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人の気も知らないで-淡谷のり子///歌の背景

bsk5865 2014. 5. 7. 08:31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5.07 06:22

 

人の気も知らないで-淡谷のり子///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4999 


人の気も知らないで-淡谷のり子


Tu Ne Sais Pas Aimer-Warney Wilen


人の気も知らないで-淡谷のり子

訳詞 奥山靉 作曲 Guy Zoka

人の気も知らないで 涙もみせず
笑って 別れられる 心の人だった
涙かれて もだえる この苦しい片思い
人の気も知らないで つれない あの人

人の気も知らないで 燃えた恋よ
つめたく消してゆくの せつない この想い
胸に残る まなざし あのやさしい面影
人の気も知らないで 去りゆく あの人

ムム… ララ…


.Tu Ne Sais Pas Aimer-Warney Wilen
.作詩 Maurice Aubret 作曲 Guy Zoka

Un soir, ton corps s'est donné,
Qui, mais ton cœur, tu l'as gardé.
C'est pourquoi, malgré tous tes sourires,
Mon regret ne cesse de te dire:

(Refrain)
Tu ne sais pas aimer, tu ne sais pas,
En vain, je tends les bras.
Je cherche une âme,
au fond de tes grands yeux.
Une âme !
Et je ne vois rien qu'un peu de blue,
Ta jeunesse ardente,
Qui se moque et chante,
Ne veut retenir.
Que le plaisir.
Tu ne sais pas aimer,
Tu ne sais pas,
Jamais, jamais tu ne sauras.


歌の背景

1930年 公開의 프랑스 映畵「리라」(日本未公開)의 主題歌로, 主演의 Damia가 노래했습니다. 日本에서는, 1938年에 小林千代子와 淡谷のり子가 노래했는데, 兩쪽 모두가 히트 했습니다.

戰爭 前, 日本人에 가장 사랑 받은 샹송입니다. 이 해, 日本은 中國 大陸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前線을 擴大하여 國歌 總動員法이 公布되고 軍部의 橫暴가 甚해져, 日用品 不足이 深化되어 代用品을 使用하는 것이 當然視되었으며, 女優•岡田嘉子와 演出家•杉本良吉가 사하린(Сахалин )國境을 넘어 蘇聯으로 亡命한 해였습니다.

그런 社會情勢의, 不安 속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 노래의 안타까운 멜로디가 조용하게 스며들었겠지요.

다미아(DAMIA)의 本名은 메리•르이즈•다미안(Marie-Louise Damien). 샹송의 歷史에 燦然히 빛나는 巨星입니다. 많은 살소니에이르(女性 샹송 歌手)中에서도 3個의 손가락에 들어오는 것을 不定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榮光은 그 後의 일로, 그 靑春은 苦難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미아는 1889年, 파리의 邊頭里에서 태어났습니다만, 一家는 곧 郊外의 작은 마을 류이유로 옮깁니다.

父親은 이 마을의 巡査部長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大家族에 家計는 어려워, 그女는 어렸을 때로부터 裁縫店이나 印刷工場 等에서 雇傭살이를 했습니다.

十代의 그女에게는 放浪癖이 있어, 가끔 家出을 했다는, 것이 冊에도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女의 性格이라기 보다, 窮乏으로부터 일어나는 家庭內의 問題에서 起因되었다는 것이지요.

Romain Rolland이「Jean Christophe」을 發表한 1904年, 15歲 때, 다미아는 最終的으로 집을 나오고, 獨身生活을 始作합니다. 샤트레(Châtelet)座에서 端役을 했습니다만, 곧바로 解雇되고 每日 食事도 困難하게 되었습니다.

十代 後半의 몇 年間은, 繁華街에서 사는 娼女들을 보면서, 가장 可憐한 生活을 보낸 것 같습니다.

18歲 때, 싱어 송 라이터인 로베르•오라르(Robert Hollard)와 알게 되어, 노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當時, 로베르는 어느 女性歌手와 結婚했습니다만, 아내의 알콜 中毒 때문에, 곧바로 離婚, 다미아와 組를 짜 쇼 비즈니스를 始作했습니다.

다미아의 歌手로서의 데뷔는 1910年 즈음으로, 場所는 뮤직 홀「페르피니에이르」였다고 傳하고 있습니다만, 確實하지 않습니다.

곧 그女는, 當時의 스타 歌手, 페릭스•마이요르(Felix Mayol)의 눈에 띠어 그 콘서트의 開幕에 出演하게 됩니다. 그러나, 收入은 보 잘 것 없고, 歌手로서의 評價도 좀처럼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뀌기 始作한 것은, 美國人의 舞踊家 로이•풀러(Loie Fuller)와 알게 되면서. 그의 指導로, V넥(neck)의 黑비로도(veludo)의 드레스로 노래하는 獨特한 스타일을 몸에 익힙니다.

이윽고, 몬파나스(Montparnasse)나 몽마르뜨(Montmartre)의 뮤직 홀에서, 哀愁로 가득 찬 발라드(ballade)를 우는 것처럼 呼訴하여 그女는, 「歌う悲劇女優」로 불리게 됩니다.

1927年에는, 女優로서 데뷔. 아벨•간스(Abel Gance) 監督의「Napoléon」에서, 안토닌•알토-(Antonin Artaud), 아나 베라(Annabella)라고 하는 無声映画時代의 大스타들과 共同으로 出演해, 演技力에서도 注目 받았습니다.

그 後, 몇 個인가의 映畵에도 나옵니다. 1949年에는, PLEYEL音樂堂에서의 데뷔 30周年 記念 演奏会를 大成功으로 거두어 歌手로서의 偉大함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 넣습니다.

1953年 봄에는 日本을 訪問하고, 많은 프랑스 文化 팬, 샹송 팬에게 感動을 주었습니다. 1956年, 파리•올림피아 劇場이 超滿員인 가운데 隱退公演으로 40數年에 이르는 歌手 生活에 終止符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1978年, 파리 西郊의 라•세르산크루에서 享年 89歲로 死亡하였습니다. 代表作으로는「人の気も知らないで」외, 「暗い日曜日」「雨」「かもめ」「十字架」 等이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