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謠背景函

이별의 성당 고개-손인호///統監府 機關紙 서울프레스

bsk5865 2014. 6. 25. 18:28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6.25 05:45

 

이별의 성당 고개-손인호///統監府 機關紙 서울프레스(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5231 


이별의 성당 고개-손인호


이별의 성당 고개-손인호

작사 백호 작곡 박춘석


꽃잎이 떨어지는 낯 설은 타관
쓸쓸한 밤에 달빛을 바라보니
잊었던 고향생각 또 다시 떠오르네
성당고개 언덕 한 모퉁이에서
말없이 눈물 흘리던 열아홉 살
가랑머리가 다시 그리워


산 설고 물도 설은 타향살이에
흐르는 세월 해마다 꽃은 피고
산에서 새는 우나 청춘도 시드누나
성당고개 언덕 봄 꽃이 피면
그대가 꽃 한 송이를 내 가슴에
꽂은 시절이 다시 그리워


統監府 機關紙 서울프레스

통감부의 영문 기관지 '서울프레스' 제2대 사장 야마가타 이소오(山縣五十雄)는 이토 히로부미의 측근이었던 즈모토(頭本元貞)의 뒤를 이어 1909년 4월에 사장 겸 주필로 취임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영문학자로 1899년 일본 '만조보(萬朝報)'에 입사하여 주필까지 승진했던 인물이다.

서울프레스는 영국인 배설(裴說: E.T.Bethell)의 '코리아 데일리 뉴스'에 대항하고, 서구 여러 나라에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선전하기 위해서 창간한 신문이었다. 특별한 이슈가 있으면 책자나 팸플릿을 발행하여 통감부와 총독부의 입장을 홍보했다. 〈사진: 총독의 3개 언어 기관지였던 서울프레스, 경성일보, 매일신보의 제호가 크게 걸린 사옥. 현 프레스센터 자리에 있었다〉

배설의 공판이 열리기 직전인 1908년 5월 23일 서울프레스는 두 개의 팸플릿을 발행했다. '한국의 배일신문지(韓國ニ於ケル排日新聞紙)'는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 암살 기사(신보, 1908.4.17.)를 비롯하여 배설의 공판에 증거물로 제시된 항일 논설과 기사를 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는 치외법권의 보호 아래 극성스럽게 배일사상을 퍼뜨려 한국인으로 하여금 일본의 보호정책을 반항하도록 선동하는 것을 그 본래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면서 여기 수록한 글은 그 일단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영어 팸플릿 '한국의 선동신문'(Incendiary Journalism in Korea)은 서울프레스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비방하고 공격한 영문 논설과 기사를 실었다.

배설 재판을 위해 상해에서 서울에 온 영국 재판관과 검사가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통감부의 입장을 선전했다. 주한 영국 총영사관에서 4일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영국 재판관이 배설에게 3주일간의 금고(禁錮)형을 선고하자 서울프레스는 재빨리 공판의 상세한 내용을 책으로 발행했다.

'한국에서의 외국 언론: Foreign Journalism in Korea'는 9포인트의 작은 활자 2단조 55쪽 분량이었다. 영국법원이 배설에게 유죄를 선고하여 일본의 침략정책을 인정했다는 취지였다.

1912년 12월에는 '조선음모사건'이라는 제목으로 105인 사건의 자료를 일본어와 영어(The Conspiracy Case in Chosen)로 발행해 총독부의 민족진영 탄압행위가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일어판은 250페이지 분량(영어는 96페이지)으로 윤치호, 양기탁 등의 기소장과 공판내용, 미국•영국의 신문기사와 친일적 서양인들의 기고문 모음이었다.

야마가타 이소오는 1919년 3•1운동 후 일본 정보국 총재인 이슈인 히코요시(伊集院彦吉)에게 서한(7.10., 8.31.)을 보내 국제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3•1운동 때에 일본에 불리한 여론이 일어났던 경험을 살려 도쿄에 선전기관 본부를 두고 친일 성향의 논객 확보를 건의하는 내용이었다.〈작은 사진〉 그 후로도 야마가타는 국가 홍보전략을 제시하는 서한을 본국정부에 여러 차례 보냈다. 74세 때에 출간한 '미국필패'(1943, 東京書房)는 야마가타의 국수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책이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