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覧の母~ホタル~ -歌川二三子 作詞 作曲 鉄砲光三郎
セリフ 昭和二十年四月七日午後二時二十五分。 戦艦「大和」が海の藻屑と消えました。 後は特攻隊の体当たりしか無かったのでしょうかッ。
一 花は色よく 知覧の海に 行かせともなや あの空へ 帰らぬ命 又一つ
セリフ 「トメおばさんッ、お早う御座居ます」 「まあッ金井さんッ、朝早か」 「おばさんッ、僕今日で十七歳に成りました・ おばさんを母さんだと思って報告に参りました。 今日まで本当に有難うございました」 「今日…行くとねッ」 「金井文博、本日見事敵艦に体当たりする日が参りました。 お別れに自分の故郷の歌を聞いて下さいッ…。唄います。 アリラン アリラン アラリヨ アリラン コーゲル ノモカンダ」 「…金井さんッ、朝鮮の生まれだったのッ」
二 散りに行く身の 此の若桜 死出の旅路を 急ぐ身は 生贄ありて 平和あり
セリフ 「自分はきっと逢いに帰ってきますッ。おばさんの胸にッ」
三 声を限りに 哭く不如帰 季節外れの「ホタル」とは 誓いを守り この胸に
セリフ 「あッ 此のホタルは…金井さんじゃッ。 約束通り帰って来やったとねぇ…来やったとねぇ…」 「金井さんッーッ」
(鉄砲節) 声を限りに泣きじゃくる 爆弾抱いて散って行く 幼い命数知れず 忘れまいぞえ知覧の海に 今なお深く沈んでる 平和日本の生贄がその英霊よ魂よ 何時何時までも安らかに
セリフ 「オモニイーッ」
東映が撮った映画 ~ホタル~
知覧特攻基地
知覧은 1941年 大刀洗陸軍飛行学校 知覧分教所가 開校되어 少年飛行兵 学徒兵出陣의 特別操縦 見習士官들의 操縦訓練을 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戦況이 緊迫해진 1945年 本土最南端의 特攻基地가 되었습니다.
戦局은 衰退의 길로 들어서 이 敗勢를 一挙에 挽回하려는 手段으로 必死必中의“体当たり”攻撃이 敢行되었던 것입니다. 知覧 飛行場은 南北으로 2000m 程度의 滑走路로 障害物이나 언덕이 없어 離着陸이 容易한 飛行場이었습니다 沖縄戦에서는 이 知覧 基地를 主軸으로 万世와 都城基地 等에서 出撃하여 1035名의 隊員이 戦死하였다고 합니다.
最後의 날 그들은 「さようなら」라고 하며 飛行機의 날개를 비스틈이 내려 오면서 地上의 사람들에게 離別의 人事를 하고 開聞 岳 上空으로 사라져 갔다고 합니다.
映画 ~ホタル~
昭和天皇이 죽고 한 時代가 끝났습니다. 鹿児島에서 腎臓病을 알고 있는 아내 知子(田中裕子)와 함께 漁夫生活하고 있는 山岡(高倉健)의 戦友인 藤枝가 青森에서 鹿児島 知覧町에 찾아옵니다 마을에는 몇 명의 特攻隊員들이 知覧の母라고 부르는 食堂의 女主人이 있는데 藤枝도 山岡도 特攻隊員으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東映이 50周年 記念으로 만든 作品으로 健さん을 起用하여 全力을 投球한 映画로 主演 健さん 監督 降旗康男으로「鉄道員」等을 撮影했지만 이번에는 健さん의 發意로 特攻隊員으로 살아남은 그와 아내와의 夫婦愛 그리고 戦争에 籠絡 당한 것은 韓国과 日本사람들이 라고 하는 테마 作品이었습니다.
그러나 戦後50年 以上이나 지난 지금에 韓国人 少尉를 테마의 主人公으로 묶는 것은 좀더 가까이 接近하려는 일이라고 하겠으나 映画를 보는 側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으로 評價하고 「戦争を知っている人には、感動を呼ぶやろう」라고 합니다. 이미 日本人 太半이「戦争を知らない世代」로 어떻게 어필될는지 요
山岡들의 特攻隊 時代를 여기저기 여러 곳에 挿入하는 形象이 되고 있지만 젊은 時節 自身의 에피소드를 잘게 찢어 발기지 말고 좀더 크게 整理 하는 편이 좋았을 것아 라는 쪽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東映는 pamphlet에서「韓国의 魂이 嘆息하는 마을 河回의 땅에서 高倉 田中가 野外撮影을 함으로서 韓日両国의 以後 予想 되는 雄大한 企劃」이라고 하네요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