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大利根無情-三波春夫///歌の背景

bsk5865 2013. 3. 6. 08:24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03.06 06:13

 

大利根無情-三波春夫///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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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利根無情-三波春夫

作詞 猪俣良 作曲 長津義司


利根の 利根の川風よしきりの
声が冷たく身をせめる
これが浮世か
見てはいけない西空見れば
江戸へ 江戸へひと刷毛(はけ)
あかね雲

    セリフ
「佐原囃子(さわらばやし)が聴えてくらァ、
想い出すなァ……御玉ヶ池の千葉道場か。
うふ……平手(ひらて)造酒(みき)も
今じゃやくざの用心棒、
人生裏街道の枯落葉か」


義理の 義理の夜風にさらされて
月よお前も泣きたかろ
こころみだれて
抜いたすすきを奥歯で噛んだ
男 男泪(なみだ)の
落とし差し

セリフ
「止めて下さるな妙心殿。
落ちぶれ果てても平手は武士じゃ、
男の散りぎわだけは知って居り申す。
行かねばならぬ。そこをどいて下され、
行かねばならぬのだ」


瞼 瞼ぬらして大利根の
水に流した夢いくつ
息をころして
地獄まいりの冷酒のめば
鐘が 鐘が鳴る鳴る
妙円寺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59年에 크게 히트된 曲입니다. 1844年8月6日 下総(しもうさ)国(千葉県 北部・茨城県南部)의 大利根 江邊에서 笹川의 繁蔵一家와 飯岡의 助五郎一家의 큰 싸움이 있었습니다. 이 때 笹川 쪽을 도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平手造酒(ひらて みき)을 主人公으로 한 노래이며 두 名의 頭目은 一般的으로 笹川繁蔵(ささがわ の しげぞう)와 飯岡助五郎(いいおか すけごろう)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平手造酒의 이름을 들으면 나는 언제나 “OK牧場의 決闘”의 “도쿠•홀리데이”를 想起합니다.“도쿠•홀리데이”와“존•헨리•홀리데이는 조지아(Georgia)州의 名門에서 태어나고, 펜실베이니아 歯科大学을 나온 엘리트이었습니다만 벌컥 화를 내는 急한 性格에 肺結核이 原因이 되어 身世를 망칩니다.

南西部 一帯를 放浪하면서 賭博과 술로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 南西部一帶를 放浪하면서, 賭博과 술로 일을 보내는 동안에, 애리조나州의 “톰스톤”에서 保安官인 “와이트•아푸”와 友誼를 잊습니다 그 義理로, “아푸”兄弟가 “클랜 톤” 一家와 決闘를 하게 되었을 때 “아푸”의 便이 되어 싸웠습니다.

西部劇”荒野の決闘(My Darling Clementine)”에서는 “홀리데이”는 이 決闘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만, 実際로는, 決闘로부터 6 年後에 肺結核이 悪化되어서 死亡하였답니다.

한 便 平手造酒(本名 平田三亀)은 엘리트라고 할 만큼은 아닙니다만 江戸의 千葉周作道場에서 秀才로 불려져 剣客으로서 将来가 嘱望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性格上의 欠点에서 失手가 많고 술에 빠져 破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肺結核이 発症하고 北 関東을 流浪 하는 동안 笹川의 繁蔵一家의 食客이 되고 말았습니다.

時代는“OK牧場의 決闘”의 뒤인 1881年10月26日 일이었습니다만 거의 같은 時代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두 켤레의 짚신을 신은 頭目이 登場하는 点도 닮았습니다. 笹川의 繁蔵은 야쿠자 専業입니다만 飯岡의 助五郎는 야쿠자를 生業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와이트•아푸”는, 映画에서는 正義의 사람으로 다루어져 있습니다만 保安官을 하면서, 賭博場이나 술집을 経営하면서 賂物과 개평도 차지하고 있었다고 傳하여지고 있습니다.

더욱 이 時代의 日本이나 美國에서는 治安 團束의 末端에서는 이와 같은 善悪의 両面을 가진 者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江戸時代의 下級官吏들은 돌아다니며 뺨치는 者가 많았다고 하며 西部開拓時代의 保安官에게는 銀行強盗나 列車強盗의 前歴者도 사람을 殺人한者도 있었다고 합니다.

平手造酒가 到着한 것이 야쿠자 専業의 頭目이었다라고 하는 点에서 両者의 構図는 어느 程度 틀립니다만 또 兩쪽 모두 演劇이나 映画의 테마가 되고 있습니다. 江戸後期에 講談師 初代東流斎馬琴(三代目から宝井馬琴)이 “天保水滸伝” 라고 하는 題目으로 이 抗争의 이야기의 原型을 만들었습니다.

또 昭和 初期에는 浪曲師 二代目 玉川勝太郎가 “利根の川風たもとに入れて月に棹さす高瀬舟……”의 名曲調로 이 事件을 소리 높여 노래 하였습니다.

映画는 戦前부터 오늘까지 20個 以上 만들어졌습니다만 그 半 以上이 平手造酒를 主人으로 하고 있습니다.

“OK牧場의 決闘”의 쪽도 “墓石と決闘””荒野の決闘””OK牧場の決闘””トゥームストーン” 等 몇 번이나 映画化되어 있습니다.

같은 테마로 노래한 歌謡 曲에 田端義夫가 크게 히트한 “大利根月夜(藤田まさと作詞 1939年)가 있습니다. 같은 長津義司의 作曲입니다만 “大利根無情”와 比較하면 相當히 輕快하게 마무리가 되어있습니다. 歌詞도 멜로디도 悲哀感이 強한 “大利根無情”의 쪽이 人生의 落伍者・平手造酒의 悲劇性이 잘 表現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例를 들면 “見てはいけない西空見れば、江戸へ、江戸へひと刷毛あかね雲”의 句節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江戶에의 마음을 魅惑하는 것 같은 望郷의 생각이 分明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大利根 江邊의 決闘에 대하여 좀더 쓰겠습니다


下総一帯에 勢力을 뻗이고 있던 飯岡의 助五郎는 急速하게 힘을 길러온 笹川의 繁蔵에게 警戒 感을 强化하고 언젠가는 쓰러트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844年8月6日의 이른 아침 배(舟)를 늘려놓아 繁蔵의 勢力圈에 몰려 들게 하였습니다. 事前에 이것을 알아차린 笹川 쪽에서는 地理的 長点인 飯岡쪽으로 끌어 들여 散散이 打破합니다.

双方이 多数의 負傷者를 냈습니다만 死亡者는 飯岡 쪽이 3名이나 되는데 比해 笹岡 쪽은 平手造酒 1名뿐이 었습니다 平手는 焦燥히 功을 세우려다 戰勢를 가다듬은 飯岡 쪽에 分別없이 덤벼들었다가 害를 입었다고 傳하여지고 있습니다.

当時의 検死記録에는 下腹部로부터 小腸이 튀어 나올 程度로 傷處가 깊었다고 하며 全身에 열한 군데나 傷處를 입었는데도 다음날 아침에야 絶命하였다고 합니다.

笹川쪽은 이겼지만 助五郎가 모든 것을 手中에 넣고 있어 繁蔵는 어쩔 수 없이 一家를 解散하고 “長のわらじ”를 신고 放浪하다가 3年 後 繁蔵가 돌아 옵니다 그때 元來의 部下들이 다시 모여들어 以前의 勢力으로 돌아옵니다 만 1847年7月4日 賭博場에서 돌아오는 途中 飯岡쪽의 不意의 奇襲으로 殺害됩니다.

平手造酒는 笹川의 繁蔵과도 무덤은 千葉県 香取郡 東庄町의 延命寺에 있습니다만 平田造酒의 墓는 같은 郡 神崎町의 心光寺에도 있습니다. 어째서 두 군데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