 1904년 5월 25일 ~ 26일 남산(요동): 일본 승리
  • 1904년 6월 14일 ~ 15일 텔리수: 일본 승리
  • 1904년 7월 17일 모티엔: 일본 승리
  • 1904년 7월 24일 대석교: 일본 승리
  • 1904년 7월 31일 시무쳉: 일본 승리
  • 1904년 8월 10일 황해 해전: 전략적으로는 일본 승리/전술적으로는 결판나지 않음
  • 1904년 8월 14일 울산 해전: 일본 승리
  • 1904년 8월 19일 ~ 1905년 1월 2일 여순항 포위: 일본 승리
  • 1904년 8월 25일 ~ 9월 3일 요동: 결판나지 않음
  • 1904년 10월 5일 사하: 결판나지 않음
  • 1905년 1월 26일 ~ 27일 산데푸: 결판나지 않음
  • 1905년 2월 21일 ~ 3월 10일 봉천: 일본 승리
  • 1905년 5월 27일 ~ 28일 쓰시마 해전: 일본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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