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惜別の歌-倍賞千惠子///歌の背景

bsk5865 2013. 3. 12. 08:25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03.12 07:32

 

惜別の歌-倍賞千惠子///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2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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惜別の歌-倍賞千惠子

原詩 島崎藤村 作曲 藤江英輔


遠き別れにたえかねて
この高楼(たかどの)に登るかな
悲しむなかれ我が友よ
旅の衣をととのえよ


別れといえば昔より
この人の世の常なるを
流るる水を眺むれば
夢はずかしき涙かな


君がさやけき目のいろも
君くれないのくちびるも
君がみどりの黒髪も
またいつか見んこの別れ


君の行くべきやまかわは
落つる涙に見えわかず
袖のしぐれの冬の日に
君に贈らん花もがな


歌の背景

이 “惜別の歌”는 우리 中央大学의 学生에게는 “蛍の光”를 代身하는 노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親한 親舊와 해어질 때 해어지기 어려운 心情을 노래한 것으로 하나의 慣例로 되어 있습니다 노래는 太平洋戦争이 한창인 1943年 中央大学生 藤江英輔(1950年 法学部卒)에 依해 作曲되어 以後 同 大学의 学徒兵 送別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学徒動員은 1938年에 学徒勤労動員에서 始作되고 1943年에는 学徒戦時動員 体制確立要綱이 制定되고 10月21日 文部省学校 報国団本部主催에 依한 出陣学徒壮行会가 明治神宮外苑競技場에서 열려 東条英機 首相 岡部長景 文相이 出席한 가운데 関東地方의 入隊学生을 中心으로 한 7万 名이 모여 学生服을 입은 채 行軍이 演出되었던 것입니다.

때는 1944年의 봄 自由로운 中央大学 庭園에도 戦雲이 감돌았습니다 같은 해 봄 中央大学의 学生들은 長野県 諏訪湖의 近處에 配属되었습니다 偶然히 같은 時期에 가까이에 東京의 女学生들도 勤労奉仕를 爲해 머물렀는데 어느 中央大生이 그 중에 한 사람과 恋愛에 빠집니다 처음에는 서로가 바라다 보고만 있었지 만 차츰 두 사람은 사랑은 맑고 아름답게 그리고 激熱하게 불타올랐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同僚들에게 祝福받으며 繼続되었는데 봄이 지나고 또 여름이지나 落葉이 떨어지는 가을 되었을 때 이 두 사람의 사랑을 嫉妬한 見習士官이 上官에게 고자질하여 그 中央大生은 千葉県 習志野로 転属을 命令命을 받게 됩니다.

그 中央大生의 恋愛의 相對는 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現在 お茶の水女子大学)의 学生였다고 伝해지고 있는데 그 女는 卒業 後 教師가 되어 赴任한 学校에서 이 노래를 가르쳤다는 後聞입니다.

슬픔에 잠긴 두 사람은 그가 出発하기 전날 어느 高殿에 올라 이 노래를 흥 얼 거리며 離別을 아쉬워했다고 伝해 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올랐던 곳이 高島 城이라고 합니다만 다른 것도 같습니다 高島城은 明治時代에 허무러저 再建된 것은 1970年이니까 어쩌면 城터의 高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原詩는 島崎藤村의 処女詩集”若菜集”에 収録되어 있는 “高楼” 에서 뽑아낸 것으로 시집가는 누나를 동생이 餞送하는 8編의 長詩입니다 “惜別の歌”는 이 第1編 第2編 第5編에서 뽑아 第1編 안에 있는 “かなしむなかれ わがあねよ”를 “我が友よ”로 바꾼 것으로 그로 因해 親舊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3節의 歌詞는 親舊나 原詩와 같이 누나와 해어짐 보다 恋人과의 해어짐의 아쉬움이 잘 表現되었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島崎藤村氏略歴
1872年生 明治学院 卒業 1890 若菜集 刊行 1906年 明治学院校歌 作詞 1943年 “東方の門” 執筆 中 쓰러져 死亡.

藤江英輔氏略歴
1926年生 中央大学法学部卒 1950年 新潮社에 入社 “週刊新潮””小説新潮”等을 編集하고 広告局長을 끝으로 退職하여 以後에는 会社도 経営하였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