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後絶唱-市川由紀乃 作詞 木下龍太郞 作曲 水森英夫
一 裾を洗って 荒波が 道は名のみの 越後 子不知 親不知 惚れた貴方を 追いかけて 泣き泣き渡る 崖三里
二 母の涙に 背を向けて ひたずら急ぐ 恋一路 絆 断ち切る 越後 子不知 親不知 波よ荒れるな渡るまで お腹の赤字にゃ 罪はない
三 女ごころを 試すよに 鞭打つ波の 日本海 柵は氷柱の 越後 子不知 親不知 辛い浮き世の 屏風岩 越えなきゃ来ない 花の春
柳夢寅과 於于野譚 朝鮮中期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成渾의 門下로 增廣文科에 壯元하고 世子侍講院文學이 되어 王世子를 가르쳤습니다.
光海君 때 吏曹㕘判에 오르지만 그는 廢母論에 휘말렸으나 直接 加擔하지 않아 仁祖反正 때 禍를 免했으나 李适과 內通할 憂慮가 있다는 理由로 逮捕 되여 謀反事實을 否認했는데도 아들과 함께 死刑되었습니다
當時에 지은 老寡婦辭는 너무도 有名하여 이곳에 실었습니다.
휜 머리에 젊은 태도 꾸민다면 어찌 연지 분이 부끄럽지 않으랴
이는 女性에게 보다도 男子들에게 더 깊은 意味가 있는가 봅니다 저를 爲始하여 自身은 傲慢 放恣하고 남을 陰害하고 猜忌하며 끼리끼리 패거리가 져 嚬蹙과 嘲笑의 對象이 되는 愚妹한者들에게 一針을 加한 것으로 解析도 되는군요
野談이란 저잣거리 이야기란 뜻이니, 그가 엮은 於于野談 속에는 黃喜政承의 아들 黃守身의 妓房 出入 等이 실려 있는데. 嚴肅한 선비가 冊題目으로 삼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批判도 있지만 謹嚴한 朝鮮時代에 對한 一種의 挑發이라고 할까요.
如何間 그는 朝鮮 中葉의 文人 文臣으로 나라에 寄與한 功勞는 대단한 분으로 評價되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