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帰行-小林旭 作詞 作曲 宇田博
一 窓は夜露に濡れて 都すでに遠のく 北へ帰る旅人ひとり 涙流れてやまず
二 夢はむなしく消えて 今日も闇をさすろう 遠き想いはかなき希望(のぞみ) 恩愛我を去りぬ
三 今は黙して行かん なにをまた語るべき さらば祖国愛しき人よ 明日はいずこの町か 明日はいずこの町か
原曲(旅順高等学校寮歌)
一 窓は夜露に濡れて 都すでに遠のく 北へ帰る旅人一人 涙流れてやまず
二 建大 一高 旅高 追われ闇を旅ゆく 汲めど酔わぬ恨みの苦杯 嗟嘆(さたん)干すに由なし
三 富も名誉も恋も 遠きあくがれの日ぞ 淡きのぞみ はかなき心 恩愛我を去りぬ
四 我が身容(い)るるに狭き 国を去らむとすれば せめて名残りの花の小枝(さえだ) 尽きぬ未練の色か
五 今は黙して行かむ 何をまた語るべき さらば祖国 わがふるさとよ 明日は異郷の旅路 明日は異郷の旅路
歌の背景 이 노래가 誕生된 것은 1941年의 일로 作者는 当時 旧制 旅順高等学校의 2年生인 宇田博이었습니다. 宇田는 鬱勃(意氣旺盛한 鬪志)를 억제하지 못하고 規則을 어기면서 즐거움을 갖는 타이프의 사나이였습니다.
旧制中学에서 旧制一高(現 東京大 教養学部)의 試驗에 失敗하여 満州 奉天(現 瀋陽)의 父母 곁으로 가 新京(現 長春)에 있었던 建国大学 予科에 入学합니다만 校則違反으로 退校되어 父母의 勸誘로 当時 旅順(現 大連市)에 막 設立된 旅順高校에 入学합니다.
旧制高校도 大学予科도 大学에서의 専門教育을 받는데 基礎가 되는 教養教育을 받는 場所로 現在의 大学 一般教育課程에 相当합니다. 그러나 그때의 教育水準은 지금의 一般教育課程과는 比較가 안 될 만큼 높았다고 합니다.
満州国은 帝国主義 日本이 中国東北部에 꾸며낸 傀儡政權 国家로 建国大学도 旅順高校도 当然한 것으로 日本의 敗戦과 함께 廃校되었는데 旅順高校는 단지 5年의 짧은 목숨으로 最後의 旧制高校가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旅順高校에 들어가도 宇田의 反逆 心은 安定되지 않아 그는 얼마 안 있어 文房具집 딸 “サッチャン”라는 女性과 親해지게 되었습니다. “サッチャン”는 키가 작아 하이힐(high-heeled shoes)을 신고도 150cm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굴은 아주 애뿐 美人이 였답니다. 開校記念日 쉬는 날 宇田는 “サッチャン”과 映画를 본 뒤 함께 술을 마셔 滿醉된 狀態에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마지막 버스에서 高校 先生에게 들키고 맙니다.
当時 高校生은 飲酒도 異性交遊도 禁止되여 宇田의 境遇는 寄宿舍에 軟禁되고 말았습니다. 日本本土의 旧制高校에서는 너그러운 面이 있습니다만 旅順高校는 新設된 高校로 校則은 매우 厳하여 다음 날 生徒 課에 불려가 素行不良으로 退校 命令을 言渡받습니다.
그는 奉天의 父母 곁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만 그 前 1週間 旅館에 머물면서 “敗北と流離の思い”를 精誠을 담아 5聯의 노래를 조목조목 썼습니다 이것이 그 “北帰行”입니다. 宇田는 親舊들을 旅館으로 불러 이 노래를 보여주었습니다. 親舊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歌詞를 記錄으로 남겼습니다.
後에 이 노래의 作者를 찾는 過程에서 親舊인 한 사람의 記錄에서 確因이 되어 宇田가 作者임이 判明되었으며 宇田는 戦後 旧制一高를 거쳐 東京大를 卒業하고 東京放送(TBS)에 入社하여 常務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 노래와 뒤엉키는 드라마는 아직도 繼續됩니다 小林旭을 爲해 새로운 노래를 찾던 敏腕의 歌謡曲프로듀서 馬淵玄三은 新宿의 音樂茶房에서 어느 노래가 젊은이 들이 즐겨 듣는가를 探聞하였는데 1961年의 일입니다. 音樂茶房에 나간 馬淵는 “北帰行”을 듣고 “これはいける”라고 直感하여 専門家에게 採譜 어레인지(arrangement) 를 받아 小林에게 부르게 한 것입니다. 그의 直感은 맞아 떨어져 그 해 이 曲은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다른 私見도 있습니다만 小林旭의 노래로는 좀 어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感이 있습니다. 日活映画 “渡り鳥シリーズ”의 이미지가 워낙 強해 小林旭가 부르면 “流れ者のさすらい歌”와 같이 되버려 原曲이 가지는 “知的無頼を気取る青年の挫折”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作者인 宇田 自身은 小林旭의 歌唱이 대단히 마음에 들어 “おれが死んだら、お経も何もいらない、この歌を流してくれ” 라고 家族이나 親舊들에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北帰行”과는 相關없는 일입니다만 馬淵玄三는 五木寛之의 小説 “艶歌”을 모델로 여겨지는 人物입니다. 小説 안에서 馬淵는 “演歌の竜”이라는 異名을 使用하는 敏腕의 프로듀서 高円寺 竜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映画化한 日活映画 “わが命の唄・艶歌”에서는 芦田伸介가 高円寺 竜三으로 그의 匹敵이 되는 프로듀서를 冷徹한 人物로 演出할만한 사람이 없어 佐藤慶가 演出하였는데 여러 사람의 印象에 남는 映画입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