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の酒-森若里子 作詩 藤間哲郞 作曲 高野かつみ
一 命もあげた 女です 何が私に 殘ります 今はさいごに ただひとつ あげる言葉の さようなら 女が女を 捨てました お酒をください お酒をお酒を
二 鬼にも蛇にも なりきって 生まれかわろう かわりたい 憎いあなたを 撲よりは ひとり手酌の ひとりごと 女が女を 捨てました お酒をください お酒をお酒を
三 あなたの胸に 誰かいる どうせ私は 過去のひと 風にさみしく さりげなく 夜のちまたに 花が散る 女が女を 捨てました お酒をください お酒をお酒を
明知鉄道に乗る 二
日本一の農村景観 옛날의 日本은 農村 風景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하는데,第2次 大戰 後의 經濟 成長 속에서 農村다운 風景을 즐길 수 있는 곳은 峴底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明知鉄道의 線路 周邊 地域은 잃어버린 日本의 農村 風景을 提供해줍니다.
恵那市에 사는 前 國鐵運轉士인 荒巻克彦氏가 車에서 案內해 주었는데 國家로부터 ‘日本のめ棚田百選’으로 認定받은 恵那市 郊外의 階段式 논,그리고 岩村盆地에 기와지붕과 흰 灰壁으로 된 옛날 모습 그 대로의 農家와 흙壁으로 된 광이 띄엄띄엄 보이는 風景은‘農村景観日本一’그 自體입니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앉아서 바라보고 싶을 程度로 平和로운 農村風景이었습니다.
岩村城の女城主 織田信長, 豊臣秀吉, 徳川家康, 戦国時代(1467~1568年)에 日本統ー을 꾀하고,그것을 完遂 한 이 세 사람의 英雄들은 모두 지금의 愛知県 出身입니다. 岐車県은 그 옆이기 때문에 戰爭이 많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明知鉄道의 線路 周邊에 있는 岩村町도 戦国時代에 激烈한 戰鬪가 벌어졌던 舞臺입니다. 日本 3大 山城 中 하나로 꼽히며,그 中에서도 가장 높은 곳(해발717미터)에 築造된 岩村城은 1871年에 廢城되기까지 約 700年의 歷史를 지닌 有名한 城입니다.
天下統一을 꾀하고 있던 織田信長와 有力한 大名인 武田氏 사이에서 벌어진 戰鬪에서 敗한 武田側의 城主 夫人은 男便과 함께 悲慘한 刑罰로 死刑을 當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城터에는 돌담과 우물만이 남아 있지만, 아름답기로 有名했던 悲劇의 女 城主를 그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日本大正村 天皇의 在位 期間에 붙여지는 名稱 年號로 올해는 ‘平成’ 21년입니다. 平成 前은 ‘昭和’(1926~1989年), 그 前은 ‘大正’(1912~1926년), 또 그前은 ‘明治’ (1967~1912年)입니다.
岐阜県에는 明治以後의 세 個의 年號와 關聯 있는 ‘村(마을)’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各 時代의 建物이나 文火를 後世에 남기기 爲한 이른바 ‘테마피크’입니다.
明知鉄道의 終点인 明智町에 있는 것이 1988年에 門을 연‘大正村입니다. 明智町도 옛날에는 驛站마을이었고 大正時代에 生絲 産業의 集積地로 發電했는데,그러한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거리를 活用해서 ‘日本大正村’라고 이름 지어 觀光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大正時代는 不過 15年間이었지만, 政黨政治가 活潑해지고 映畵나 雜誌 같은 大衆文化가 꽃핀 自由롭고 浪漫的인 時代였습니다.
지금의 村長은 有名 女 俳優인 司葉子氏로,重要한 이벤트에는 東京에서 달려온다고 합니다 明智의 마을을 이곳 저곳 거닐고 있으니,大正時代의 店鋪,資料館, 博物館 等의 建物이 잘 保存되고 또 再現되어 있어 大正時代로 時間이 되돌아 간듯한 氣分이 들었습니다.
資料館이나 博物館 中에는 當時의 貴重한 遺物이 많이 展示되어 있습니다. 2011년은 大正100年으로 마을 全體가 記念行事를 多樣하게 企劃하고 있으니,明知鉄道도 더욱 분주해질 것 같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