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반구사가(盤邱査家),일찍 떠난 우서방

bsk5865 2021. 10. 12. 06:16

반구사가(盤邱査家),일찍 떠난 우서방

 

작은 형님은 장수(반구)에 우실이 시집 보내놓고 "보로 간다"고__(사가를 방문하는

일)_   어느 봄날 장수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새사가에 어른들을 집으로 모시는 것은 오래도록 이어 내려온 풍습이다.

그때 크게 유행했던 것은 봄옷 위에 걸치는 얇은 "바바리코트"....너도 나고 이것

안입고는 출입을 못 하는듯한 때였기에 그것을 사서 나누어 입고 반구를 찾이갔다.

 

아담한 고가(古家)로 토담집이였는데 대대로 살아 내려온 집인것 같았다. 사가 어른

들과 우서방이 얼마나 극진히 영접해 주는지 참 고마왔었다. 우리 집과 예의  범절이나

사는 모습이 다르지 않아 낯설지는 않았다.

이러한 가풍에서 자란 자식은 어른 대접할줄 아는 소양을 지니고 있어 어디애 있어도

그 처신은 반듯하다.

 

장가 들어 처가에 왔을때 부터 한식구 처럼 알뜰했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사위 대접 받기전에 어른들에겐 깍듯이 모실줄 알았고 식구들과는 허물없이 어울릴 줄도

알고 잘 지내 왔었다.

이렇게 나무랄데 없는 우서방이었는데....키운 아이들 행복한 모습 보면서 즐길 세월을

남겨 두고 아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

만약 우서방이 같이 늙어가고 있다면 나 또한 더 든든하게 의지했을 것이고 사람사는

훈기도 넘쳐 인정이 흐르게 했을 것이다.

 

이 삼촌도 생전에 처삼촌 대접 잘 받았었다. 만사불성(萬事不成)의 10년!  그 고난기

(苦難期)를 보낼 그때 난데없이 옛 학교친구를 만나 그의 권유와 주선으로 한 철 꿀벌을

기른 일이 있었다.  그 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해준이가 우서방이다.

집에 남의 식구,  그것도 손위 식구....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래도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내 바지까지 다름질해 주는 배려!  세상에 이런 조카사위가 어디 있는가?..

 

복 받을 사람인데....

잘 자라 주었고, 원했던 대학 까지 들어 갔고, 남이 부러워 했던 아들을 두고...

그 뒷바라지의 고생도 끝나고 웃을 일만 남아 있는 앞날이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왜 이렇게 공평하지 못할까? 이 세상에 오래 오래 있게 해서 인과응보

(因果應報)의 본보기로 삼아야할 사람을 뭣이 급해 먼저 대려 갔을까?

 

남기고 간 3남매중 아들 형제는 서울 명문대 출신이다. 시골에서 공부했지만 전국에서

모인 수재들과 경쟁하여 선택 받은 것이다.   그것도 형이 먼저 그 영광을 안았고 동생도

뒤질세라 분발하여 역사와 전통의 명문대에 입학한 영예를 안았던 집이다.

 

우서방은 농촌 출신으로 꿈에 부푼 가정을 꾸몄고, 그 첫째 과제인 자녀교육에 성공 했

었다. 그 자식은 부모의 덕으로 굴지의 사회기업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지금은 각기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 동안 다하지 못하고 떠난 우서방 몫까지 우실이 혼자서 자식들의 남은 뒷바라지를

다 해  주었다.

홀로된 그 고생은 알게 모르게 눈물로 감내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서울과 영주를 왕래 하면서 자식들을 지키고 있다.

내외가 같이 살아 늙어 가면서 자식들의 사는 모습 지켜보고 새월을 노래하는 것이

인생인데.....

 

백발을 자랑하는 나이가 됐지만 우실아!  너만이 간직한 그 과거는 훌륭했다. 3남매의

지주목(支柱木)이요, 우씨 가문에 영예로움을 키우고 지켜낸 굳세고 장한 박씨집안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