迎春花-藤野とし惠 作詞 松井由利夫 作曲 弦 哲也
一 あなたがいたから 耐えられました 明日に夢を 持てました 小さな黄色い 花びらに 幸福あふれて こぼれそう ありがとう あなた 咲かせてよかった 迎春花
二 今では笑って すませるけれど 苦労も遠い 語り草 荒野にまたたく 灯のように あなたがわたしの 道しるべ これからも あなた 咲かせてよかった 迎春花
三いのちを彩る 花びら六つ 分け合いましょう 三つづつ よろけたときには 手を貸して 涙に負けたら 叱ってね いつまでも あなた. 咲かせてよかった 迎春花
商人の故郷、水郷 近江八幡
近江路(おうみじ)の旅
“佛聖”卽 俳句의 神으로 불리는 松尾芭蕉(まつおばしょう=1644~1694年)는 日本各地를 旅行하며 많은 훌륭한 句와 紀行文을 남겼는데 有名한 句中 하나로 「行く春を近江の人と惜しみける(가는 봄을 오미사람과 아쉬워했네)」가 있습니다. 봄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氣分에 對해 오미 地方에 사는 俳句弟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意味라고 합니다 芭蕉가 그러한 氣分에 對해 이야기를 나눌 相對로 近江(おうみ) 地方의 文人들이 가장 適合하다고 여겼다는 것이겠지요.
近江地方은 지금의 滋賀県으로 日本에서 가장 큰 湖水인 琵琶湖(びわこ)로 有名합니다. 그리고 7世紀 中葉에는 約 5年의 짧은 期間이었지만 首都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風景과 오래된 歷史를 지닌 詩情이 豊富한 곳입니다. 芭蕉는 지금의 大阪에서 世上을 떠났지만 그의 墓는 滋賀県의 大津市에 있습니다. 分明 그는 近江地方을 무척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城下町から商人の町ヘ
東京駅에서 JR 東海道新幹線을 타고 약 2時間 10分이면 滋賀県의 米原(まいばら)駅에 到着합니다 米原는 예로부터 中部地方으로 가는 길과 北陸地方으로 向하는 길의 分岐點으로 發達한 交通의 都市입니다. 여기서 東海道本線으로 갈아타고 30分 程度 가면 近江八幡駅에 到着합니다. 途中에 列車의 오른쪽 車窓으로 멀리 琵琶湖가 숨었다 나타났다 합니다.
近江八幡市는 滋賀県의 中央部 琵琶湖의 東쪽 기슭에 자리한 人口 約 7万의 작은 마을입니다.‘商人の町’또는‘水郷(すいごう=물의 고장)’으로 有名하며 차분하고 조용한 마을 風景이 近江路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魅了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1585年에 近江地方의 領主로 任命된 豊臣秀次(とよとみひでつぐ=1568~1595年)가 城 마을로 만든 곳입니다. 城은 마을 西쪽에 있는 八幡山(はちまんやま)의 頂上에 築造되었고 그 山기슭에 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秀次는 自由商業都市로서의 発展을 꿈꾸며 本來는 城을 防禦하는 水路를 當時의 水上交通의 中心이었던 琵琶湖와 잇는 運河로 삼아 그곳을 오가는 배들이 모두 八幡의 마을에 들려서 가도록 했습니다. 이 運河가 現在의 八幡 水路로 水郷(すいごう) 水郷近江八幡 観光名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史劇의 撮影地로도 有名하여 年間 30編 以上이 撮影되고 있다 고합니다.
秀次가 近江八幡의 城主였던 期間은 다음과 같은 理由로 不過 5年 程度였지만 그 사이에 商業の町로서 發展하는 基礎가 다져졌습니다. 秀次는 當時 日本의 支配者인 豊臣秀吉(1536~1598年)의 누나의 아들인데 秀吉의 後繼者를 둘러싼 다툼에 휘말려 自殺을 强要 當했습니다. 27歲로 이 世上을 떠난 悲劇的인 人物이지만 近江八幡 마을을 만든 사람으로서 지금도 市民들에게 사랑 받고 있습니다.
近江商人のふるさとを歩く
城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은 바둑판의 눈 模樣으로 만들어져 있어 어디를 가든 길을 찾기가 쉽습니다. 銀行이나 슈퍼마켓 商店 等이 늘어선 驛 앞에서 10分 程度 가면 江戶時代로 時間旅行을 온 듯한 氣分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와지붕,흰벽,格子門으로 된 집이나 흙벽으로 된 곳간 等이 이웃하고 있는 길이 縱橫으로 몇 個나 交叉하며 마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大部分의 길은 市民들의 生活의 場이지만‘近江商人’이라고 불린 商人들이 살던 地域은 特別히 觀光客을 爲해 마을이 保存되어 있고 巨商들의 住居였던 建物이 公開되어 있습니다 그런 建物을 몇 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예전의 近江商人들의 生活相이나 장사를 하는 곳의 風景이 再現되어 있어,當時 巨商들의 生活을 느낄 수 있습니다.
近江商人은 지금의 東京이나 大阪 京都 北海道 等을 中心으로 日本全國 各地에서 장사를 展開했는데 그 中에는 지금의 베트남이나 타이 等 海外로까지 進出해 活躍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取扱한 商品은 漆器類 売薬 茶 緋緞 옷감 等이고 술이나 간장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장사는 信用을 가장 重要한 것으로 여겨서 物資不足에 便乘해 價格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다리를 다시 놓거나 절과 神社에 寄附를 하는 等 地域의 貢獻에도 熱心이었습니다. 그에 比해 지금의 日本 企業의 높은 사람들은 어떤가요? 요즘 新聞이나 TV가 傳하는 企業人의 不正 行爲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미는군요
그런 商人들의 子孫은 지금도 이 마을에서 活躍하고 있을까요? 公開 建物의 擔當者에게 이 素朴한 質問을 해보았습니다. 그는 「いいえ、現在まで繁栄が続いている家はないようです=아니요 現在까지 繼續 繁昌하고 있는 家門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對答한 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하지 만 지금 있는 大形 百貨店이나 商社를 中心으로 많은 企業에서 近江商人의 脈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장사에 關해서는 信用을 重視하는 思考方式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果然 傳統은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이구나 하고 納得했습니다.
八幡水路를 江물을 따라 걸으면 한 장의 寫眞과 같은 風景이 兩쪽 기슭에 펼쳐집니다. 흰 벽과 널판장의 흙벽으로 된 곳간이나 집이 늘어서있어 傳統 있는 물의 고장다운 風景입니다. 건너편에서는 작은 屋形船(지붕이 있는 놀잇배)가 運行됩니다. 사공은 放學 中인 젊은 女大學生이며 1 5km 全體를 35分 동안 遊覽하는데 한 사람에 1千 円이라고 합니다. 機會가 되면 한번 타보시지요
エピローグ
로프웨이로 八幡山에 올랐습니다. 海拔 272m인 山 頂上까지는 約 4分 어른은 往復 700円입니다 頂上에는 秀次(ひでつぐ)가 築造한 城의 돌 담이 남아 있습니다 西쪽으로는 近江八幡 마을 全體를 내다볼 수 있고 東쪽으로는 멀리 琵琶湖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西쪽 기슭 저편에 는 京都府北部나 福井県과 境界가 되는 比良山地(ひらさんち)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實로 壯大한 파노라마입니다.
山 頂上에서 보이는 展望이 너무나도 恍惚하여 그것에 이 끌려 마을 北쪽의 敎外에 보이는 西の湖 近方까지 가게 된 다는군요 西の湖는 琵琶湖 水路로 이어져 있는 말하자면 琵琶湖의 子息과 같은 湖水입니다 近處를 흐르는 江에는 西の湖의‘水郷めぐり’를 하는 屋形船가 悠悠히 지나갑니다 온통 보리밭과 油菜꽃밭 봄의 近江路 地方의 魅力에 完全히 빠져 寫眞은 꼭 찍게 된 다는군요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