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海外) 나들이
막내 내외와는 처음 해외여행을 함께 했던 추억이 있다. 비행기도 처음이고....
산골에 살던 사람이 도시로 나왔고 세상 넓은줄 이미 알았으나 그 위에 범인(凡人)이 해외로
나가 본다는 것은 꿈도 못꾼 시대를 살아 왔었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고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긴 덕택으로 해외여행 길도 열리고 관광여행
알선 업체도 생겼다.
이렇게 열린 좋은 세상에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살아 가고 있다는 것만도 큰 축복이다.
해외여행에서 돌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러운듯 들어 오다가 나도 생애 첫 해외 나들이의
꿈이 자식들의 주선으로 이루어 졌었다.
민첩하지도 못한 터에 외국 문물을 접해 본 경험도 없어 좀 두려운 생각도 있던중 그 안내를
위해 막내 내외가 동반키로 했으니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유쾌한 일인가?
날아 갈듯 기뻤던 그때가 그리워 진다.
그 첫 해외 나들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9년이 흘렀구나!
1996, 12, 28,---1997, 1, 1, 해를 넘겨 4박5일 행선지는 동남아로.....
겨울 옷 두껍게 입고 서울에서 비행기를 탔다. 뒤에 알게 된것은 아들 내외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비행장에 나왔는데 뭣이 잘못 됐는지 못 만나고 떠나 왔었다.
현지에 도착하고 분주히 여름옷으로 갈아 입고.......... 겨울 속에 여름인듯 신기 했다.
말로만 그림으로만 보고 들었던 남국의 신기한 풍경을 호기심도 곁들어 구경 했다.
야자수도 보고, 4계절이 없는 상하(常夏)의 나라에서 생산 되는 과일도 맛 보았고 원주민의
생활상도 그 나라들의 음식도 문화도......비록 겉만 보고 넘긴 주마간산(走馬看山) 격(格)
이지만......
특히 1940년대 초(初),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남방전선(南方戰線)의 전황(戰況)을
설명할때 그 이름 많이 들어 보았던 곳, 또 일본 군가(軍歌)에도 많이 나오던 곳이기에
내 학생때의 기억도 들추어 꼽씹어 보면서 보낸 나만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 노래들을 혼자 흥얼거려 보면서........
오래된 일이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으나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 관광객을 유치
하기 위해 경쟁이 심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돈 1000원 지폐도 그대로 받아 주고 언제
배왔는지 아리랑도 불러 주었다.
민속 공연이라 이름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빈약 하고.......
관광버스가 도착하면 특산품이란 이름의 잡다한 물건 바구니 들고 달려 드는 모습들.....
싱가폴의 건물들이 대단했고 들리는 말로는 건축허가때 같은 건물 설계는 허가 안해 주었
다고.....과연 각양각색의 건물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고 어디를 보아도 깨끗 했다.
아세아의 4마리의 용(龍)중 하나로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개발이 시작된 나라다.
"이광요"의 영도력을 눈으로 보는듯 그 현장을 밟았었다.
또 필립핀의 어느 섬에 일류 숙박지란 곳에 들렸을때 방에 작은 도마뱀이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더운 나라에선 흔히 있는 일인듯 했다.
현지인 가이드가 "설운도"를 닮은 젊은이었고 그 익살을 기억할 수 있고 또 우리 말도
잘 했었다.
앞뒤 산으로 막힌 산골 촌사람이 외국까지 가 봤으니 이것도 신분상승이 아닌 큰 출세
(出世)를 한 것이겠지!
처음 경험한 외국여행 막내 내외와 함께 해 주어서 즐겁고 행복했었다. 고마왔다.
세상만사 처음이 어렵고 다음 부턴 쉽다고 했는데 외국여행도 그런것인지 이어서 일본,
상해, 북경등 언니 내외와 다녀 봤고, 2003년엔 오빠와 하와이도 가 봤었다.
소망이 하나 있었다면 우리 가족 함께 여행 한번 가는 것이었는데 이젠 보행도 힘들고
지병도 있고 각자 시간 내기도 어렵고 ......
이것은 영원한 꿈으로만 남겠다.--------------(201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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