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背くらべ- 神埼ゆう子///歌の背景

bsk5865 2013. 6. 8. 08:44

보낸사람: 소담 엔카 운영자

 

背くらべ- 神埼ゆう子///歌の背景 (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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背くらべ-神埼ゆう子

作詞 海野厚 作曲 中山晋平 編曲 小澤直與志


柱のきずは おととしの
五月五日の 背くらべ
粽(ちまき)たべたべ 兄さんが
はかってくれた 背のたけ
きのうくらべりゃ なんのこと
やっと羽織(はおり)の ひものたけ


柱にもたれりゃ すぐ見える
遠いお山も 背くらべ
雲の上まで 顔だして
てんでに背のび していても
雪の帽子(ぼうし)を ぬいでさえ
一はやっぱり 富士の山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19年에 詩가 먼저 雑誌“少女号”에 発表되고 1923年 童謡楽譜集“子供達の歌”의 第三集에 曲과 함께 掲載되었습니다

作詞者 海野厚(本名 厚一)은 1896年 静岡県 豊田村曲金(現 静岡市駿河区)에서 태어나 旧制静岡中学을 거쳐 早稲田大学에 進學했습니다.

童話雑誌 “赤い鳥”에 投稿한 童謡가 北原白秋에 評価되면서부터 童謡作家의 길을 걷기 始作했습니다 遺憾스럽게도 1925年 28歳의 젊은 나이에 저 世上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다니던 静岡市의 西豊田小学校에는 “背くらべ”의 歌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背くらべ”外에 “おもちゃのマーチ” 等 名作이 있습니다

大槪의 家庭에는 어린아이 成長을 알려고 기둥이나 壁에 키 재기 標示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그런 푸근한 光景을 노래 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키를 재는 것은 父母들 입니다만 이 노래에서는 兄이 동생의 觀点에서 키를 재는 것을 노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자주 話題가 되는 것이 두 個가 있습니다. 우선 “背くらべ”는 普通 毎年 實施하는데 昨年이 아니고 再昨年의 키와 比較하는 것은 왜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やっと羽織のひものたけ”의 意味로 끈의 길이만 자라지 않았다고 하는 解釈과 兄의 끈 길이밖에 자라지 않았다는 解釈의 두 個의 説이 입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爲해서는 이 歌詞가 어떤 状況 下에 만들어 졌는가를 살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海野厚는 7名의 兄弟의 제일 큰兄으로 막내 同生인 春樹와는 17歳의 나이差가 있었습니다 同生 中 하나인 欣也는 인터뷰에서 “あの歌はわれわれ兄弟姉妹のことを歌った生活記録だった”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歌詞는 兄弟들 사이에서 서로 자라면서 生긴 것이라고 봐도 틀림이 없겠습니다.

또 歌詞에는 海野厚가 東京遊学中인 23歳의 때에 만들어졌습니다. 最初의 수수께끼에 대하여는 “去年の”에서는 소리数가 맞이 않아 굳이 “おととしの”로 했다는 説도 있습니다만 海野厚가 어떤 事情으로 2年間이나 帰郷할수 없었기 때문이란 説이 有力합니다. 1年 뒤에 帰郷하여 同生의 키를 쟀기 때문에 再昨年의 키와 比較하게 된 것아 라는 것이지요.

2年間 帰郷을 못했던 것은 病으로 療養中였다는 説과 作詞 活動에 没頭했었기 때문이라는 説이 있습니다만 正確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2個에 對해 前者 卽“ひもの長さしか伸びていなかった”로 하는 解釈이 圧倒的으로 많습니다. 童謡 唱歌의 解説書나 네트上의 情報에서도 大部分 그렇게 説明되어 있습니다.

2005年度 男児의 平均 身長 表를 보면 6~9歳 어린이는 1年 平均 5.5 Cm씩 자라고 있습니다. 大正時代이기 때문에 成長 率은 좀 떨어진다고 해도 2年에 10 Cm는 자란 것으로 이것은 어린이用 羽織의 끈 길이와 거이 같아지는데 再昨年의 키와 比較해도 나의 羽織의 끈 길이 程度밖에 자라지 않아 좀 失望하고 있는 샘이지요.

그러나 또 하나의 説도 그다지 説得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詩를 만든 海野厚가 23歳인 때 “背くらべ”가 이 해였다고 해도 막내 同生 春樹는 6歳로 身長은 이미 110 Cm 前後로 이 높이는 成年男子의 羽織의 끈의 길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ずいぶん伸びたと思ったのに、やっと兄さんの羽織のひもの位置に届いただけだった”라고 解釈이 되네요

海野厚에게는 男同生과 女同生이 各各 3名씩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童謡의 主人公이 女同生일 可能性도 있습니다. 그러나 海野厚가 特히 귀여워하고 있던 同生은 春樹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以上의 記述을 그런 觀点에서 보아야 될 것 같네요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