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おしどり人生-鏡五郞///石子詰悲話

bsk5865 2013. 8. 12. 15:07

보낸사람: 소담 엔카 운영자 13.08.12 07:01

 

おしどり人生-鏡五郞///石子詰悲話(D)|★....演歌 게시판

黃圭源 http://cafe.daum.net/enkamom/KTiH/3888 


おしどり人生-鏡五郞


おしどり人生-鏡五郞

作詞 水木れいじ 作曲 久保進一


こんなド阿呆に 惚れたも阿呆と
抱けばうなずく 恋女房
おしどり人生 二十年
泣いて笑うて 憂き世坂
命ふたつで 越えてきた
おまえ・・・おまえ・・・
咲いてうれしい 夫婦花


金も甲斐性も ないない尽くし
みんな承知で ついて来た
おしどり人生 幕あきは
着の身着のまま 飲みほした
やぶれ屋台の 契り酒
おまえ・・・おまえ・・・
幾度腹では 詫びたやら


苦労くの字に 身を折らるょうと
松のみどりは 天をさす
おしどり人生 悔いはない
春をうす陽が 日にしみる
おまえ・・・おまえ・・・
この手離すな いつまでも


石子詰悲話

日本人이 좋아하는 怪談이나 不可思議한 이야기,伝說 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紹介합니다.

奈良市의 近鉄 奈良駅에서 걸어서 5,6分. 잘 알려진 興福寺(こうふくじ)五重塔 옆쪽 道路辺의 토담 앞에 ‘傳説三作石子詰之跡’라고 적힌 標識板이 서 있습니다. 周辺에는 名勝古跡이 많아 大部分의 通行人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토담의 안쪽에 있는 것은 興福寺 寺院 中 하나인데 이 庭園에 들어서자 애달픈 이야기가 伝해지는 墓地가 눈에 들어 옵니다.

江戸幕府(1603~1867年)五代将軍・徳川綱吉(とくがわつなよし) 時代의 이야기입니다. 犬公方(いぬくぼう)라 불리던 綱吉는 사람보다 개를 所重히 여겼다고 하는데 나라에서도 사슴은 神의 使者로서 사람보다 貴하게 여겨졌습니다.

當時 이 寺院의 옆에 寺子屋(てらこや: 江戸時代의 書堂)가 있어서 절의 住持 스님이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法 等을 가르쳤습니다. 그 아이들 中에 三作(さんさく)라는 13살 男子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三作가 글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슴 한 마리가 다가와 아이들이 쓴 종이를 먹으려고 했습니다. 화가 난 三作는 사슴에게 文鎮(ぶんちん)을 던졌는데 잘못 맞았는지 사슴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奈良의 사슴은 春日大社의 神의 使者로 여겨졌기 때문에 當時에는‘鹿を殺した者は石子詰めの刑にする(사슴을 죽인 者는 이시코즈메 刑에 處한다’라는 규율이 있어 죽은 사슴과 함께 生埋葬을 當했습니다.

어린 三作도 이 罪는 容恕받지 못했습니다. 寺院 앞 庭園에 커다란 구멍을 파 사슴과 함께 산 채로 묻히고 말았습니다. 三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每日 寺院의 鐘을 치며 三作의 冥福을 빌었는데 三作가 죽은 지 49일째에 墓地 위에 觀世音菩薩이 나타났습니다. 그 뒤 어머니는 自身이 죽은 뒤에는 三作의 墓地에 누구도 꽃 같은 것을 놀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寺院의 庭園에 단풍나무를 심었습니다 現在 ‘사슴과 단풍’을 그린 그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그것 은 이 이야기에서 始作된 것입니다.

奈良 住民들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집 앞에 사슴이 죽어 있으면 사슴을 죽인 罪人으로 여겨지므로 모두 競爭하듯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었기 때 문이라고 니다. 三作石子詰 이야기는 江戸時代中期(17世紀後半에서 18世紀前半)에 近松門左衛門에 依해 浄瑠璃(じようるり: 三味線에 맞춰 이야기하는 예능) 十三鐘(じゅうさんがね)로 쓰여 有名해졌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