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마을의 방풍림(防風林)

bsk5865 2021. 10. 3. 17:42

마을의 방풍림(防風林)

 

역사가 깊은 마을을 찾아 가면 마을이 나타나기 전에 그 마을을 안고 지키고 있

는듯한 숲을 볼 수 있다. 마을도 지키고 바람도 막고 경관도 살리고 하는 잘 가꾼

고목군(古木群)를  "쑤"라고 불렀다.

이를 토속 신앙쪽으로 볼 땐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으로도 여기고 신성시(神聖視)

하기도 했다.  또 이것을 경계로  "쑤안"  "쑤밖"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했다.

 

우리 마을도 개척하진 선조께서 조성해 주신 이런 "쑤"를 가지고 있었다.  당집 (성

황당)에서 솔무래 까지는 욱어진 숲이었다. 당집길에는 소나무 아름드리 3그루가

6,25를 지난 후에도 있었고 따라 올라 가면서 버드나무,팽나무, 느티나무........솔무래

는 이름과 같이 아름드리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제법 넓은 공간도 있었고...

 

여름에는 놀이터 보다도 농사일에 지친 피로를 푸는곳....점심 먹고 도랭이 메고와 낮

잠으로 피로를 덜고 오후일에 들어갔다.  어린 우리들은 가끔 이곳 청소도 했고 어른

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던 곳이다.

 

단오때는 그 소나무 가지에 그네를 메고 궁궁이 향을 날리며 남녀노소가 어울려 명절을

보냈었다. 그 그네에 정이 붙을때쯤 되면 어른들이 매정하게 그네줄을 끊어 버려 아쉬웠

던 추억이 남아있다. 아마도 농번기에 들어서니 한가한 놀이 기구가 있으면 도움이 안된

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도 특히 아까운 것이 하나 있었다.  지금 부랭이 마을로 들어 와서 보이

는 느티나무 보다 훨씬 선배인 느티나무가 솔무래에 있었고 그 곁에 팽나무도 있었다.

크기는 밑둥이 두 아름이 다 넘었다고 생각된다.

 

그 늠름했던 아까운 느티나무는 일정시대에 불운하여 조선재(造船材)로 용도가 정해저

강제로 베어갔고 그 일에 주된 책임자는 심XX씨라고 전해 오고 있다. 그 때 베어가지 않

았다면 드믈게 보는 거목이 됐을텐데.....그때 우리 마을 뿐아니라 마을 "쑤"에 쓸만한 느

티나무는 모두 수난의 계절이 됐었다. 지금 살아 있다면 천년기념물 보호수로써 대접 받

았을 터인데....

 

지금 '쑤"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것은 우리 집이 있던 산 언덕에 외로히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 한그루 뿐이다. 그 소나무와 연이어서 수령 200년으 넘는 거송(巨松)들이 수두룩

모여 있었으니 얼마나 장관이겠었는가?

 

그후 해방도 맞았고 6,25도 겪으면서 숲도 논에 그늘진다고 한그루 두그루 베어 나가고

소나무도 늙어서 쓸어진 것도 있고 ....

이렇게 동내 "쑤"가 허무러지는 것과 함께 동세(洞勢)도 쇠퇴하기 시작 했었다.

 

이러한 자연 자원의 보존 가치도 몰라 소홀히 했으니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고을의 주

인의식을 잃은 지금의 현상에서 볼때  모두 부질없는 공허한 잡념일 뿐이겠지....

마을을 가꾼 조상 어른들의 마음은 어떠하실가?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있어야할 것은 모두 갖추고 살았던 마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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