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治一代女-靑江三奈 作詩 藤田まさと 作曲 大村能章 編曲 前田憲男
一 浮いた浮いたと 浜町河岸に 浮かれ柳の はずかしや 人目しのんで 小舟を出せば すねた夜風が 邪魔をする
二 怨みますまい この世の事は 仕掛け花火に 似た命 燃えて散る間に 舞台が変わる まして女は なおさらに
三 意地も人情も 浮世にゃ勝てぬ みんな儚い 水の泡沫 泣いちゃならぬと 言いつつ泣いて 月にくずれる 影法師
世界遺産 富岡製糸場とおっきりこみ
富岡製糸場と絹産業遺産群 실크가 이어준 世界와의 連結고리
‘富岡製糸場と絹産業遺産群(とみおかせいしじょうときぬさんぎょういさんぐん)’은 高品質의 生실을 大量生産化한‘技術 革新’과 世界와 日本 間의 ‘技術 交流’를 主題로 한 近代 실크産業에 関한 遺産이다. (※고치 따위에서 실을 뽑아 내는 곳)
日本이 開發한 실크 大量生産 技術은 生産量이 限定되어 一部 特權階級의 專有物이던 실크를 全 世界 사람들 世界遺産으로 指定된 富岡製糸場.이 널리 使用할 수 있게 했으며 그 生活과 文化를 더욱 豊饒롭게 変化 시켰다.‘富岡製糸場’과 세 個의 양잠(養蚕) 関聯 資産(田島弥平旧宅(たじまやへいきゅうたく),高山社跡(たかやましゃあと),荒船風穴(あらふねふうけつ)은 그 事実을 오늘날에 伝해 주고 있다.
富岡製糸場(富岡市) 프랑스 技術을 導入한 日本 最初의 本格的 製糸場
日本의 主要 輸出品이던 생사(生糸 삶아서 익히지 않은 명주실)의 品質 向上과 增産이 可能하도록 1872年 設立된 官營 製糸場이다.
全国에서 모여든 女性 職工들은 프랑스인으로부터 西洋式 機械 製糸 技術을 배웠으며 習得 後에는 各自의 故鄕으로 돌아가 指導者가 되었다.
1987年 事業을 中斷했지만 建物은 지금도 거의 創業 当時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主要 建物은 나무骨組와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資財 大部分을 現地에서 調達했고 日本의 大목장이 프랑스인 技術者의 指導를 받아 建設했다.
田島弥平旧宅(伊勢崎市) 起臥 지붕에 換氣 設備를 設置한 近代 養蚕農家의 原形
養蚕法‘清涼育(せいりょういく. 自然気候에 맡겨 누에를 치는 법)’을 集大成한 ‘田島弥平(たしまやへい)’의 옛집이다. 누에치기에는 自然通風이 重要하다 고 생각한 ‘田島弥平’는 1863年,지붕에 ‘櫓 야구라(やぐら)’로 불리는 通氣窓을 갖춘 住宅 兼 蚕室을 完成했는데 著書‘養蚕新論(ようさんしんろん)’에 依해 各地로 퍼졌으며 近代 養蚕農業建築의 原形이 되었다.
高山社跡(藤岡市) 日本近代養蚕法의 標準 ‘清温育’를 開發한 場所
‘高山長五郎(たかやまちょうごろう)’는 고치 生産 增大와 品質 向上을 硏究 하며 換氣와 溫度,濕度를 緻密하게 管理하는‘清温育 청온육(せいおんいく)’을 確立했고 이를 普及하기 爲해 1884年 養蚕 敎育機關인 養蚕改良高山社(ようさんかいりょうたかやましゃ)’를 設立했다.
‘高山社’는 日本 国内뿐만 아니라 中國과 韓半島에서도 学生들을 받아들였으며 養蚕 指導를 爲해 日本은 勿論 韓国,中国,臺灣에 까지 職員을 派遣했다.
清温育은 日本의 標準 養蚕法이 되었으며‘高山社’는‘最高의 養蚕 總本山’으로 불렸다. 高山社 遺跡에는 清温育을 実行하기에 매우 理想的인 住居 空簡 兼 蚕室과 分敎場 時代의 施設이 남아있다.
荒船風穴(下仁田町) 自然冷氣를 利用한 日本 最大 規模의 누에씨 貯藏施設
바위틈에서 뿜어 나오는 冷氣를 利用한 누에씨(蚕種. 씨를 받을 누에의 알) 貯藏施設 터다• 1905年에 짓기 始作했으며 当時 日本 最大 規模의 貯藏能力을 保有했다.
돌무더기 위에 建物을 지어 地下에 누에씨를 貯藏했는데 冷氣를 利用해 여름에도 室內 溫度를 2°C 內外로 維持했으며 孵化를 遲延시켜 예전에는 봄철 한 차례만 生産할 수 있던 養蚕을 數 次例 反復해서 生産할 수 있게 되었다.
電氣冷藏技術이 發達하면서 그 役割은 끝났지만 지금도 2°C 前後의 냉기를 뿜어 내고 있다.
養蚕法과 群馬의 食文化 おっきりこみ ‘おっきりこみ(옷키리코미)’는 群馬 군마 (群馬)를 대표하는 麵 料理로서 넓적한 麵을 제철 菜蔬,버섯등과같이 끓인다.
소금을 넣지 않고 치댄 生麵을 삶기 때문에 우치코(打흔;f7}. 반죽이 筒에 붙지 않도록 뿌리는 가루)가 녹아 내리며 국물이 걸쭉해진다. 양념으로 는 간장을 많이 쓰지만 된장을 使用 하기도 한다.
‘おっきりこみ’는 群馬의 代表的인 ‘어머니의 맛’으로서 県 内에 널리 普及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農事일과 養蚕으로 바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맛있는 ‘おっきりこみ’는 火爐에 둘러앉은 家族들의 몸 속을 데워주고 배를 채워주었으며 生命을 이어주었다.
県에서는‘群馬의 粉食文化'おっきりこみ’를 無形民俗文化財로 選定해 群馬県의 粉食文化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배우면서 農業과 觀光振興에 活用할 생각이다.
作成者 黃圭源 | |