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ああモンテンルパの夜は更けて-渡辺はま子///日本死刑囚捕虜を救い出した歌

bsk5865 2013. 5. 19. 08:16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05.19 06:46

 

ああモンテンルパの夜は更けて-渡辺はま子///日本死刑囚捕虜を救い出した歌(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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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あモンテンルパの夜は更けて-渡辺はま子

作詞 代田銀太郎 作曲 伊藤正康


モンテンルパの 夜は更けて
つのる思いに やるせない
遠い故郷 しのびつつ
涙に曇る 月影に
優しい母の 夢を見る


燕はまたも 来たけれど
恋し我が子は いつ帰る
母の心は ひとすじに
南の空へ 飛んでゆく
さだめは悲し 呼子鳥(よぶこどり)


モンテンルパに 朝が来りゃ
昇る心の 太陽を
胸に抱いて 今日もまた
強く生きよう 倒れまい
日本の土を 踏むまでは


日本死刑囚捕虜を救い出した歌


이 노래는 필리핀刑務所에 묶겨저 있던 BC級 戦犯과 어느 女性 歌手와의 交流에서부터 生겨났습니다.

第二次大戦이 끝나고 連合国에 依한 敗戦国 獨逸이나 日本에 対한 軍事裁判이 行하여 졌습니다. 戦争犯罪人인 戦犯은 A、B、C의 3級으로 나뉘어 裁判을 받았습니다.

A級은 “平和に対する罪”로 指導者들에 依한 侵略戦争의 計画 開始 遂行 等이고 B級은 “通例の戦争犯罪”로 戦争法規에 対한 違反行為이며 C級은 “人道に対する罪”로 戦前 戦時 中에 行하여진 殺害 虐待 等의 非人道的인 行為입니다 B級은 従来의 戦争法規에 規定되어 있습니다만 A級과 C級은 獨逸과 日本의 戦犯을 裁判하기 爲해 1945年8月 런던協定으로 새로이 新設된 罪科입니다.

日本의 A級 戦犯에 対한 裁判은 東京에 設置된 国際軍事法廷에서 行하여 졌습니다만 B・C級戦犯의 裁判은 美國 濠洲 墺地利 和蘭 英國 中華民国 필리핀 佛蘭西 의 7個国에서 行하여 졌습니다. 主된 訴因은 捕虜나 一般人에 対한 殺害 虐待 虐待致死로 B・C級 戦犯 5163名 中 927名이 死刑 宣告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B・C級 戦犯에 対한 裁判은 相當히 適當한 것이었습니다 勿論 実際로 戦争犯罪를 犯한 者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軍隊라는 組織 中에 上官의 命令을 拒逆할 수 없어 捕虜를 찔러 죽인 者나 捕虜에 1回 따귀를 때린 것뿐인 者 等도 包含되어 있었습니다. 文化의 差異에서 오는 誤解에 依해 告発되거나 全혀 関係가 없는 者가 刑을 받은 例도 相當히 있었습니다.

勝者에 依한 軍事裁判은 일찍이 公正이 行하여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많던 적던 敗者에 対한 報復의 傾向을 띠는 것이 普通입니다 萬若 日本이나 獨逸이 이겼어도 같은 某樣의 裁判을 했을 것이고 日独의 全体主義体制 下에서는 더욱 지독한 裁判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戦争은 戦犯의 裁判까지를 包含시켜서 戦争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1952年1月 歌手 渡辺はま子는 日本에 온 필리핀 国会議員 피오테란 으로부터 필리핀 “몬텐루파”의 “뉴비리빗토”刑務所에는 많은 日本兵 捕虜가 収監되어 있어 이미 14名 処刑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戦後7年이나 지났는데도 刑이 繼續돼 死刑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는 衝撃的인 말은 들은 그 女는 銀座의 鳩居堂에서 お香를 同刑務所 앞으로 보냈습니다.

같은 해 6月 어느 날 뉴비리빗토 刑務所의 戦犯으로부터 “ぜひ渡辺さんに歌っていただきたい”라는 便紙와 함께 歌詞와 楽譜가 渡辺はま子의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이것이 “ああモンテンルパの夜は更けて”입니다. 作詞者인 代田銀太郎은 長野県 出身의 前 大尉 이고 作曲者인 伊藤正康는 愛知県 出身의 前 大尉로 모두 死刑判決을 받고 있었습니다.

渡辺はま子는 이를 卽時 빅터로 가져갔는데 그 經緯에 感動된 幹部가 레코팅 하기로 決心하고 渡辺はま子와 宇都美清의 노래로 吹入하여 発売하였습니다 노래는 瞬息間에 베스트 셀러가 되고 現地로도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女는 그것으로 満足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現地의 戦犯 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것이지요 一般国民의 海外 旅行이 禁止된 状況에서 필리핀 行의 許可를 받는 것은 매우 困難한 일이었습니다만 모든 手段을 動員한 結果 같은 해 12月下旬 그 女는 드디어 念願을 이루웠습니다. 뉴비리빗토 刑務所에서 59名의 死刑囚를 包含한 109名의 戦犯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지요

1953年 同刑務所에 駐在하고 있었던 教誨師 加賀尾秀忍는 奔走히 필리핀의 키라노 大統領을 面会하였습니다. 戦犯들이 釈放이나 減刑을 請願하기 爲한 것이 였습니다만 그는 于先 “ああモンテンルパの夜は更けて”의 오르골(music box)를 들려 줬습니다. “この悲しいメロディはどういう曲か”라고 묻는 大統領에게 그는 “モンテンルパの死刑囚が作った歌です”라고 對答하고 歌詞의 意味를 説明하였습니다. 大統領은 暫時 沈思한 뒤 自己의 괴로웠던 記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마니라에서 아내와 딸이 죽은 이야기 었습니다. 마니리에서 日米의 市街戦에 말려들어 自己의 아내와 딸이 죽은 이야기이지요

몬텐루파 의 全 受刑囚의 日本으로의 送還과 死刑囚의 無期 減刑도 필리핀政府에서 発表된 것은 그 面会가 이루어진 그로부터 1個月 後인 6月26日었습니다 横浜의 埠頭엔 帰国船을 기다리는 群衆 안에 渡辺はま子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