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誰か故郷を想わざる-霧島昇///歌の背景

bsk5865 2014. 1. 8. 21:40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1.07 06:54

 

誰か故郷を想わざる-霧島昇///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http://cafe.daum.net/enkamom/KTiH/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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誰か故郷を想わざる-霧島昇

作詞 西條八十 作曲 古賀政男


花摘む野辺に日は落ちて
みんなで肩を組みながら
唄をうたった帰りみち
幼馴染(おさななじみ)のあの友この友
ああ誰(たれ)か故郷を想わざる


ひとりの姉が嫁ぐ夜に
小川の岸でさみしさに
泣いた涙のなつかしさ
幼馴染のあの山この川
ああ誰か故郷を想わざる


都に雨の降る夜は
涙に胸もしめりがち
遠く呼ぶのは誰の声
幼馴染のあの夢この夢
ああ誰か故郷を想わざる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40年(昭和15年)에 発売된 노래입니다 그리고 우리 귀에 무척이나 낮 익은 노래지요.

作曲家 古賀政男는, 1904年(明治37年) 11月 18日, 福岡県 三潴郡 田口村(現在 大川市)에서 태어났습니다. 1912年(大正元年) 8月, 政男가 7歳 때, 어머니, 누나, 동생과 함께, 仁川에 사는 맏형을 依支하고 朝鮮에 건너와, 明治大学 予科에 入学할 때까지, 그 곳에서 보냈습니다.

그 當時의 있었던 追憶을 西條八十에게 이야기 하였는데, 그가 이것을 歌詞로 하였다는 것이 이 노래라고 傳해지고 있습니다.

霧島昇(きりしまのぼる)는, 1914年(大正3年) 6月 27日에 福島県 双葉郡 大久村(現いわき市大久町)에서 農家의 三男으로 태어났으며 本名은 坂本栄吾입니다.

小学校를 卒業하고 上京하여 中学를 다니며 拳鬪를 目標로 했지만 바로 断念하고 Tenor의 藤原義江의 레코드를 듣고, 日本의 歌曲을 流行歌로 노래하고 싶어, 苦学하면서 東洋音楽学校(現在의 東京音楽大学)에 進學합니다.

同校를 卒業하고. 浅草의 review작은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옆집의 코롬비아 文芸部長인 松村重武(俳優・松村達雄의 実父)의 눈에 띠어, 1936年(昭和11年)에 콜롬비아에 入社하였습니다. 当時의 콜롬비아에서는 松平晃가 看板 스타였습니다. 霧島는 松平를 目標로 歌唱 技術를 硏磨하여, 松平에게는 없는 테너의 달콤한 音色과 邦楽的 技巧 表現을 살렸습니다.

다음 해 1937年(昭和12年)에「赤城しぐれ」로 데뷔. 1938年(昭和13年)에 松竹映画「愛染かつら」의 主題歌「旅の夜風」를 当時 大 스타였던 ミス・コロムビア(本名・松原操=後에 本名을 芸名으로)와 함께 吹込 하여 크게 히트합니다.

1939年(昭和14年)에 ミス・コロムビア와 結婚하였는데. 前年에 吹込한 「旅の夜風」가 因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後에도「一杯のコーヒーから」「誰か故郷を想わざる」等의 大히트를 하여「コロムビアのドル箱 」라고 불려집니다.

太平洋戦争 中에는 海軍에 所属되었는데 召集 令狀이 나왔을 때에는「若鷲の歌」의 大合唱을 받으며 入營했다고 하는 에피소드도 남아 있습니다. 戦後에는 並木路子와 吹込한「リンゴの唄」을 始作으로「三百六十五夜」 「胸の振り子」等의 히트를 올렸습니다. 이로서 生涯에 吹込한 曲은 3 千曲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단한 鴛鴦새 夫婦로서 알려져 夫人과의 사이에는 4名의 子女를 두었습니다. 長男인 坂本紀男는 東京音楽大学 主任教授로, NHK TV「思い出のメロディー」에서. 아버지의 代表曲을 노래한 일이 있습니다. 霧島는 寡默하고 誠實한 人品이었으나, 極度의 오름 증이 있었습니다. 1984년(昭和59年) 4月 24日에 逝去하였는데. 東京都 港区의 長谷寺에 잠들고 있으며. 福島県 いわき市에는「誰か故郷を想わざる」의 歌碑가 建立되어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