熱海ブル-ス-靑江三奈 作詞 佐伯孝夫 作曲 塙六郞
一 昨日来た街 昨日来た街 今日また暮れて つきね情(おも)いの 湯けむり 雨の匂いも やさしく甘く 君は湯上り 春の顔
二 宮に泣かした 宮に泣かした 横顔あたり おぼろ薄月 気にかかる 女ごころと 温泉(いでゆ)のなさけ 口にいえない ことばかり
三 熱海湯の街 熱海湯の街 湯の香に聞く 花は白梅 山ざくら 仇に散らすな 奥山しぐれ 濡れて玄岳(くろたけ)超えらりょうか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일본 정착 기 일본인 남편과 아이 셋,다문화 가정의 안주인이 들려주는 생생한 일본 이야기.
한류라는 말도 없었던 예전과 달리 요즘 일본에서는 쉽게 한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꾸며져 있어 멀리서 봐도 한식당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가게부터 일본어로 쓰여 있지만 읽다 보면 한국어인 간판이 나 아예 한국어로 적힌 간판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한국인 커플이나 카페에서 한국어를 연습하는 일본인들 또 마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는 한국이 일본 속에 완전히 자리 집지 않았나 싶습니다.
굳이‘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외국에서 살다 보면 길가다 한국어가 들리는 즉시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갑니다. 저도 한때는 일본어 실력을 늘려야 한다며 애써 한국어와 한국사람을 피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쫓아가 인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사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제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지만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사할 이유는 충분하니 까요.
일본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비슷한 단계를 밟게 되는 것 같은데요. 단계별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초기: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모든 것을 두고 떠나온 만큼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하며 가능한 한 현지인과 교류한다. * 중기: 어느 날 문득 외국인인 자신이 일본인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며 한국사람을 찾아 헤맨다.
* 말기: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 와 꿋꿋하게 현지인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대략적인 흐름은 이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저는 벌써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사실 일본은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고 주거,교통 등의 생활 방식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다른 나라에 비해 금방 적응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맘놓고 있다 보면 결정적인 데서 허를 찔릴 때가 있습니다.
저의 첫 일본생활은 대학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교환학생이란 타이틀을 달고 시작해 선배들이 닦아 놓은 삶의 터전에 숟가락 하나만 얹은 것이라 일반 유학생들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았지요.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이 많았고 학교에서도 유학생을 도와줄 일본인 학생을 지정해 주었는데 만나면 어찌나 반갑게 인사하는지 ‘혹시 내가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타입 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친구 집에 우르르 몰려가 부침개도 부쳐 먹고 한국에서 택배가 오는 날이면 그 집에 모여 한식 파티를 벌이기도 했지요. 사실 그때는 일본인 친구를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학생들은 유학생에게 항상 호의적이었고 교류를 위한 여러 가지 행사가 끊이지 않았던 탓에 맘만 먹으면 친구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인 줄 알았죠. 그때는 몸과 마음 모두 안정적이라 공부만 생각하면 되는 정말 편안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과 달리 일본인과 결혼한 저는 학교라는 온실에서 벗어나 진짜 일본 사회에 혼자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지요.
물론 든든한 남편이 있기는 하지만 회사 일이면 모를 까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을 남자가 알 턱이 없으니 오로지 저 혼자 극본,연출,주연을 맡아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본어만 써야 하니 어느새 제 입에서는 쉰내가 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동네에 한국사람 한명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첫 아이 검진을 받으러 구청에 갔는데 일본어 속에서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한국어가 들려왔습니다. 두 아이를 둔 엄마였는데 버선발로 뛰어가 인사를 나누면서 살면서 그렇게까지 반가운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남편이 한국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아쉽게도 그분과의 인연이 끝나고 말았어요.
그 후 저는 남편의 한국근무를 거쳐 지금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지바현 가시와시에 살고 있는데요. 제 외로 움을 잘 알고 있었던 남편이 먼저 아무도 없는 곳보다는 그래도 부모님이 계신 곳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꺼내 시댁 근처로 오게 되었습니다. 보통 시댁 근처로 이사 간다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지만 저로서는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일단3명의 일본인지인을 확보한 셈이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제게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마마토모 (ママ友)’라고 하는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무척 중요한데 외국인。입장에서 유치원 아이를 둔 엄마로 살아가는 것 은 절대 쉽지 않더라고요. 임신이나 출산,육아가 개인의 희생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라면 유치원에 들어간 후부터는 엄마들이 만든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매일같이 테스트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사실 저는 낙오자였답니다.계속해서 둘째,셋째 아이를 낳고 키워야 했던 것도 있지만 그들만의 이야기에 함께하지 못했고 예의상 몇 번은 끼워주더라도 어느 새부터인가 제가 알아서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기에는 제가 가진 정보와 지식이 턱없이 모자랐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사람 이름, 지명,특산품을 외우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대략적인 개요를 작성해 머릿속에 집어넣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일본생활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잘살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매운 음식이 그리운 날에는 혼자라도 한국식당을 찾아가 꼭 먹고 옵니다. 식당에 갈 시간이 안되면 얼큰한 한국 라면으로 속을 달래주죠. 모르긴 몰라도 라면이 일본에 사는 한국인 여럿 구해주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직성이 안 풀릴 때는 한국물건을 파는 슈퍼마켓에 전화해 비싸서 참아왔던 김치며 떡볶이를 실컷 주문해 버린답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슈퍼마켓 판플릿은 제 보물목록 1호죠.
또 한국 생활의 감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고 팟캐스트로 방송을 청취하며 사건사고 많은 고국의 이야기를 꾸준히 챙겨 듣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갔을 때 친정엄마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 멋쩍은 장면이 연출되고 마니까요.
반대로 한국에 있는 여러분은 일본의 새 소식을 접하기 위해 노력하실 댄데요. 제가 글을 써서 그런 건 아니고 일본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정보,즉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화젯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제가 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한국 드라마와 뉴스를 챙겨보듯이 일본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무척 중요하거든요. 특히 지명과 사람 이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 해두세요.
어쩐지 신세 한탄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일본유학이나 국제결혼을 계획 중이거나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얼마나 일본에 대해 공부해 두었느냐에 따라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 천지 차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 두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여름방학 때는 한국에 갔다가 요새 일본어는 제 2외국어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어는 1억 3천만 명의 일본인이 시용하고 있으며 일본어를 사용해야 하는 일들은 아직도 많습니다. 스페인어다 중국어다 대세를 따르는 것도 좋지만 가장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본어를 마스터한 후 다른 언어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맛본 성취감이 다른 외국어 공부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 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마무리 합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