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中國 上海 杭州를 觀光하고 (2011,8,27-30)

bsk5865 2011. 9. 15. 11:48

[다시 못갈 곳에 가 본 추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이 글을 적어 본다.]

 

中國의 南쪽 國際都市 上海, 文化의 都市 杭州 蘇州를 보고싶은 생각은 2002年 北京을 가본 후 가졌던 바램이었는데 지난 7月에 큰사위 내외의 주선으로 上海觀光成事되여 설레임속에 出發日인 20011.8,27.(토요일)이 왔다.

 

이 날은 大邱에서 "世界陸上選手權大會"가 開幕되는 날...첫날 行事로 女子마라톤 實況을 空港 TV로 視聽하면서 기다리다가 12:00 中國東方航空機에 搭乘했다. 12:15 出發.. 中食은 內食으로 했고 行時間 1時間 50分 1.028Km을 날아 13:05 (上海時間) 上海浦東國際空港에 到着했다. 이 空港은 仁川空港을 設計한 사람이 設計했단다.

機內 案內로는 上海의 氣溫이 26도C라지만 비가 온 뒤인대도 후덥지근했고 空港 利用客이 많아 入手續이 정말 지루했다.

 

이어 우리와 함께할 가이드와 空港構內에서 "하나투어"깃발을 보고 만났는데 僑胞 朝鮮族出身 高學力金元日君.. 祖父때 蔚珍에서 滿州로 移住했고 本人은 하루삔에서 成長 結婚하여 지금은 上海에 自宅을 所有한 30代의 교포3세로서 다부진 靑年이며 가이드生活 9年의 貫祿의 所有者였다.

 

空港에서 시가로 들어오면서 가이드와 첫인사를 나누고....

上海는 天惠의 땅으로 일찍 開港하여 外國과 文物을 交流했고 特히 黃浦江은 幅 400m, 水深 9m이며 이를 利用한 經濟活動이 오늘의 上海를 있게한 어머니 같은 江이라고 紹介했다.

 

첫 관광코스로 上海觀光에서 有名한 東方明珠展望臺에 올랐다. 높이 468m로 아시아 最大 높이의 放送塔!  그 展望臺에 올라가보니 정말 黃浦江을 끼고 特色있는 빌딩숲이 한 눈에 들어와 壯觀이다.

"天地開闢을 했다"고 말할만 했다. 展望臺에 유리판을 깔아 놓았기에 地上의 光景을 空中에서 볼 수 있게 한것도 特異했다.

 

이어 上海歷史博物館을 찾았다. 規模도 크고 古代로 부터 또 開港以後의 發展相을 한 눈에 볼수 있꾸며진 博物館을 구경했다.特히 漢字의 고장이라 當然할지 모르지만 顔眞卿體의 글씨들이 名筆이 어서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런데 社會主義國家라서 그런지 이를 弘報하는 案內傳單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볼수 없어서 아시웠다. 이어 最高의 繁華街 南京路를 거쳐 食堂으로...

 

夕食은 중국의 少數民族이 運營하는 "태가촌"에서 먹었는데 중국요리를 큰 접시에 담아 回轉式 유리판에 올려 놓고 돌려가면서 작은 접시에 옮겨 먹는 것인데 우리 입에도 맞아 좋았고 그 民族固有의 춤공연도 보여주었다.

 

써커스 구경갈 차례...公演場으로 移動...써커스 중에서도 인기있는 "상해아시청써커스" 총 90분이 所要되는 이公演은 技藝만의 연출보다 一定한 스토-리가 있는 藝術作品을 보는듯.. 特히 오토바이 壁面타기는 壯觀을 이루어 많은 拍手를 받았다.

 

밤 10時가 너머서 첫날 日程을 마치고 4星級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511호실..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호텔이름은 "上海正地豪生大酒店"  같은 방에서 3泊했고 큰딸 내외가 옆방에 있어 든든했다.

 

8月 28日 上海에서 맞은 첫 아침이다.  아침은 호텔食으로...음식의 종류는 많지만 그 맛도 모르고..

부폐式음식은 아직도 익숙치 못하다.밥은 맛이 덜하고 찰기도 없다.빵, 채소, 과일,등으로 간단히 마치고 08:00 杭州로 出發.  高速道路를 利用 3時間30分이 걸리는 長距離인데도 中國사람들은 國가 넓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곳으로 친다고...가는 동안 山은 볼 수 없었다. 路面탓인지 乘車感좀 떨어지고....

 

가이드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中國은 車가 사람을 알아서 避해간다.

有名한 自動車메이커들이 중국現地에서도 組立하고 있고 우리나라 自動車企業들 의 工場도 있으며 販賣는 1位를 찾이한단다. 車를 購入하는것도 어렵지만 番號판  받기도 힘든다고...

 

農村住宅들을 보면서 屋上에 작은 構造物은 納骨堂이라 하고 亞熱帶氣候탓으로暖房施設은 없고 에어콘이 없으면 안된다고...農業政策도 많이 바뀌었는데 毛澤東 死後 開放을 하면서 集團農場의 農土를 50년간 貸與하고 一定量의 農産物은 國家에 納品.....그러나 그것이 收支가 안맞아 農土를 버리고 都市로 몰려왔으나 現 政府에서는 다시 70년간 無償으로 貸與하고 各種 補助金도 주기에  逆으로 歸農現象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中國의 農産品이 世界各國으로 輸出되고 우리도  그 農産品의 큰 消費國이 되어 있다.

生産品은 全數 국가가 買收하고 있으니 販路 걱정도 없다.

또 營農技術도 相當水準에 이르렀고 二毛作, 三毛作까지도 氣候條件이 맞아 可能하다고..

 

14億 중국의 人口政策은 1가구1자녀를 奬勵 (少數民族은 2자녀까지)하고 그 이상이면 過料를 내 出生申告를 한다고...만약 過料때문에 忌避한다면 교육의 惠澤을 받을수 없단다.

 

중국의 兵役制度는 志願制이고 들어가기가 무척 힘든다고...들어가서 만기혹은 연장복무를 하고  除隊하면 좋은 일자리가 保障되고 公務員등으로 배치되어 10년을  勤續하면 집 한채를 받고 일자리도 平生가는 철밥통이란다. 그리고 共産黨員도 될 수 있는 特典이 있다고 했다.

 

古事成語...吳越同舟   吳,越 두나라(893~978)가 勢力을 다툴때 나온 말로 <吳나라, 越나라는 서로 원수 사이지만 같은 배를 타고 風浪을 만났다면 서로 協力한다는 뜻으로> 臥薪嘗膽臥薪은 中國春秋時代 吳나라 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갑기위해 장작더미위에 잠을 자며 越나句踐에게 복수를 맹세하였다고..嘗膽은 敗한 越나라 句踐은 쓸개를 핥으면서 吳나라복수를 다짐했다는것

<마음 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갖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는 뜻으로 쓰인다>

서로 복수를 주고 받던 이 古事의 나라는 蘇州이고 나라는 지금 들어가는 江省이다.

 

地上의 樂園이라는 杭州에 到着하여 점심부터 먹었다.  이름만 듣던 泗川料理라는 데 料理 9種에 밥과  빵이 나오고 그 料理에 별다른 맛은 느끼지 못했다.

 

杭州는 上海보다 南쪽에 위치한 港口이며 900년 전에도 人口 100만이 살았던 文化도시였고 지금은 660만명이 살고 있는 都市...옛부터 上有 天堂이요. 下有 蘇杭라 했단다. <水上都市 蘇州는 못갔지만.>

 

杭州에서 처음으로 城惶閣을 찾아갔다. 吳山 頂上에 位置한 城惶閣은 西湖10景中의 하나이며 또 4大名樓閣中의 하나이기도 하다. 3層 觀景臺에 올라보니 西湖를 포함한 시가지 景觀이 멋찌다. 亞熱帶氣로 모기가 많고 모기의 天敵인 "향당나무"들이 많았다.  이어 900년전에 세었다는 외봉탑도 보고 西湖로  移動..

 

杭州 西쪽에 있는 西湖는 中國10大名勝地의 하나이며 美人 西施를 기리는 뜻으로  西子湖라고도 한다.

3면이 山으로 쌓여있고 안개가 꺼었을때나, 달  밝은  밤, 해 뜰때가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물이 고여 는 호수로 人工的으로 물갈이를 하는데 33일이 所要된다. 또 이 湖水엔 雜草가 없고 水深은 얕으나 밑은 뻘이 쌓여 빠지면 나오기 힘든단다. 遊覽船으로 西湖를 一周하고 서호공원(화항공원)도 돌아 봤다.

 

이어 車로 移動 고무벼개공장도 見學...自國에서 고무나무液을 採取해서 만든 製品이라고 힘주어 자랑했다.   발 맛사지란 말은 中國觀光을 하고 들은 말이다. 별것도 아닌것을 必須觀光商品으로 만들어 돈을  벌고 있고 觀光會社도 꼭 이런것을 끼워서 販賣한다. 그래도 받고 나면 疲勞가 좀 풀리는듯...

 

夕食은 집이름과 출입구를 요란하게 裝飾한  "早春塢梅"에서... 요리 9종을 回轉子에 올렸지만 채가  귀하고 그 맛도 別無 신통.....

 

歌舞쇼.....<杭州가 자랑하는 문화>  우선 觀覽客이 너무 많아 놀랐다. 4幕에 60이 所要.  이름은 舞쇼 南宋時代를 再演한 世界水準의 뮤지컬... 映像과 演劇을 調和시켜 生動感있는 實像을 表現하는데 成功한 力作인듯.....舞臺인데도 實際로 비도 오고, 大砲도 쏘고 爆布도 쏟아지고 ........

 

劇的 效果를  十分 發揮했다. 特히 宋代 皇帝의 生日祝宴에 한국의 부채 장고 춤과 상모돌리기가 아리의 합창장단에 맞추어 상연되어 기분은 좋았다. <한국  觀覽客을 意識한 것인지...아니면 그것도 자기들 文化라고  强辨하려는 건지?...>

 

杭州에서의 日程을 마치고 다시 3시간30분을 달려 上海로 밤12:00쯤에 到着...정말 無理한 日程을 했다.觀光名所가 많은 杭州를 時間이 없어 대충 이렇게 끝난것이 아시웠다.

 

8월 29일..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08:30  민속촌으로 향했다. 高速道路 進入을 위해 市內를 通過했지만  時間이면 出勤時間帶인데도 조용하다. 自轉車. 二輪車가 많고 道路邊은 대형 소철이 화단보일 뿐.....亞熱帶 地方이고  異國風景이라고는 별로 느끼지 못했다.이 곳은 비 오고 흐린 날이 많고 多濕해서 후덥덥하며 겨울에도 -5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더위가 40도 이상이면 모든 活動을 斷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걸  經驗해 보지는 못했단다.

 

10:15 朱家角...물의 도시로 典型的인 江南水鄕...이 村落이 形成된것은 1.700年이라고한다.  保存民俗村으로 開發도 制限되어 잇다. 18世紀 運河의 都市. 東洋의 베니스 등으로 불리며 觀光價値있다.

 

물의 고장이기에 다리도 많으나 그 중 스님이 15년동안 시주를 모아 架設했다는 放生橋가 있고 市場은 소규모 구멍가게 水準이며 "영화 카인과 아벨"을 撮影한 곳이기도 하다.

歷史遺物을 原型대로 保存된 淸朝때의 우체국이 있었다. 1896년 (光緖29년) 에 세운 사설 우체국인데 이름하朱家角郵局.  작은 배를 타고 水路를 따라 周圍景觀도 구경했다.

 

한약방도 들렸다. 診脈하고 病 주고 藥 주고 했던 옛생각이 나서 診脈을 避하려다가 남이 하는데로 應했고...옛과는 달리 强要하는 일은 없었다..이것도 中國經濟가 世界水準이 됐으니 觀光客을 맞는 모습도 進一步한 탓일까....

 

中食에 삼겹살과 찌게를 준비했다기에 모처럼의 韓食이라 기대했는데 삼겹살 맛은 봤고 찌게는 끝내 나오질 않았다. 가이드의 잘못인지  식당주인이 우릴 속였는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瓏潤南珠란 상호를 가진 養殖 진주로 여러 裝飾品을 제작 販賣하는 곳도 보고....

 

이제 마지막 코-스인 프랑스 租界로 獨特한 建築物이 즐비한 新天地거리 및 百貨

店을 돌아보고 大韓民國臨時政府廳舍 자리를  구경했다.

 

여기는 歷代 우리 大統領도 모두 다녀갔다. 2층짜리 聯立住宅으로 廚房,寢室,事務室, 會議室 등으로 나누사용했고 이 좁은 공간에서 亡命政府의 苦難을 忍耐하면서 抗日했고 特히 尹奉吉의사의 義擧 <1934,4,29,裕仁日皇의 生日-天長節-祝賀行事場에서 爆彈投擲 白川大將 및 高官 瀑死>가 實踐된 곳....

 

그후 日帝의 監視 彈壓이 심해 蔣介石 政府의 首都인 重慶으로 옮겼고 光復후 還國했다.  이 廳舍는 프랑스 租界에 있었고 우리 政府의  保全要請으로 1990년에 人民政府가 開發區域에서 除外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젠 國格에 맞게 새로 꾸며 紀念했으면 좋겠고......

 

夕食...마지막 夕食이 만족치 못했으나 크게 개의치 안했다.   待望의 夜景구경......黃浦江에서 遊覽船( 이름中國人壽) 을 타고 上海夜景을 봤지만 "上海는 낮에 보는것과 밤에 보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기에 特異한 것이 있을줄 알았으나 그저 고층빌딩 숲에 네온들이 찬란하게 버쩍거리고 宣傳口號, 그림들이 펼쳐졌다 살아지는 그런것인데 遊覽船에서 1人當 25불을 받고 있어 좀 비싼  價格이 아닌지?  그래도 內國人도 많아 連日 人山人海를 이루니 그 觀光收入이 얼마나될까!.....遊覽船 성기에서 愛唱曲 "北國の春"을 臺灣歌手 鄧麗君이 불러 반가운 마음으로 같이 불러봤다.

 

8월30일 3박4일의 마지막날은 歸路에 오르는 것 뿐이다. 현지시간으로 4시30분 모닝콜!  5시20분 까지 호텔 "첵크아웃"  이어 뻐스로 空港을 향했다. 朝食은 뻐스안에서 빵, 요푸레이, 生水 뿐이다.  空港 근처에 있는 農協販賣場에서 참깨 5KG 우리 돈으로 35.000원에 샀다한국말하는 판매원, 한국돈 그대로  받아주고...上海인데물건 사는데 아무런 不便이 없었다. 한국인에 대한 큰 配慮인지!  중국 농산물을 消費해 주는 봉인지!

 

공항에서 3박4일을 같이한 가이드와 作別하고 搭乘手續 거쳐서 현지시간 08:50 올때와 같은 東方航空비행기에 올랐다.  中食도 朝食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에 기내식이 배달되어 甘食했다.

대구 도착  11:25  입국수속 마치고 歸家

 

3박4일 上海觀光을 마치고...

 

이제까지 上海하면 국제도시, 租界,  스파이들의 암약, 臨時政府, 홍구공원.....등을 떠올리던 곳에 봤다는 것이 내 生涯에 큰 幸運이고 祝福이다 <평생 못 가 본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리고 동방명주탑, 박물관, 가무쇼, 서호의 풍경....등은 오랫동안 記憶할 것 같다.

 

출발부터 귀가까지 늘 곁에서 보살펴 준 큰딸 내외가 고마왔고 어딜 간들 늘 든든했다.

우리가 이 세상 버리고 저 세상으로 영영 돌아간 후라도 같이 여행한 값진 追憶은 오래도록 남아  있으 좋겠다.  고마왔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동안 움직임에 생기가 돌고 삶에 보람을 느낀 행복시간들이었다.                                 

 

 2011,9, 18,    상해를 회상하며....들길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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